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총리는 1월 중 내셔날프레스클럽(NPC)에서 새해 연설을 통해 그해의 의회 정치에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거나 새로 계획하는 정책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과 비슷하다. 

스콧 모리슨 총리의 29일(수) 프레스클럽 연설은 산불과 스포츠지원금 스캔들 등 총체적 난맥상을 보인 최근의 정치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다음 주 개원하는 의회 회기의 시작을 앞두고 만신창이가 된 총리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작년 말부터 연초까지의 약 한 달 동안은 모리슨 총리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치적 수난 시기‘였을 것이다. 이런 위기에 직면한 모리슨 총리의 새해 연설은 반성이나 변화보다는 종전 입장을 더욱 강화(double-down)하면서 변명과 옹고집으로 가득찼다. 비판자들에게 양보할 의향은 전혀 없었다. 
 
사상 최악의 산불과 관련, 모리슨 총리는 일체의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산불이 매우 심각했던 12월 중순 미디어에도 숨긴채 하와이로 연말 가족 휴가를 몰래 떠났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조기 귀국한 뒤 “실수였다”면서 사과했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호주는 지난해 9월부터 전례 없는 산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마도 3월경까지 연중 6개월동안 산불에 시달릴 것 같다. 이같은 산불 악화의 배경에 장기 가뭄과 기온 상승 등 기후 변화의 여파가 뚜렷하다는 것이 기후와 소방방재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12월 말과 1월초보다 산불이 누그러들었지만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피해를 내고 있다.
인명 피해만 거의 30명에 육박한다. 전국적으로 2,800여채의 가옥이 전소됐다. 남한 영토보다 큰 1천만 헥타르 이상의 임야가 불에 탔다. 생태계와 환경 피해는 현재로서는 추산조차 어려울 정도다. 

상황이 이런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모리슨 총리는 종전의 미온적인 대응에서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산불 대비는 주정부 관할임을 강조하며 백버닝(hazard reduction burning)을 확대하고 불에 잘 견디는 건자재(fire-resistant building materials)로 건축 규정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 한편 재난 비상시 주총리의 요청없이 연방 정부가 군부대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할 의향을 밝혔다.

모리슨 총리는 기후변화에서 일종의 원인(탄소배출)을 대처하는 것만큼 실질적으로 증상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핵심을 피한채 묘한 논리나 궤변을 전개하면서..
호주 정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도 상향 조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모리슨 정부는 에너지와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해  NSW를 시작으로 주/준주 정부와 양자 합의를 도출할 계획이다. 에너지 가격을 계속 현 수준으로 유지하고 전기 공급의 안정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세부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전임 말콤 턴불 총리가 추진하려다 총리직에서 밀려난 계기가 된 NEG(에너지보장정책)의 재도입 의향은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자유-국민 연립의 강경 보수파를 의식한 것이 분명하다.  

모리슨 정부는 브리지트 맥켄지 농업장관이 총선 전 체육부 장관 시절 1억 달러의 스포츠단체 지원금 중 상당 부분을 체육계의 요구를 무시한채 자유-국민 연립 여당의 백중 지역구에 일방적으로 배분했다는 감사원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정치적 신뢰성 추락과 함께 곤경에 빠졌다. 이 스캔들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의 선심사업을 위해 정부의 예산을 남용하는 대표적인 ‘정치적 포크-베럴링(political pork-barrelling)’임에도 불구하고 모리슨 총리는 “잘못한 점이 없다”면서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맥켄지 장관을 해임하지 않고 있다.   
그는 총리실 비서실장에게 맥켄지 장관이 각료 행동강령(ministerial code)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며 조사 결과에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다수 유권자들은 이같은 정치 작태를 보면서 분노하고 있다. 산불 재난 대처 능력 실망에 이어 정치 리더십의 실종이 계속되고 있다.  

모리슨 총리의 새해 연설은 한마디로 종전 입장 재강조일 뿐이다. 참신한 내용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이 어디인지 잘 알고 고치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양보하지 않겠다는 점과 이런 약점을 방어할 의향을 분명히 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실망한 유권자들은 2년여 남은 차기 총선에서 심판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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