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런 산불 위기 상황에서 기후변화 책임론을 주장하는 것은 녹색당 지지자들과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너-시티 지역의 미치광이들 뿐(inner-city raving lunatics)일 것이다.”

마이클 맥코맥(Michael McCormack) 부총리 겸 국민당 대표는 의회에서 아담 밴트 의원(녹색당)이 현 정부의 기후변화 무대응이 산불 악화의 원인이라고 공격하자 이렇게 원색적인 용어를 동원해 반박했다. 

#2. “글렌 이네스(Glen Innes) 산불로 숨진 2명은 아마도 녹색당 지지자들 것이다”

스카이 뉴스와 대담에서  바나비 조이스(Barnaby Joyce) 하원의원(국민당)은 산불 희생자들이 평소 산불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숲을 태우는 예방조치(hazard reduction)에 반대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사망자들을 녹색당 지지자들로 단정하는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지인들은 조이스 의원의 발언에 분노했다.   

#3. “여야는 한 무리의 방화범들보다 낫지 않다.(no better than a bunch of arsonists). 이유는 그들이 기후변화를 위해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조든 스틸-존(Jordon Steele-John) 연방 상원의원(녹색당)이 국민당 지도부가 기후변화 연관성 주장을 비난하자 이에 발끈하며 여야를 방화범들이라고 싸잡아 성토했다. 거친 용어에 동일한 수준으로 화답한 모양새다.    

#4. “부끄러운줄 알라. 산불을 가지 놀면서 서커스를 하고 있다. 내 집은 불에 탔는데.. ” 

NSW 북부 님빈(Nimbin)을 방문한 앤소니 알바니즈 야당대표가 산불 피해자인 한 여성 주민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으며 봉변을 당했다. 집이 불에 타 크게 상심한 이 여성은 정치인들이 산불 예방을 위해 한 일이 없다면서 마침 이곳을 방문한 알바니즈 야당대표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5. “(발언) 수위를 낮춰달라('Take it down a few notches). 우리 모두 자제할 필요가 있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정치권에서 ‘산불 책임 공방’이 격화되자 12일 정치인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그는 NSW 북부 산불로 3명이 숨진 9일 기자회견에서 기후변화 연관성 질문을 받았지만 답변을 회피했다.   

기후변화는 석탄 등 광산자원의 파워가 막강한 호주에서 정치권의 취약점이다. 정계의 ‘집단적 약점(collective weakness)’이 드러난다. 적극적인 대응을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 성향이 강한 정당일수록 그렇다.
 
앞에서 거론한 국민당 정치 지도자들의 신경질적인 과민 반응은 어쩌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일 수 있다. 
호주 집권당인 자유-국민 연립은 “기후변화 대책은 호주는 물론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미국과 중국, 인도 등이 적극 동참하지 않는한 효과가 거의 없으며 막대한 비용만 지출한다”는 논리로 미온적인, 최소한의 대응책을 주장해왔다. 
산불과 관련해서는 예방조치인 백버닝(back-burning)의 부진이 악화의 기폭제가 됐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호주 내륙을 방문하면 지도에 나와 있는 강과 호수/연못은 70% 이상 없어졌거나 바닥을 드러낸 상태인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강과 저수지는 이미 대부분 물이 없고 숲과 내륙은 바짝 타들어갈 정도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 동남부의 젖줄인 머레이-다링강 유역(Murray-Darling Basin)은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34개월 동안 강우량이 887mm에 불과하다. 거의 3년 동안 10cm 미만이 비가 내린 셈이다. 역대 최저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수의 추가 댐 건설 외 근본적인 수자원 확충 계획이 없다. 기후변화 정책은 고사하고.. 
 
2012-2016년 사이 호주에서 주당 산불 발생 빈도가 40% 증가했다. 북반구인 캘리포니아의 연간 산불(wildfire) 빈도는 70년대 이후 무려 5배 급증했다고 한다. 사상 최악의 유례없는 NSW와 퀸즐랜드 산불은 그 원인이 상당히 복잡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 또는 악화의 주요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미래의 산불이 어떤 정도로 심각한지 이미 우리는 목격했지만 이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호주 정치권에서 리더십이 실종된 가장 심각한 분야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정책 부재를 언제까지 묵과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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