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 120여개 장소, 7백여명 뮤지션 공연
‘골든기타 어워드’ 등 컨츄리 뮤직에 푹 빠져  

어쩌다보니 올여름 휴가는 탬워스 컨츄리 뮤직 페스티벌(TCMF)로 대신했다. 해마다 1월이면 열흘동안 NSW 내륙 지방 탬워스(Tamworth)에서 열리는 호주 최대의 뮤직 페스티벌...조그만 타운에 30만명 정도의 방문객이 몰린다니 사람 구경만으로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의 29년 동거인은 다시 태어나도 절대 갈 일이 없는 곳이지만, 같이 안가면 혼자라도 간다는 내말에 ‘자산관리’ 차원으로 따라 나섰다. 그에게 음악은 소음, 잡음의 동의어 혹은 비슷한 말이다. 그래도 데프콘(Defqon)같이 심신혼미한 페스티벌은 아니니 그리 걱정할 거 없다. 더우기 내가 새로운 볼거리에 빠져있는 동안, 당신은 좋아하는 맥주 마시며 엎어가도 모를 유툽 삼매경에 잔소리 없이 빠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하며 설득했다. 소비자 심리를 디테일하게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효력을 발휘한다. 디테일 안에 녹아있는 악마는 신경 안 쓰는듯 했지만 굳이 땡볕에 5시간 운전해 소음이 난무하는 곳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부조리의 극치라 느끼는 눈치였다. 

1972년부터 올해로 48번째를 맞은 TCMF은 지난 1월 17일 시작해 26일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에 막을 내렸다. 700명이 넘는 공연자가 120여 곳의 다양한 장소에서 2800여회 공연을 가졌다하니 분명 열흘간의 볼만한 음악 축제였다. 우리는 마지막 2박 3일인 24일부터 26일 그곳에 머물며 한사람은 음악을 듣고, 또 한사람은 소음을 인내하다 돌아왔다. 

금요일 밤 폭우로 공연 걱정
금요일(24일) 저녁 늦게 탬워스에 도착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때도 아니고, 감히 ‘비님’이 오시는데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수시로 번개가 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에 가까운 비라 밤 야외공연을 기대하고 있던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컨츄리 뮤직보다는 얼터너티브 뮤직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호주 시골 음악 축제에 가는 이유는 TCMF가 기존의 정통 컨츄리 뮤직뿐 아니라 점점 얼터너티브 컨츄리(alternative country)나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쪽으로 그 음악적 다양성을 수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진작 그랬어야지... TCMF는 바야흐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얼터너티브 록’ 본고장 탬워스호텔 
지난 연말 힘들게 예약한 애어비엔비 숙소에 먼저 들려 짐을 풀었다. 본채에 머물던 질(Jill)이 나와 인사했다. 탬워스에 온걸 환영한다며 자신은 남편 그란트(Grant)와 이틀 전 폴 캘리(Paul Kelly) 콘서트에 다녀왔다고 했다. 폴 켈리... 호주에서 조용필만큼 유명한 폴 켈리는 특유의 편안한 목소리와 삶을 진솔하게 담은 노래 가사로 지난 수십년동안 호주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대표곡 ‘From little things big things grow’는 인더스트리 수퍼 펀드(Industry SuperFund)의 TV 광고 음악으로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노래이다. 폴 켈리 이외에 호주 특유의 부시 발라드(Bush Ballard)를 비롯한 정통 컨츄리 뮤직은 특히  탬워스 남단 롱야드 호텔(Longyard Hotel)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렇다. 같은 탬워스 안에서도 공간에 따라 추구하는 음악이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정통 컨츄리 뮤직이 롱야드 호텔인 반면 내가 듣고자했던 얼터너티브는 탬워스 한복판 탬워스 호텔(The Tamworth Hotel)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거기서는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호주 얼터너티브 뮤직의 긱(gig, 소공연)이 이어진다. 뮤지션 라인업이 꽤 괜찮았는지 우리가 도착한 밤 11시에도 사람들로 빽빽했다. 호텔 뒷마당에 있는 야외스테이지 공연이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30분전에 안전상의 이유로 스톱됐단다. 실망...일단 맥주를 마시며 오랜 운전의 피곤함을 풀었다. 공연이 취소되었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던 관객들은 저마다 술잔을 하나씩 들은 상태로 자기들끼리, 혹은 하다만 공연으로 열기가 남아있는 뮤지션들과 떠드느라 끝없는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뭔가 많이 아쉬운지 모두들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약해진 빗줄기를 맞으며...

길거리, 쇼핑센터 어디서나 ‘라이브 공연’
다음날은 탬워스의 메인도로인 필 스트릿(Peel Street)에 머물며 버스킹(Busking, 길거리 공연)과 야외 무대공연을 주로 봤다. 엄청난 더위로 어딜 가도 숨이 턱턱 막혔다. 더위에 지칠때면 근처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호텔안 실내 공연을 보곤했다. 아니면 쇼핑센터 곳곳에서도 작은 퍼포먼스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는곳 마다 에어컨은 왜 그리 안 시원한지 이해가 안 갔지만 맥주는 환상이었다. 필 스트릿에만 100명이 훨씬 넘은 버스커들이 공연을 했다. 행사 기간 내의 모든 음악들은 뮤지션 자신들의 오리지날 곡들이다. 나는 혹시라도 제 2의 키스 어번(Keith Urban)이라도 발견할까 열심히 둘러 봤지만(어번이 필 스트릿 버스커 출신이라...) 적어도 그날의 필 스트릿에서는 없었다. 작년 TCMF에는 탬워스 타운홀에서 키스 어번 공연이 단돈 $20에 있었다고 한다. 니콜 키드먼과 결혼하며 인생이 통째로 바뀌고 미국 얼터너티브 컨츄리 뮤직의 아이돌이 된 그는 분명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작년 그가 탬워스에 떴을 때는 그러잖아도 더운 탬워스가 한층 더 뜨거웠으리라..

생업과 뮤지션 ‘이중생활’ 직면한 대중  음악인들
차량이 통제된 필 스트릿 곳곳에 마련된 간이 무대는 주로 이머징 아티스트들을 위한 공간이다. 자연 젊은 뮤지션들이 많고 아니면 오래도록 음악활동을 하지만 특별히 늘푼수가 없는 뮤지션들도 많이 보인다. 이유는 그들의 재능이 문제가 아니라 풀타임으로 음악 일을 할만큼 양과 질적으로 열악한 호주의 음악 산업 환경이 문제다. 어찌보면 호주 음악 소비자의 취향을 호주 뮤지션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국 편향적인 미디어 구조에서 미국의 메인 스트림 음악만을 노출시키니 생긴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호주 뮤지션들은 생업을 위한 일을 따로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음악적 자아는 또 다른 환경에서 표현하고 성취하는 이중생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펠리시티 우크하르트 ‘골든기타상’ 석권
25일 토요일 밤에는 TCMF의 하이라이트 행사인 CMAA(Country Music Awards of Australia) 일명, Toyota Golden Guitar Awards가 있었다. 2시간 넘게 진행되는 연중 행사로 우리로 치면 연말 가요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간 중간 계속 공연이 있으면서 각 카테고리 별로 시상식 하는 행사인데 티켓 값도 비싸고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골든 기타 어워드 엔트리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CMAA의 멤버이어야 하고 심사위원 패널이 카테고리에 적합한지의 여부와 더불어 참가여부를 심사한다. 올해 엔트리에는 600여곡이 올라왔다고 한다. 상업성을 배제하려는 의도인지 레코드 판매량에 의한 상은 하나밖에 없고 전적으로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이고 협의적인 판단에 의지한다. 다시 말하면 오랜기간 형성된 관계에서만 내부 포지셔닝을 허락하는 매우 ‘폐쇄적인 리그’라는 뜻이기도 하다. 호주 특유의 음악적 성향을 보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같은 이유로 정작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의 취향과는 점점 더 멀어졌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올해의 골든 기타상의 주인공은 센트럴 코스트 출신 펠리시티 우크하르트(Felicity Urquhart)로 6개 부문 골든 기타를 석권하고 앨범 프로즌 래빗(Frozen Rabbit)으로 토요타 올해의 앨범상(Toyota Album of the Year)을  받았다. 그야말로 행사 전체가 그녀를 위한 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년 6월 자살한 천재적인 앨범 제작자이자 그녀의 남편인 글렌 하나(Glen Hannah)의 유작으로 받은 상이니 기쁘기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 어린 두 딸과 아름다운 스타 와이프를 두고 자살한 업계 최고의 앨범 제작자는 무엇 때문에 생을 마감했을까? 아내 펠리시티는 아직도 남편이 자살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하니 와이프와도 나누지 못한 그의 외로움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그건 그렇고, 문득 Toyota가 아닌 Hyundai가 이 행사의 스폰서가 되면 분위기도 새로워지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또또, 질투는 나의 힘.. 뜬금없는 생각을 한번 해봤다. 

시드니 돌아오면 간절했던 컵라면..
돌아오는 길은 낮 운전이라 그런지 훨씬 수월했다. 뉴 잉글랜드 하이웨이(New England Highway)는 다행히 산불 피해의 흔적이 없어 보였다. 간혹 마실 나온 캥거루도 보였다. 타운을 벗어나며 탬워스의 포토존 빅 골든 기타(Big Golden Guitar)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갑자기 파송송 계란탁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그러고보니 그 흔한 사발면 하나 챙겨가지 않은 나의 무심함에, 이박삼일 내내 로컬 음식만 먹은 우리의 내장기관이 생물학적 정체성의 발현을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 나훈아, 금잔디의 트로트곡이 격하게 듣고 싶어졌다. 키스 어반(Keith Urban)은 무슨... 아아아, 변덕은 나의 힘. 나의 테리토리로 급하게 돌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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