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금요단상
[금요단상] 쉼과 평안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 승인 2019.11.14 12:18

수년  간 센트럴 코스트에서 살아온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해변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이라, 발코니에 서면, 탁 트인 바다가 시야에 들어 온다. 바로 앞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진  자연림 같은 정원이 보인다. 또 다른 편 작은 발코니에서는 멀리 계곡 아래까지 이어지는 숲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상쾌하였다. 집 전체가 계절에 상관없이 밝은 햇살로 가득하다고 했다. 주변의 집들 가운데 가장 괜찮은 집이라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된다.

차를 나누며 그간의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남편은 녹내장으로 인해 시력을 거의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운전을 못한지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고 한다. 아내 또한 얼마 전에 큰 수술을 하고 지금 회복 중임을 알았다. 아직 걷는 것이 불편해서 지팡이에 의지하였다.  현재 두 분의 건강상태로는, 집 관리가  쉽지 않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은 부주의로 일어난 화재로 전에 살던 집을 잃어 버린 아픔도 들었다. 물질적인 피해 뿐만이 아니라, 놀램과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겠나 추측된다. 그러나 정작 이 부부의 말에서 그런 어려움의 흔적 보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으로 이미 다 극복해 낸 듯 싶었다. 그래서 표정이 밝고 활달했다. 집관리는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정원일은 소꿉 장난으로 여긴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집에서, 어떤 쉼과 안정을 누리며 만족해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했다.

한 친구 집에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우리 부부가 가까이 이사 온 것을 환영하는 자리라고 했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그  분의 아내가 서양요리 정찬을 풀 코스로 준비 하셨다.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대접 받았다. 혀가 즐겁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정성이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아직 낯선 지역이지만, 30년 이상 된 오랜 친구가 가까이 있으니 마음이 푸근하고 든든하다. 그 친구 내외는 텃밭에 각종 채소를 심어서 먹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함께 해변을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이 친구 부부도, 자신들의 방법대로 쉼과 평안가운데 살고 있는 듯 싶다.

함께 초대된 다른 부부는 우리보다 연배가 더 많으신 분들이지만,  격의없는 즐거운 대화로  기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이곳의 좋은 까페, 독특한 숍, 신선한 생선을 파는 곳, 한번쯤 가 보아야 할 장소등 유익한 생활정보도 소개해 주셨다. 나이에 비해 활기가 넘치고 훨씬 더 젊게 보여 혹 어떤 비결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매일 아침 가까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아직 일을 하며 걷기 및 취미 골프로 몸을 자주 움직이며 사는 것뿐이라고 하셨다. 그 분 내외의 말과 얼굴에 쉼과 평안가운데 사신다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쉼과 평안을 추구한다.  은퇴자로서 오후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한 쉼과 평안을  위한 조건들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이며, 하늘과 바람, 물과 숲 등 자연과 가까이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교통이며 문화, 병원 등의 시설도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건강을 챙기며, 적절한 일이나 취미생활 등을 계속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리라. 

그래서인지 두분 내외는 시드니 보다 이곳의 환경과 시설 및 생활이 더 만족하다고 했다. 살아갈수록  새롭고 유익한 것들을 발견한다고 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 들이 전부일까? 지금의 내게 산다는 것은,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활동한다는 그 이상이 되기를 바란다. 계속 생각하고, 작더라도 어떤 변화와 창조를 추구하고 싶다.  그것이 비록 단순한 것들이라도 그런 몸짓 자체가 그 과정이 내 자신에게 사는 보람과 기쁨을 더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에 쫓기거나 바쁜 사람은 쉼과 평안을 경험할 수 없다. 은퇴한 나  자신도 때로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시간이나 쉼, 아니 평안과 생명 자체가 어떤 보상이나 수당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저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건 내 자신의 깨달음이 아니라 미욱한 내게 주님께서 알게 해 주신 지혜인 줄 안다. 그런 시각에서 보니까, 시간은 언제나 필요한 만큼 충분했다. 때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지만 잘 사용한 것임을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씩 더 느긋한 쉼과 평안을 배우고 있다. 

NSW지역에 산불로 인한 사망, 실종, 부상자들 및 가옥 전소 등의 뉴스를 들었다. 여러 지역에서 산불이 계속되고 있으며 수십개는 아직 통제가 어렵다는 것도 들었다. 어제 12일에는 시드니에도 최악의 재난 수준의 위험 경보가 발령됐다.  500여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그날 시드니에서 강의를 마치고, 오후 2시경에 기차를 타고 고스포드로 왔다.  스트라스필드 역에서 기다리는데, 무덥고 건조한 날씨에다 메캐한 연기에 가려져 하늘의 푸른 빛을 볼 수 없었다. 산불 현장의 모습, 사투하듯 산불 진화에 애쓰는 소방대원들, 불타 버린 집의 잔해들, 아우성치는 한 피해 여성의 영상들을 대하며 너무 안타까웠다. 순간적으로 어떤 두려움까지 엄습했다. 그래서 다급한대로 기도했다. 주님, 비를, 큰 비를 내려 주소서. 더 이상의 인명과 재산 피해가 없게 해 주소서. 그런 때에는 내 자신이 언제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연약한 존재임을 발견한다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언제나 쉼과 평안을 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세상을 감당하며 계속 달려 갈 수 있는 만큼의 쉼과 평안은 더욱 필요함을 절감한다. 주님, 제가 지금 한낮의 일을 마치고 오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님 은혜로, 매일의 삶속에 그러한  쉼과 평안으로 채워 주소서!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jason.choi46@gmail.com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Suite 2, L1, 570 Blaxland Rd. Eastwood NSW 2122 Australia  |  Tel : 02-8876-1870  |   Fax : 02-8876-1877
Copyright © 2019 HANHO KOREAN DAILY. All rights reserved. mailto : info@hanho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경환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