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연, 인연, 만남, 전생, 윤회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람들과 맺어지는 인간관계가 막연한 우연에 의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어떤 사람과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몇 겁의 인연이 있어서 현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어)에서는 인간을 ‘둘라밤’ 이라고 하는데 둘라밤은 얻기 힘든 기회라는 뜻이다. 생물체가 인간으로 환생하려면 8천4백만 번의 윤회를 거듭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자체가 참으로 소중한 기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인생을 철학적으로 심각하게 논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나름대로 깊이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대체 어디를 걷고 있는가? 그곳이 다른 누군가의 길은 아닌가? 그렇기에 걷기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제 자신만의 길을 걸어라. 그러면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라고 말했다. 내가 가야하는 길의 방향을 찾고 올바른 만남이 아니라면 매듭을 끊어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남의 길을 동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인연의 끈으로 인해서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남반부에서 살아가는 삼십여 년의 긴 시간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만났다.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결코 맺어질 수 없었을 인연들, 이제는 소중한 인생 체험으로 간직하며 여전히 그 길을  이어가고 있다.  만남에도 다양한 종류의 만남이 있다. 거기에는 우연, 인연, 헤어짐, 재회 같은 단어들이 실타래처럼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서 반복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손수건 같은 인연에는 다른 사람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마음이 담겨있고, 만들지 말았어야 했을 힘든 인연의 고리를 지우개처럼 지워버리는 만남도 있다.  한 순간에 예쁘게 피어나서 기쁨을 느끼게 한 후에 땅에 떨어지는 꽃 같은 허망한 만남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과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인연들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사람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내 곁에 있기를 원하는 간절함 때문이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간에 행복을 나누는 따사로운 가슴을 품고 있어서다. 나는 이런 만남과 인연들을 내 삶의 귀한 한 부분으로 오래오래 간직하며 좋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바란다. 좋은 인연은 내 마음을 열리게 만들고 행복을 전해줘서 참 좋다.   

지난 9월 말, 학교의 봄방학 기간에 말레이시아의 코타 키나발루( Kota Kinabalu) 라는 섬의 ‘라사 리아 리조트( Rasa Ria Resort)’ 에서 있었던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왔다. 코타 키나발루는 보르네오 섬의 북부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사바 주(Sabah Statae)의 수도로서 KK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바닷가에 위치한 리조트에서 바라보는 해변과 자연의 조화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신비로운 풍경이 아닐까 싶다.  붉은 노을이 하늘로 번지며 만들어내는 장면은 차마 말이나 글로도 표현하기 힘들만큼 아름다워서 내 영혼이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야자수 나무들과 갈색 짚으로 만든 파골라에는 하얀 커튼이 베일처럼 바닷바람에 흔들리며 신랑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생애에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환상적인 멋진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인연, 만남, 연결 고리라는 단어를 다시금 떠 올리게 했다. 

신부와 신랑은 14년의 긴 만남을 이어 온 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 두 사람은 하이스쿨 학생이었던 십대의 어린 나이에 서로에게 첫 눈에 반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공부를 끝내고, 30세의 어른이 되었으며 전문직 사회인이 되기까지 긴 시간을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 사랑으로 지켜왔을 것이라 여겨진다. 첫 사랑의 인연이 결혼으로 매듭을 지었으니 참으로 소중한 만남의 연결 고리가 아닐 수 없다. 

결혼식 전날에 도착한 신랑 신부의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며 나도 어느새 대가족의 일원이 되어있었다.  친척간의 유대가 유난히 끈끈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200여명이 넘는 친지와 친구들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부터 날아왔다. 그들은 사돈인 나를 친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사위의 동생들은 평소에도 나를 한국말로 “어머니” 라고 부른다. 나는 그 호칭이 주는 친밀감 덕분에 아주 친한 가족관계로 지낸다. 그들과의 만남은 큰 인연으로 맺어졌기 때문에 식구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가 있다.  딸의 시누이, 시동생이 아닌 내 자녀 같은 애정으로 그들을 끌어안는다. 

살아가면서 이 드넓은 호주 땅에서 우연히 옷깃만 스쳐 지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고 싶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이 되겠지만 그런 우연과 인연, 만남을 이어가는 삶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인간은 관계의 덩어리이며, 오직 관계만이 인간을 살게 한다.’ 라는 글이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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