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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정신 답사단 기행문] 애국선열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가슴에 새기며(2)중국 독립운동사적지(10개 도시) 기행문 연재
허정인(모나시대 한국학과3학년) | 승인 2019.10.03 14:24
장사 상아의원, 김구 선생이 치료를 받던 곳으로 모택동 주석의 휘호가 인상적

재호 광복장학회(이사장 황명하)는 2016년 3•1절에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을 지닌 차세대들을 지원٠양성할 목적으로 광복회 호주지회의 산하재단으로 설립됐다. 올해는 제4기 광복장학생으로 호주 거주 한인 대학생 3명(UNSW 1학년 문건우, 시드니대 1학년 설아빈, 모나시대 3학년 허정인)을 선발했다. 학생들은 7월 17일~24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중국 상해, 항주, 남경, 장사, 광주, 중경 등 10개 도시의 독립운동사적지 현장답사 교육에 참가했다. 3학생의 답사 기행문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註) 

상아의원 
장사에 있는 상아의원은 1938년 남목청 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김구 선생이 입원해 있던 병원이다. 당시 의사는 백범 선생이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방치해 두었지만 기적적으로 소생하여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백범 선생이 기사회생할 수 있던 것은 아마 조국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다. 나도 조국을 위한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유후공원과 유주 임시정부활동 진열관

유주 유후공원(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활동지)에서 호주단원 왼쪽부터 설아빈, 문건우, 허정인 학생

광주역에서 야간열차에 탑승했다. 목적지 유주역까지 12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열차에는 침대가 한 칸에 6개씩 설치돼 있었지만 제대로 씻을 수 있는 샤워시설이 없어서 간단한 세면 후 조원들과 담소를 나눴다. 좁고 불편한 밤을 지새우며 이러한 우리의 상황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제에 투쟁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선조들이 존경스러웠고 감사했다. 기차에서 내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활동했던 유후공원을 방문했다. 외관상으론 여느 평범한 공원처럼 아늑했으나 광복을 꿈꾸며 총을 멨던 독립운동가들의 땀과 숨결이 스민 곳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였음에도 펜 대신 총을 잡고 험난한 독립운동의 길을 걸어간 선열들에 대해 존경심이 들었고, 그분들이 지켜낸 조국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유주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진열관(낙군사)에 갔다. 내부를 개방하지 않아서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낙군사는 당시에 여관이었다는 점과 기록에 남겨진 주소로 미루어 보아, 임정 요인 10여명이 머물렀다고 추정되는 유력한 곳이다. 장제스와 호치민도 머무른 적이 있다고 하고 겉으로 보기엔 그 옛날 지어진 건물치고는 상당히 화려하고 신식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꼭 둘러보고 싶었던 장소였는데 정말 아쉬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938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유주를 떠나면서 사진을 남겼던 유후공원 음악정 앞에서 단체사진

조선의용대 활동지(칠성공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계림으로 약 180km를 이동하여 조선의용대 활동지(칠성공원)를 방문했다. 1938년 약산 김원봉 선생에 의해 창설된 조선의용대는 국제정규전에 독자적 부대 단위로 직접 참전 및 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의용대의 합류를 계기로 광복군의 조직과 전투력이 급격히 증대되는 등 항일무장 독립운동에 다대한 공적을 쌓았다. 칠성공원은 조선의용대 본부가 처음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다. 유주의 유후공원처럼 이곳도 현지인들의 쉼터 같은 느낌이었다. 대원들의 훈련장이었던 곳은 잔디광장이 되었고, 막사도 모두 없어져 지금은 청진사만 홀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흔적이 잘 보존되지 못하였다는 게 아쉬웠다. 다른 유적들은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도 선조들의 얼과 혼이 담긴 독립운동 정신을 전할 수 있었으면 했다. 조선의용대와 약산 선생에 대한 부단장의 강연을 열심히 듣고 나서, 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약산 선생에 대한 평가는 정말 다양하지만, 이념적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독립운동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강점기에 거의 평등과 자유를 갈구했다. 그리고 독립과 사회적 평등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웠다. 약산을 제외하고 한국 독립운동사를 쓸 수 있을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위대한 독립운동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주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진열관(낙군사) 전경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끝으로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답사했다. 이곳은 우리가 그동안 찾았던 청사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규모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 장제스 정부를 따라 중경에 도착해 총 네 곳의 청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첫째로 사용했던 양류가에서 일제의 폭격으로 석판가로 옮기게 되었고, 이곳도 화재로 전소되어 오사야항으로 옮겼다. 여기도 폭격을 받은 후 재건했으나 그 공간이 좁아 마지막 청사인 연화지로 이동했는데, 찾아보기 힘든 세 청사지와는 달리 박물관처럼 잘 보존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이곳 역시 중경시의 재개발로 인해 보지 못할 뻔했다고 한다. 5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이 큰 청사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계단 앞에서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

유주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진열관 앞에서 3, 6조 단원들

마지막 날 ‘답사단의 밤’ 해단식 때 우수조 시상에서 우리 3조가 1등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다. 7박 8일 간 애국선열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신 재호광복장학회 황명하 이사장님과 모든 분들께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제15기 독립정신답사단의 일원으로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발전과 평화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호주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애국선열들의 독립운동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나의 독립정신답사 기행문을 마친다.     
 

독립정신 답사단 해단식에서 우수조 1등상을 받은3조의 수료증 인증샷

허정인(모나시대 한국학과3학년)  info@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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