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없이 사망하는 경우 상속법에 따라 상속이 진행된다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법이 적용된다'는 것이 실제 생활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속속들이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하다 보면 일반인들의 상식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는 다소 불합리하거나 안타깝게 느껴지는 일도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아래에 언급할 사례들도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 사례들입니다.

1. 가정 폭력이나 패륜을 일삼은 사람도 유산을 받을 수 있는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던 한 청년의 사례입니다.
이 청년이 아주 어렸을 때, 청년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시드니로 이사를 했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자녀의 안전에 대한 ‘Apprehensive Violence Order(AVO, 포괄적 폭력 금지 명령)'를 받을 정도로 가족에 대해 학대를 일삼고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이었습니다.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청년은 열심히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단 한 번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가족들 역시 아버지와는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청년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당시 미혼이었고 자녀도 없었으며 일반적인 젊은 층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재산이나 상속에 대해 계획을 수립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유언장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재산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administrator(상속재산관리인) 지정 신청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상속법에 따라 사망한 재산의 상속인은 고인의 부모이므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사망한 아들의 재산에 관해 동등한 권한과 권리를 가져야 함을 시사하였습니다.

그저 아들을 학대할 뿐 양육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연락조차 단절하며 아들이 살아있는 동안 남보다 못한 존재였던 아버지가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그로부터 상속을 받게 된 것에 그 청년의 어머니는 절망했습니다.

이러한 사안에 관한 상속법은 명확합니다. 누군가 사망했을 때에 생존 배우자나 자녀가 없다면 차순위 상속인은 고인의 부모가 될 뿐,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실질적인 인간관계나 친밀도 등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도 그저 그 청년의 친부라는 사실만이 상속법에서 요구하는 유일한 자격이었을 뿐, 평생 연락 한 번 없이 아무런 보탬도 주지 않고 오히려 아들을 학대했던 사실은 그 친부가 상속을 받는 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2. 얼굴조차 모르는 혈육에게도 상속이 되는가?
앞서 언급한 사례와 일부 유사한 사례입니다. 21세 여성이 업무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는데, 당시 남겨둔 유언장은 없었지만 보상금으로 받은 20만 달러 가량이 상속재산으로 있었습니다.

이 여성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몇 주 전에 가족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아버지라는 사람을 일평생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그 아버지 역시 딸의 얼굴을 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조차 잊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는 10만 달러를 상속 받게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그녀의 아버지 역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상속재산을 균등하게 분배 받을 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무연고자의 재산은 누구에게 상속되는가?
약 18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던 한 남성이 유언장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의 출생 증명서 등 공식적인 출생 등록이 확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혈육이 누구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전 재산은 정부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법에 의한 상속은 피상속인, 즉 고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재산이 갈 지에 대해 법은 오로지 법적인 관계만을 중요시할 뿐 당사자들의 실질적인 관계는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나를 학대했던 사람에게, 혹은 내가 증오하던 사람에게, 혹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는지조차 몰랐던 누군가에게 내가 모은 재산이 전부 상속될 수도 있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에게, 혹은 내가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던 사람에게, 혹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에게 상속 재산이 단 한 푼도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평생을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보다 가치 있게, 혹은 내가 원하는 대로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면 그러한 나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 유언장을 남겨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값진 선물이 될 것입니다.

면책공고: 본 칼럼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필자 및 필자가 소속된 법무법인은 상기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로 인해 발생한 직/간접적인 손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상기 내용에 기반하여 조치를 취하시기에 앞서 반드시 개개인의 상황에 적합한 법률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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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 및 감수: 김보영 한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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