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남쪽 생 장 피에 드 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성 야고보의 시신이 묻혀있는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길 이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를 제외하면 비유럽인으로는 한국 순례자가 가장 많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수필로, 시로 글을 써 온 시드니 동포 박경과 백경이 다른 일행 2명과 함께 다녀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수 많은 책과 정보들이 있지만 시드니에 사는 두 여인의 눈을 통해 드러날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존의 수 많은 산티아고 이야기들과는 '다른 색깔로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교대로 써왔던 '박경과 백경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 이번주로 마지막회다. 백경은 여행길을 사진 대신 그림으로 기록했고 그 일부를 백경의 글과 함께 소개했다(편집자 주)

숙소 여주인의 모자를 빌려쓰고 거리를 걷다가 도우루강을 바라보며... 내일은 어디로 가야할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입성을 앞두고 지난 며칠간 뭔지 모를 무거움이 짓누른다. 세상으로의 출구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이렇게 길 위에서 유목민으로 단순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러나 현실은 세상을 향해 보폭을 좁혀 가고 생장을 출발한 지 35일 만에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순례자 사무소에는 완주 증명서를 받기 위해 순례자들이 건물 바깥까지 길게 줄을 서 있다. 1시간여 기다린 끝에 나도 내 이름이 새겨진 순례자 증명서를 받았다. 나는 진짜 순례자가 되기는 한 것일까?

대성당 앞 광장에는 여정을 마친 순례자들이 꽉 들어차 있다. 한 순례자가 아는 얼굴을 발견했는지 팔을 번쩍 위로 들어 올린 채 격하게 달려가 포옹을 한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순례자도 보인다. 낯익은 60대 독일인 부부는 배낭을 멘 채 대성당을 향해 두 손을 꼭 모으고 서 있다.  ABC  트레킹이 다음 목표라고 했던 부부. 석양을 받은 두 사람의 굽은 등 뒤로 히말라야산맥이 굽이쳐 흐른다. 돌바닥에 대짜로 누워 있는 젊은 순례자도 보인다. 나도 돌바닥에 눕는다. 6월의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품은 돌, 앞선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 누워 푸른 하늘을 통째로 펼친다. 올리브 향이 베인 들녘을 이불로 덮는다. 잠이 스르르 쏟아진다.

한 순례자가 벗어 놓고 간 등산화에서 들꽃이 피었다. 문득 이 신발에서 몇 년째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인지 궁금해졌다.

산티아고에서 머무는 이틀 동안 늦잠도 자고 대성당에서 향로 미사도 두 번이나 드렸다. 낯익은 얼굴들과 축배의 잔을 부딪치고 먼저 떠나는 이들과 포옹을 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늦은 오후 묵주를 돌리며 골목길을 걷는다. 길 위에서 오랜 시간 함께 걸었던 카타리나 언니가 먼저 떠나며 손에 쥐어둔 묵주, 순례길에서 예상치 않은 선물을 받기도 한다는데 나도 귀한 선물을 받았다. 주교가 된 제자가 그녀에게 선물했다는 묵주. 이제 내게로 전해졌다. 내일이면 이 골목길도, 알베르게도, 성당 앞 키 큰 나무도, 저 멀리 보이는 숲도, 들녘도, 바람도 순례길에서 만났던 천사들도 다 내려놓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시드니로 돌아가기까지 2주간의 시간이 남았다. 순례길에 앞서 일행과 함께하기로 한 여행이 어그러지면서 길 위에 놓인 시간. 구글서치를 하며 여행할 곳을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무작정 포르투(Porto)행 버스에 올라탔다. 순례길을 걸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던 곳,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포르투갈에 가고 싶어서다. 버스 안에서 한국에서 온 부부를 만났다. 산티아고 길을 무려 6번이나 걸었다는 남자는 이번에는 와이프와 함께 르퓌(LE PUY)에서 산티아고까지 1,600km를 걸었다고 한다. 신발이 닳아 생장에서 다시 등산화를 사 신어야 했다는 부인은 특히 르퓌에서 생장까지의 길이 아름다웠다는 말을 반복한다. 버스가 포르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썰물처럼 사라지는 사람들. 계획 없이 도착한 나는 버스터미널 역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순례자 신분에서 여행자로 전환하기 위해 에어비앤비(Airbnb) 회원 등록을 하느라 분주하다.

2만개의 아줄레주 타일 벽화가 그려진 상 벤트역에서 무용수들이 전통 민속춤을 추고 있었다.

세상으로 나가기에 앞서 잠시 들른 임시 우주 정거장, 포르투(Porto). 알베르게와 비교하면 별 다섯 개를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편안한 숙소에서 이틀째 아침을 맞는다. 커피를 타서 베란다로 나간다. 건물 아래로 카페, 버스 정류장, 베이커리 그리고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볕이 좋아 옆집 빨간 지붕 위에 등산화를 올려놓고 나무 의자에 앉아 밀린 일기를 쓴다. 점심때쯤 되어 여주인이 투숙객을 위해 걸어놓은 초록색 리본이 달린 챙 모자를 빌려 쓰고 거리로 나선다. 포르투 시청사 (Camara Municipal do Porto)와 리베르다데(Praca da Liberdade) 광장을 지나 상 벤투역 (Sao Bento)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곳에 막 도착한 사람들이 스치듯 만나는 공간. 2만 개의 화려한 아줄레주 타일 벽화가 둘러쳐진 역사 안에는 포르투갈 무용수들이 전통 옷을 차려입고 흥겹게 민속춤을 추고 있다.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여든다. 그리고 기차가 출발하며 슬며시 사라지는 원, 역에 기차가 도착하면서 다시 그려지는 원. 사람들이 모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원 그리기를 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처럼.

대성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도우루강(Rio Douro)과 포르투 구시가지가 좌우로 펼쳐져 보이는 곳.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길은 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졌다가 오므라들고 대로변에 있던 사람들은 골목길로 사라진다. 스페인 산골 마을을 전전하던 유목민은 동상처럼 도시의 계단에 앉아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쫓는다.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한 청년이 배낭을 메고 성당 문을 열고 나온다. 그의 손에 순례자 여권이 들려져 있다. “아~ 이곳에도 산티아고 길이 있었지? 다시 걸어볼까? 같이 걷던 이들은 순례길 마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는데, 무슨 재수생도 아니고… ”

이른 아침 배낭을 짊어지고 250km 길을 향해 첫발을 뗀다. 나는 다시 재수생 순례자가 되었다. 바다와 해변을 왼편에 끼고 걷는 길, 갈매기가 끼룩끼룩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포르투갈 길은 프랑스 길보다 걷는 순례자들이 많지 않다. 알베르게에 머무는 순례자들도 비교적 조용하고 또 혼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외부의 방해가 적은 순례길, 처음 며칠은 세상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 들어 힘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점 편안해지더니 나중엔 자유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길은 언제나 위협이 도사리고 있어, 인적이 드문 내륙 마을에선 갑자기 맞닥뜨린 개의 공격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고, 숲길에서 우연히 만난 뱀의 불편한 기억은 길을 걷는 내내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또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을 지나갈 때면 성당, 무덤, 빈집들이 내뿜는 음산한 기운이 삶을 위협했고, 인적 없는 산을 몇 번씩 넘어야 할 때는 불안정함의 연속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삶의 저울에 무게를 얹고있다. 나는 다시 쳇바퀴에 걸린 나를 빼내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다시 걸었던 10일간의 순례길은 한 번도 반복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다. 새벽마다 대서양의 아침을 열어주던 일출, 한낮의 뜨거움에 서 있던 일상의 사람들,  모래 언덕에 적어놓은 바람의 언어,  여름을 향해 걸어가는 나무들, 기울어져 가는 교회 십자가, 그 시간 위를 걷고 있는 순례자에게 햇볕과 바람과 비는 알 수 없는 문신을 새겨 주었다.

두 번의 순례길을 마치고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로 향하는 기차 안,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열 살쯤 돼 보이는 한 소녀가 정지화면으로 들어온다. 소녀의 무릎 밑에는 본인보다 큰 검은색 개 한 마리가 바닥에 누워 있고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가 보인다. 선반 위로 집에서 키우던 화분이 놓여있고 그 옆으로 커피머신, 오디오가 나란히 올려져 있다. 소녀는 책을 읽거나 노트에 뭔가를 쓰면서 왼손으로 개의 목젖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상자 문을 열고 갇혀 있는 고양이에게 미소를 지어준다. 집안에서 함께 정을 나누는 동식물과 함께 여행 중인 소녀. 나도 저 멀리 두고 온 나의 소중한 것들의 목록들을 세어본다.

반사된 유리창으로 낯이 익은 여자가 보인다. “폭탄 머리를 한 저 여자, 왜 저렇게 인상을 쓰고 있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기차가 터널로 진입하며 시커먼 여자의 속으로 들어간다. “말투는 왜 저렇게 깍두기처럼 토막이 났을까? 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일상복 대신에 방탄복을 걸치고 나가는 거야? 왜 나이가 들며 점점 말이 많아지는 거지?” 타임머신을 탄 여자는 불편한 기색으로 나를 째려보고 기차는 마드리드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산티아고 길을 걷고 돌아온 지도 벌써 1년 반이나 되었다. 비우는 일이 채우는 일보다 어려운 일임을 입증이나 하듯이 배낭 하나면 충분했던 삶의 무게는 집 하나를 통째로 지고 살아가고 있다. 길을 걸으며 조화로웠던 몸과 마음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하고 천천히 걷는 것을 잊어버린 일상은 눈을 뜨고도 손에 쥔 물건을 찾아 헤맨다.

몇 달 전 이사를 하며 책장을 정리하던 중 오래된 시집에서 포르투갈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페르난두 페소아를 만났다. 그가 시집 갈피에 끼워놓은 말, “여행한다는 것” 이란 시의 일부로 산티아고 길 연재를 마무리한다.

“여행한다는 것!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나 자신에게조차 속하지 않는 것”

나는 다시 쳇바퀴에 걸린 나를 빼내기 위해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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