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1년 예정으로 단국대학교 박덕규 교수와 중앙대학교 이승하 교수의 재외한인문학의 면면을 살펴보는 글이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통해 연재되어 왔습니다. 이번 주 칼럼 이승하 교수의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할까? ]를 끝으로 [디아스포라의 여정]은 그 막을 내립니다. 귀한 글 보내오신 두 분 교수님께, 또 문학칼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편집자주).

(왼쪽부터) 도명학ㆍ김정애ㆍ이지명.

지금도 한반도는 휴전중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 각각 공화국이 세워진 지 72년째로 접어들었는데 북한의 도발은 시도 때도 없다. 그러나 문학은 분단을 넘어 통합을 운위할 수 있는 지점에 와 있지 않나 싶다.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수가 2019년 말 기준으로 총 3만 2천여 명에 이른다. 새터민 또는 탈북자라고도 불리는 이들 중에는 북한의 조선작가동맹 소속이었던 문인도 있고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같은 북한의 유수 대학 문학부를 나온 쟁쟁한 경력을 지닌 이도 있다.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와서 발간한 수기ㆍ소설집ㆍ시집의 권수가 이미 5년 전에 100권을 넘어섰다. 이들 가운데 남쪽에서 정식 등단 절차를 거친 이후에 작품 활동을 하는 이도 20명이 넘는다.   

지금까지 남한 문단은 이들의 작품을 ‘우리 문학’이라고 생각해 온 것일까? 그들을 영원한 타자로 여겨 우리의 삶 바깥에 있는 존재들로 구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민족으로서 한글로 쓴 문학작품이기에 그들이 쓴 글은 분명히 ‘한국문학’이다. 이제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문예지에서도 이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청탁도 해야 한다. 특집으로 조명하여 이들 작가를 독자에게 알려야 하고, 문학상의 심사 대상에도 올려야 한다. 장편소설 위주로 창작해 오던 탈북 작가들이 2010년 이후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있고, 시 작품도 차츰 미학적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남북한 공동 소설집 제1권 『국경을 넘는 그림자』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재일 조선인 작가 이회성ㆍ이양지ㆍ유미리ㆍ현월이 수상했다. 후보에 오른 작가의 수는 10명이 넘는다. 수상자 4명은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고 재일 조선인의 신분으로 그 상을 받았다. 최종심에 다들 서너 차례 오르자 심사위원들이 하는 수 없이(?) 상을 준 것이다. 심지어 2008년 상반기 139회 수상자인 양이[陽逸]는 재일 중국인으로서 중국어로 쓴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다. 우리 문학상도 이제는 연변 조선족 작가, 재미교포 작가, 재일교포 작가, 중앙아시아 고려인 작가들에게 ‘해외’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은 상을 줄 때가 되었다. 

‘북한 인권을 말하는 남북한 작가의 공동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금덩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망명북한작가 PEN문학』이 제5집을 내게 된 것도 괄목한 만한 일이다. 익명의 재북한 작가 반디의 『고발』이 미국 등 서구에서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획기적인 일이지만 김대호ㆍ김유경ㆍ김정애ㆍ도명학ㆍ림일ㆍ안명철ㆍ이지명ㆍ장해성 같은 소설가의 작품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연구되어야 한다. 국내 작가 중 박덕규ㆍ방민호ㆍ이대환ㆍ이정ㆍ정길연 등의 작업도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시집을 낸 북한이탈주민으로 김성민ㆍ김수자ㆍ이가연ㆍ장진성 등이 있다. 일일이 이름을 댈 수는 없지만, 좋은 작가로 성장할 재목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문인 중 탈북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이는 박덕규와 이정이다.

남북한 공동 소설집 제2권 『금덩이 이야기』

박덕규는 1980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뒤 1994년 소설가로 탈바꿈했고 지금은 시에 주력하고 있는 전천후 작가다. 1996년 첫 소설집을 펴냈으며, 이 해 가을부터 몇 년에 걸쳐 철저한 취재와 조사를 토대로 탈북 문제를 다룬 작품을 연이어 발표했다.

박덕규 소설집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

마침 이 무렵에는 소위 ‘고난의 행군’으로 식량난을 극복하려 한 북한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감에 따라 탈북의 물꼬가 터지기도 했다. 박덕규는 이렇게 북한의 뒷문이 열리면서 목숨을 걸고 사지에서 벗어난 탈북자들을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파란만장한 사연과 우여곡절을 소설이라는 그릇 속에 오롯이 담아냈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당신들』은 박덕규가 써 왔던 탈북 관련 작품들 중 8개의 중단편을 모아 엮은 것이다. 무사히 탈출했지만 이곳에 온전히 마음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탈북자들의 내면을 묘사했다. 

이정 장편소설 『국경』

이정의 장편소설 『국경』은 15년 동안 끈질기게 북한 사람들을 취재해온 소설가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남과 북에 사는 등장인물들이 우정과 사랑을 나누면서 현시점의 한반도 분단 현실을 정직하게 증언한다. 그 동안의 분단문학이 전쟁, 이산가족, 탈북자, 간첩 등을 등장시켜 제한적이며 옹색한 남북 간 주민들의 만남을 소재로 다루었다면 『국경』은 남북 주민이 평양과 중국에서 직접 만나는 현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바탕이 되고 있는 만큼 90년대 후반 이후의 남북한 현실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남북문제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소설집 『잔혹한 선물』을 내 화제가 된 도명학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수료하고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으로 활동했다. 반체제 작품 혐의로 국가안전보위부에 투옥, 2006년 출옥 후 탈북하여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북한개혁방송 프로듀서, (사)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국제PEN 망명북한작가센터 사무국장,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월간 『한국소설』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통일문학포럼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다. 

장편소설 『포 플라워』『삶은 어디에』를 낸 이지명은 국제PEN 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을 했고 지금은 문학지 『망명북한작가 PEN문학』의 발행인 겸 편집장으로 있다. 그의 두 작품은 KBS라디오에서 방송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되었다. 
  이밖에도 장혜성의 『비운의 남자 장성택』, 이주성의 『선희』 같은 장편소설과 김성민의 『고향의 노래는 늘 슬픈가』, 이가연의 『엄마를 기다리며 밥을 짓는다』 같은 시집이 화제가 되었다. 

글 한 줄이 천 마디 말보다 파장이 크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더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일이 곧 죽음인 사회에서 살다 온 탈북 작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 이제 그들의 언어는 자유롭다.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 바로 문학임을 그들만큼 절절이 깨달은 이들도 없을 것이다.     

문학인이 ‘통일’을 운위한다면 과연 어떤 통일에 대한 기대여야 하는 것일까? 당연히 문학사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새로이 쓸 한국문학사는 탈북 작가의 작품을 논의해야 마땅하다. 직접 체험하지 않고선 쓸 수 없는 글들을 탈북 작가들은 이 땅에서 쓰고 있다. 오직 그들만이 쓸 수 있는 소재, 그들만의 문체와 개성을 독특하게 보여주는 글들이어서 오히려 가치가 있다. 북녘에서의 생생한 체험과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에 오기까지의 역정은 오히려 문학적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아픈 기억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면서 그들은 아픔을 치유하고, 문학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고 있다. 그러한 문학이 바로 한국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점하는 시대가 이제 막 도래하였다. ‘그들’은 이제 ‘우리’이고, 그들의 글은 이제 우리의 글이다. 고난으로부터, 핍박으로부터, 나아가 분노로부터 문학은 태어난다. 700만 해외동포 중 창작 일선에 서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 문학이 더욱 풍성해지는 이 마당에, 탈북 작가들이 펜을 놓지 않고 있으니 이들이야말로 통일의 역군이 아닐까. 최근에 탈북 문인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쓴 바 있다.

그때 그 아이   - 김은경

벌써 6개월씩이나 
결석했어요.
난 불량한 아이였어요.

그래요
낮에는 하루 종일
농장 밭을 헤매는
난 이삭 줍는 아이였어요.

6개월 만에 찾아간
참 그립던 교실
선생님의 눈총에 맞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난 힘없는 아이였어요.

조심스런 인사 대신
매를 먼저 드신 선생님,
식량난에 결석한 난
온몸에 멍이 든
가난한 집 아이였어요.

자식이 맞은 것에 통곡하실까
어머니 앞에서 밝게 웃어 보였던
난 거짓말쟁이 아이였어요.

매보다 더 아팠던 건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나의 슬픔을 말할 수 없다는 것,

거멓게 나물물 든
손톱을 물어뜯으며
몰래 울음을 삼키던 그 밤에도
난 그늘 없이 자라고 싶었던 
어린 아이였어요.

[망명북한작가 PEN문학] (2016년 제4호)에서

최근의 탈북자 모자 사망을 보면 목숨을 걸고 남으로 온 이들에게 우리 정부가 보금자리를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그들이 남한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할 경우, 도와주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터에 선상 반란을 했던 두 북한 어부의 송환 조치는 더욱더 마음을 심란케 했다고 한다. 

이 시를 쓴 김은경은 북한의 기아 현실을 솔직히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꽃제비’라고 부르는 아이들에 대한 시인에 그때 그 아이가 6개월씩이나 결석한 이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 농장 밭을 헤매며 이삭을 줍기 위해서였다. 6개월 만에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은 오해를 해 매질을 한참 한다. 집에 가서는 어머니에게 멍든 몸을 보여줄 수 없는 아이, 밝게 웃어 보이기까지 한 아이는 철이 다 들었다. 

이 아이의 경우가 북한의 현실이라면 동족이기에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 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핵무기 개발과 실험에 쏟아 붓고 있어서 인민의 복지가 뒷전인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3만 명이 남에 가 있다면 북한 당국은 자성해 보아야 하는데 큰소리만 치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핵을 이용하려고 하니 잘 풀리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꽃제비’ 아이를 화자로 삼은 이 시는 탈북자가 쓴 것이어서 더욱더 가슴이 아프다. 문인이라도 통일을 꿈꾸면서 방안을 마련해 보았으면 한다. 말이 아닌 글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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