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호주 최고의 국립과학연구기관인 CSIRO(연방과학산업연구원), 기상청(Bureau of Meteorology), 산불협동연구소(Bushfire Co-operative Research Centre)는 호주 동남부에서 ‘기후변화의 산불-기후 영향에 대한 공동 보고서’를 통해 “2020년 더 극심한 산불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연방과 주/준주 정부가 기후변화로 초래된 산불에 대비하려면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예측은 끔찍할 정도로 정확하게 적중했다. 호주가 사상 최악의 산불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8일까지 25명 사망(소방대원 3명 포함), 호주 전역에서 840만 헥타르(NSW 약 480만 헥타르, 빅토리아 약 120만 헥타르)의 임야 소실, 가옥 거의 2천채 소실. 셀 수도 없을 만큼(약 5억 마리 추산)의 동물 피해, 대기 오염 등 환경 피해는 추산조차 불가능할 정도다. 

특히 2019-20년 산불이 과거와 다른 점은 산불의 강도와 기간이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임야 중 들불(grassfires) 피해가 많았지만 이번엔 대부분 나무가 우거진 삼림 지대 화재(forest fires)의 피해가 매우 컸다. 그러기에 진화도 매우 어렵고 그 강도가 놀랄 정도의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산불은 이처럼 기후변화(지구온난화) 분위기에서 진화했는데 실질적으로 효율적인 대응책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진화 인력의 상당 부분도 자원봉사 소방대원들에 의지하고 있다가 한참 뒤늦게 예비군(3천명) 동원령을 내렸다. 호주 정부가 이처럼 한심하게 대응한 배경은 무엇 때문일까? 

2006년 ABC방송 시사프로 포 코너즈(Four Corners)가 지적한데로 미온적인 기후변화 대책의 뒤에는 막강한 힘이 있는 석탄-철강석 로비 그룹이 자유-국민 연립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지금처럼 ‘기후변화 반대 입장(anti-climate change stance)’을 취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인해 과거와는 전혀 양상이 다른 산불 사태에 대처하는 전략이 정부의 아젠다 안에 없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놀랍지 않다. 
지난 몇 주 사이 국민 다수가 목격한 것처럼 스콧 모리슨 정부의 무대응(government inaction)이 산불 재난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화석 연료 산업과 정부 안의 기후-부정론자(climate-denial) 그룹, 이들과 정치적 이념 성향이 비슷하고 그 사이에서 이익을 취해 온 보수 언론계가 이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할 차례다. 유권자들이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의회특검(로얄 커미션)을 가동해야 할 것이다. 
현재 세계가 호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수십년 방치할 경우, 호주(산불 사태)와 비슷한 재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대기 및 해양 오염 등 전반적 환경 이슈는 더 이상 개별 주/준주의 책임일 수 없다. 주/준주는 재원 등 대처 능력이 역부족할 수 밖에 없다. 연방 정부 주도로 비상재난부를 신설해 위기에 맞서는 훈련이 된 인력과 재원을 가진 국방력을 동원하고 전국적 재난에 대처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해 초당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생활방식 변화로 탄소배출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으로 동참해야 함은 물론이다. 
2020년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간인 환경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별 일 없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방치할 시간이 없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에 종말론적 재앙의 단면을 목격했다. 달콤한 정치적 속삭임에 속아 망각하면 또 당한다. 기후변화 방치는 환경 이슈에서 국정 농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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