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후유증으로 입원해 치료받고 있는 아내

아내가 암에 걸렸다. 한국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 지난번 한국에 들른 김에 위내시경을 했더니 위암이라고 한다. 암에 걸린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암이라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암에 걸린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완치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 순간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다. 

호주에 도착해서 가정의(GP)를 찾았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검사 결과를 보여주었다. 가정의는 즉시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아준다. 같은 날 오후 소화기 계통 전문의와 마주했다. 전문의는 시드니에 있는 암 전문의와 약속을 잡아 주겠다고 한다.  

이틀 후 암 전문의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드니에 있는 콩코드 병원에 입원해 정밀 검사를 하자고 한다. 지방에 살면서 큰 병에 걸리면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일이 순조롭고 진행이 빠르다. 다행이다. 입원 날짜에 맞추어 시드니에 사는 친구 집으로 떠난다. 다행히 친구가 사는 집은 콩코드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로부터 위로 전화가 수시로 온다. 식사 대접도 받는다. 과일을 가지고 방문하는 지인도 있다. 심지어는 암에 걸리면 잘 먹어야 한다며 곰국을 집에서 끓여 온 지인도 있다. 시드니를 떠나 시골로 떠난 지 6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콩코드 병원에 입원해 내시경을 비롯한 자세한 검사를 받는다.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다. 의사는 완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위로한다. 입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도 친절하다. 특히 한국말이 조금 서툴지만 한국말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던 간호사가 인상적이다.
   

마스크와 가운으로 중무장하고 항암제를 투약하는 간호사

시드니를 떠나 서너 시간 운전해 집에 돌아왔다. 시골에 사는 이웃으로부터도 위로의 말을 듣는다. 꽃다발을 가지고 방문하는 이웃, 카드를 보내는 이웃 그리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이웃도 있다. 암에 걸렸던 이웃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에게도 전화를 걸어 바쁜 일이 있으면 아내를 돌보아 주겠다는 제안도 한다. 이웃에 사는 의사에게서 전문적인 조언도 듣는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조금 전에는 크리스마스 때 함께 지내자는 전화도 온다. 한국 사람이 없는 시골이지만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도 통한다.

세금을 내도 아깝지 않은 이유

치료를 받으려고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타리 병원(Taree Base Manning Hospital)을 찾았다. 의사로부터 치료 계획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몇 년 전부터 항암 치료(Chemotherapy)를 먼저 받고 수술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후 항암 치료를 더 받는다고 한다. 계산해 보니 치료가 끝날 때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린다. 항암 치료는 포스터 병원(Forster Private Hospital)에서 받기로 했다. 

항암치료 받기 하루 전날 포스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병원에 갔더니 치료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다. 부작용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설명이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약을 주면서 내일 집에서 떠나기 전에 먹으라고 한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약이라고 한다. 한 알에 수천 달러(수백만 원) 하는 비싼 약이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앞으로 6개월간 받는 치료비용이 무료다. 직장 생활 하면서 세금으로 낸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고난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다음 날 아침 고생이 심하다는 항암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도착했다. 간호사가 친절히 우리를 맞는다. 우리 집 주소를 자세히 보더니 간호사의 작은 아버지가 우리 동네에 산다고 한다. 이름을 들어보니 함께 골프 치며 지내는 이웃이다. 이런저런 동네 이야기를 나누며 간호사와 가까워진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아내가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주사기를 비롯해 쓰고 남은 쓰레기는 큼직한 비닐봉지에 버린다. 비닐봉지에는 독성 물질을 버린 쓰레기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간호사도 마스크와 가운으로 무장하고 약을 투입한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독성 물질을 몸에 투입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며 아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을 보낸다. 시드니에서 찾아온 지인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며칠 전에 초대받았던 집에 가서 식사도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 사는 친척에게도 큰 어려움 없이 항암 치료를 받았다는 연락도 취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통증을 호소한다. 식사도 하지 못한다. 항암 치료사에게 전화하니 응급실에 가라고 한다. 급하게 20여 분 떨어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아내는 입원까지 하면서 후유증에 고생한다.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아픔을 견디는 수척한 아내의 모습이 안쓰럽다.   

문득 목포 둘레 길에서 읽은 어느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고난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맞는 말이다. 아픔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죽음 저편으로 떠난 사람에게는 아픔이 없을 것이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삶을 반증하는 아픔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2019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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