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붐비는 관광지 속리산

호주 생활이 30년을 훌쩍 넘었다. 계산해 보니 한국과 호주에서 지낸 기간이 정확하게 반반이다. 전두환 시절 막바지인 1986년에 한국을 떠났다. 호주 이민 비자를 받은 우리를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부러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한국은 정치와 경제를 비롯해 모든 여건이 지금의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했기 때문이다.

호주에 오래 살고 있지만, 아직도 호주 삶에 익숙하지 않다. 호주 사람들이 열광하는 크리켓과 럭비 경기에는 아직도 흥미가 없다. 늦게 배운 영어이기에 호주 사람과의 대화도 자연스럽지 않다. 음식도 당연히 김치가 있어야 하는 한국식이다. 따라서 호주 시골에 살면서 불편한 점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사적인 일로 한국에 갈 일이 생겼다. 생각해 보니 3년 만에 찾는 한국 여행이다. 당시에는 북한과의 긴장이 팽배한 시절이라 전쟁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 주변에서 한국 방문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한국 여행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미세 먼지 조심하라’는 충고는 자주 듣는다.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건축물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놀란 것은 승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외국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 사람들의 호주 방문이 많다는 것에 잠시 놀란다. 한국 경제가 바닥이라는 뉴스를 자주 듣고 있는데, 물론 경제가 나빠도 가진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한, 비행기에는 호주에 사는 한국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시드니에서 아침에 떠난 비행기는 저녁이 되어서야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친척의 자동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간다. 공해에 민감한 아내는 눈이 쓰리다며 공기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NSW 시골(지방)에 살기 때문인지 시드니에만 가도 공해 이야기를 하는 아내다. 

친척은 김포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산다. 고층 아파트에서 아침을 맞는다. 멀리 산이 보인다. 공해 때문인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보다 공기가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공해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에 흔히 나오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늦은 아침에 전철을 타고 시내 근처로 나선다. 출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앉은 사람과 서 있는 사람 숫자가 비슷할 정도로 붐빈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늦은 강의 시간에 맞추어 나가는 대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예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신문을 펼쳐 든 사람은 볼 수 없다. 그 대신 남녀노소 거의 모든 사람이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다.

빠르고 편한 전철을 타고 다닌 하루였지만 피곤하다. 저녁은 친척이 사는 동네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나가 동네 주위를 걷는다. 수로가 길게 뻗어있는 산책길이다. 걷는 사람이 많다. 수로를 따라 가게가 즐비하다. 먹을 것을 파는 가게와 식당이 대부분이다. 

칼국수와 함께 막걸리를 무제한 마실 수 있다는 식당에 들어섰다. 조금 일러서일까, 넓은 식당에 손님은 많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를 곁들인 식사를 즐긴다. 호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다. 한국 인건비가 호주보다 낮기에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포에서 며칠 지낸 뒤 청주에 사는 친척을 찾았다. 청주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몇 년 정도 지냈던 도시다. 그러나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도시로 바뀌어 있다. 청주에 살면서 자주 다녔던 무심천 주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반갑게 맞아준 친척은 이곳저곳 구경시켜 주기에 바쁘다. 청주에서 가까운 속리산을 찾았다. 예전에 비해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걸으며 자연과 하나가 된다. 대통령 별장이었다는 청남대도 처음 가본다. 대통령만 즐길 수 있었던 풍경을 보며 산책로를 걷는다. 풍광이 남다르다. ‘대통령만을 위한 풍광?’ 호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청주를 떠나 우리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친척의 친절함이 좋긴 하지만, 불편해도 우리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어디로 떠날까, KTX를 타고 싶다. 호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KTX의 안락함을 만끽하고 싶다.   

대통령만 즐겼다는 청남대에서 바라본 풍경

기차를 타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목포로 떠난다. 목포에서 최근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본다. 목포의 자랑거리인 유달산을 가로지르며 경치를 볼 수 있게 설치되어 있다. 편안하게 앉아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남해안을 본다. 

환경에 민감한 호주에서는 이런 곳에 케이블카 설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과 동물에게 주는 피해가 막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공사로 파헤쳤을 자연과 밤낮으로 소음에 시달리는 동물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한다.

짧은 한국 방문을 끝내고 호주로 향한다. 비행기에서 잠시 여행을 되돌아본다. 아기자기한 산천이 생각난다. 호주와 같은 웅장함은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자연이다. 금수강산이라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먹을거리도 생각난다. 

실핏줄처럼 펼쳐진 전철 덕분에 자동차가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전철을 기다리며 출입구에 쓰인 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목포의 대표적인 볼거리 춤추는 분수. 매일 저녁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한국도 보았다. 많은 사람이 바쁘게 살아간다. 발걸음도 빠르다. 어느 곳을 가보아도 공사하는 현장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도 주변 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흔히 이야기하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에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여유로움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분주함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 호주 공항에 내리니 긴장이 풀리며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호주 생활에 물이 많이 들었나 보다. 
동화책에 나오는 ‘서울 쥐와 시골 쥐’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골 쥐가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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