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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울룰루에 동백꽃이 피면”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담임 목사) | 승인 2019.10.17 13:02

1. 
지구의 배꼽이라는 울룰루 앞에 다시 섰다. 지면에서 348m로 솟아 있는 하나의 바위 덩어리다. 이집트 기자(Giza)의 대 피라미드(193m)이나 파리의 에펠 탑(324m)보다 높다. 땅 밑으로는 2,400m 이상의 바위 뿌리가 있어서 지상의 바위 덩어리를 받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생긴지5억년이 되가는데도 여전히 살아남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대신 주변은 모두 붉은 흙 뿐이다. 조금 걷다 보면 새 신발이 온통 흙투성이가 된다. 물론 보통 흙은 아니다. 적어도 2억년, 길게는 5억년 동안 바위가 달아져서 만들어진 흙이다. 그 땅을 밟고는 나도 그 정도 나이를 먹는다. 

이 바위는 호주 안에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특히 이번 달 26일 이후에는 등반금지 결정이 내려져서, 그 전에 인생 버킷리스트를 완수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러던 지난 15일에는 12살짜리 소녀가 가족들과 함께 정상을 밟고 내려오다가 30m를 굴러 떨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생명을 잃지는 않았지만, 뼈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다쳤다. 다음 날 그 현장에 가 보았는데, 어제의 사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이다. 설마 내가 떨어지겠느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았다.

이 바위의 등반을 영구적으로 금지한 이유가 있다.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산이기도 하지만, 관광객들이 떨어져 죽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인도적 이유 때문이다. 사람이 2-300m 위에서 떨어지면 온몸이 바위에 쓸려지면서 추락한다. 마치 가장 거친 샌드페이퍼로 온 몸을 강하게 문질러 댄 것과 같다. 뼈가 부러지고 내장과 뇌가 터지기도 한다. 그런 시신을 35명 치워내면서,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또한 환경보호의 이유도 크다. 바위 꼭대기는 물론 주변에 화장실이 없다. 급한 용변이 필요할 경우, 방뇨할 수 밖에 없고, 그 잔유물이 바위의 위 아래를 오염 시키게되니 거의 신성모독적인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인지 산이 슬퍼보였다. 오래 홀로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피로감 때문일까? 수많은 세월의 상처들이 새삼 보여졌다. 타원형 모양의 크고 작은 깊은 상처가 있었다. 그 밑에는 마치 터쳐 나온 짐승의 내장들 같은 바위들이 널 부러져 있다. 300m 넘게 수직으로 깊이 잡혀 있는 바위 주름들은, 태양 빛을 받아 흑과 적의 음영이 너무 확실했다. 얼마나 고달팠을까? 주위의 친구들이 다 바람과 비에 날라간 후에도 여전히 살아 남아서 인간의 발 아래 밟혀야 했던 지난 세월들.

그런데 나는 왜 또 이곳에 와서 이 거대한 바위의 상처들을 눈으로 핥고 있을까? 원주민들 때문인가? 숙소들이 모여 있는 타운 중심에는 IGA 수퍼가 하나 있다. 그 옆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원주민 가족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 할 일이 없다. 5억만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짧은 백 년 인생을 살면서, 할 일 없이 태어나고 존재하고 결국 먼지로 돌아간다. 그들에게 주어진 인생은 다만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태어났으니 살 뿐이고, 그래서 온 몸과 마음에는 상처와 흉터 투성이다. 오가며 그들을 보면서,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했다.

2. 
조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대단히 활기차다. 정치는 여전히 그들 삶의 원동력이다. 거의 온 국민이 다 정치에 참여한다. 몇일 전 버티고 버티던 법무부장관이 자진 전격 사퇴했다.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10월 14일, 장관 취임 35일 만이고, 대통령으로부터 지명받은 지 67일 만이다. 이 두 달 동안 한국의 정가와 언론, 그리고 시민들은 둘로 나눠져 극한상황 바로 전까지 갔다. 그러다가 법무장관이 한 걸음 후퇴하여 일단 진정국면을 맞았다. 물론 앞 날은 모른다. 두 걸음을 뛰어 도약할 수 있는지는. 하여튼 열심히 지지고 볶으며 재미있게 살기를 바란다. 단,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말고, 조국이 계속 발전하게 되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때때로 극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으나, 그 때는 이곳에 와 거대한 바위 앞에서 한 사나흘 지내기를 바란다. 사람이 오래 살 것 같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60이 넘고 70이 되면 철이 좀 들어야 한다. 상처를 안고 살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3. 
그래서 내가 여기서 할 것은, 거대한 바위 앞에 서는 일이다. 5억년 앞에 길어봐야 1백년 인생으로 선다. 그러면서 아내가 하던 말을 기억한다. “당신은 큰 바위 얼굴이예요.” 그 말에 소망을 가지면서,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본다. 공효진과 강하늘이 나오는 “동백꽃 필 무렵 (When the Camellia Blooms)”이다. 자신의 인생을 항상 ‘을’의 입장에서 ‘그러려니’하고 살던 사람들에게, 새롭고 신나는 일들이 펼쳐지는 드라마다. 울룰루 바위 앞에서 그 드라마를 보며, 나는 나의 남은 삶을 생각한다.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담임 목사)  holypill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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