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동안 단국대학교 박덕규 교수와 중앙대학교 이승하 교수가 진행한 재외한인문학의 면면을 살펴보는 글, ‘디아스포라의 여정’에 이어 2020년 상반기에는 재외 한인문학을 구성하는 호주 한인 동포 작가들의 글을 게재합니다. 필진은 시 부문에 공수진, 김인옥, 송운석, 윤희경(가나다 순), 그리고 산문에는 김미경, 유금란, 장석재, 최무길(가나다 순) 등 두 부문에서 4명의 작가가 참여합니다. 격주로 시 1편과 산문 1편이 게재될 예정입니다. 연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윈드미어 호수의 시]

유금란 

 

초록이 보이면 마을이 나타난다는 말이 한 줄 시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시가 아니라 사실이다. 

호주를 여행하다 보면 ‘참, 여기가 이민자의 나라였지’ 하고 새삼 느낄 때가 많다. 그것은 주로 두 가지 흔적 때문이다. 하나는 감옥, 또 하나는 광산. 이 두 낱말에서는 온기가 묻어나진 않지만, 말이 실재하는 장소에는 대개 기막힌 풍광이 펼쳐진다. 감옥과 광산의, 감금되고 억제된 거친 욕망의 이미지가 연상되어서인지 때로는 보는 이의 감성을 극한까지 몰고 갈 때가 있다.

고국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호주 정착 초기에 시드니 서북쪽으로 형성된 광산 마을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최종 목적지가 호주의 근대문학 초기 대표시인 헨리 로슨(1867-1922)의 고향 머지(Mudgee)였으니 절로 문학기행이 되었다.

머지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메마른 목장과 들판이 반복되어 펼쳐졌다. 어쩌다 등이 푸른 나무가 보이면 여지없이 작은 그늘에 검은 소나 양이 떼를 지어 몰려 있었다.
2월, 정오의 태양빛은 마른 들판을 눈부시게 했다. 들판은 추수를 앞둔 논처럼 황금빛으로 너울거렸다. 200여 년 동안 땅 속에 갇혔던 금맥들이 솟아올라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끔씩 달리던 차를 멈추고 마른 대지가 뿜는 기운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침묵처럼 먼 길을 달렸다.

모국 손님들은 길 위에 걸린 맑은 하늘과 구름의 조화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는 한동안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길을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사람이 산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후미진 곳에 마을이 나타나곤 했다. 마을이 나타날 때 마다 어떤 조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초록이었다. 초록에 이어 이정표가 나타나고,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 보면, 그곳에 정말 마을의 흔적이 있었다.
몇 개의 크고 작은 광산촌을 거치고 나서 조금 지루한 길이 이어질 즈음, 멀리 얕은 산등성이에 제법 넓은 초록이 어른거렸다. 나는 초록이 보이니 곧 마을이 나타날 것이라고 일행들에게 읊조리듯 말을 뱉어냈다. 
그 거 그대로 시네, 일행 중 한 시인이 내말을 받았다. 그러나 이 말은 시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초록이 보이면 그곳에 물이 있다는 것이고, 물이 있으면 거기에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뭐 대단한 발견일까만, 이 여행이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시작된 여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황무지를 달리고, 들판을 달리고, 목장을 달리고, 언덕을 넘고, 산등성이를 넘어 마을에 가 닿으면서 나는 마른 대지 위에서 숨통처럼 솟은 초록을 보았고, 초록이 어린 그곳에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윈더미어(Windamere)는 머지 가까이에, 그런 초록이 어린 곳에 위치한 인공 호수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내리막길 끝에 자리한 호수는 그릇에 담긴 물처럼 고요하고 반듯했다. 
호수 한 가운데 조각 같은 것들이 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끄덩한 나무들이었다. 꼿꼿이 서 있는 폼 새로 보아 뿌리를 물 속 아래에 깊이 박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적어도 호수의 역사 보다는 더 긴 수령을 가졌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잠긴 물 가운데서 흐르지 않고 버틴 세월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까. 회색빛 뼈처럼 되어 물속에 서 있는 나무들이 어쩐지 아슬아슬해 보였다. 

1984년 가을, 단양의 가을은 맑고 소박했다.
상선암 쪽에 잡은 민박집을 찾아 오르는데, 사과밭 길 가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꽃잎마다 사과향이 한들거렸다. 유혹이었다. 울타리 쳐진 철조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서리한 사과 몇 알을 콩닥대는 가슴에 품고 막 빠져 나오는데 가까이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렸다.
놀란 손에서 사과 한 알이 튀어나와 데굴데굴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 사색이 되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경운기 탄 사내가 우리 앞 쪽으로 지나다 멈춰 섰다. 사내는 잠깐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쳐 갔다.
명승지로 알려진 단양팔경의 일부가 물에 잠기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볼 수 없는 그곳을 보기 위해 배낭을 꾸린 터였다. 이미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한 마을은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가 그 곳을 찾기 위해 탔던 버스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어 그냥 지나치는 정류장이 많았다. 그곳 사람들 눈에 곧 물에 잠길 고향 땅을 구경삼아 다니는 철없는 청춘들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경운기 사내의 눈빛에 담긴 그 마음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다. 
그 시절, 물에 잠긴 것은 단양팔경의 일부만이 아니었다. 알밤 줍던 뒷동산, 담장 밑에서 졸고 있던 채송화, 학교 가며 건너던 돌다리와 동네 아낙들의 개울 빨래터도 함께 수장되었다. 지나온 세월과 함께 삶의 터전이 깡그리 물속에 잠긴 것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에게도 고향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고향을 빼앗긴 사람이나 고향을 두고 온 사람이나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제는 아득히 먼 곳이 된 내 고향은 그래서 내게 수몰된 땅처럼 여겨진다.이민자란 물 속 고향에 발을 내린 채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는 윈더미어 호수의 벌거벗은 나무인지 모른다. 물속 깊은 땅에 남아있는 고향을 빨아들이고 뿌리에 박힌 비늘을 털갈이 하면서 오늘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나무. 

이튿 날, 하루해가 막 산을 넘고 있을 때 우리는 다시 그곳에 섰다. 노을빛을 반사하는 수면 위로 헐벗은 나무들이 기묘한 행세를 드러냈다. 나뭇가지마다 까만 솜뭉치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저녁이 되어 자리를 찾아온 까마귀 떼였다. 마치 회색 뼈에 검은 꽃송이가 맺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 느낌을 툭 뱉자 그 시인은 이 표현 또한 한마디 시라고 했다.
어둠이 호수 주변의 형체들을 밀어낼 때까지 우리는 그 곳에 서있었다. 나무에 붙어있는 까마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물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나뭇가지를 쉼터라고 찾아든 새들의 귀환이 하도 장엄해 나도 모르게 이건 시가 맞아, 라고 중얼거리면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고향을 두고 왔다고 내 언어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어. 희망이 무엇인지는 몰라.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좋아. 어둠이 초록을 덮고, 내 그림자마저 삼켜 버리면 그때부터 물 속 내 고향은 달빛에 입을 벌려 지저귀기 시작 해. 그 것이 내 삶을 노래하는 시가 되는 거야. 윈더미어 호수의 벌거벗은 나무처럼.

 
유금란 (수필가, 산문집 ‘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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