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가운데 새해 첫 달을 보냈다. 아니 그렇게 떠밀려 온 기분이다.  감기 몸살에다 잦은 기침으로 며칠동안 밤잠을 설치곤 했다. 수년만에 겪는 일이라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산불과 가뭄, 메케한 연기 등에 너무 신경을 쓴 때문일까?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고 산불의 위협은 여전하다. 얼마 전에도 폭염 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 NSW남해안 지역에서 큰 산불이 일어났다. 거기서 산불 진화를 하던 소방 항공기의 추락사고로 대원 세명이 사망했다. 미국에서 지원 파견된 베테랑 팀이어서 안타까움이 크다. 세 영웅들의 삶과 죽음에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한다. 같은 날 켄베라 서편의 산불 지역에서 한 시신이 발견됐다. 그는 59세의 남성으로 지역 주민으로 확인됐다. 

몇 개월간의 산불로NSW 에서만 10만명의 주민들이 대피했고, 25명이 숨졌고 2천여채의 주택이 불탔다. 또한 4억 8천만 마리의 포유류, 조류, 파충류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에 코알라의 서식지들이 NSW에 집중되어 있어 호주 전체의 코알라들 중1/3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호주 전체의 산불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크다. 피해지역의 넓이가 남한의 전체 면적을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관광 및 유학산업, 다른 경제 및 사회적인 피해의 실상은 치명적인 줄 안다. 치유와 회복은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이것은 단지 호주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나라와 대륙의 경계를 넘어 직접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일본 기상청의 위성은 호주 산불의 규모와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푸르고 싱싱하게 빛나는 지구속에서 호주 대륙만이 피로 물든 것처럼 검붉은 색깔로 드러났다. 산불로 인한 연기들이 주위로 번지고 있는 것도 포착됐다. 그 일그러진 모습을 바라보며 섬뜩한 전율을 느꼈다. 실제 호주의 산불로 인한 연기 때문에, 뉴질랜드의 빙하가 흰색이 아닌 회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더 먼 남미의 하늘까지 영향을 준다고 했다. 바로 그 날, 미국에 사는 동생 내외가 남미 파타고니아 지방을 여행 중이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지난해 9월, NSW 중북부 해안가인 타리(Taree) 지역에서 처음으로 산불이 일어났다. 작은 타운 보빈(Bobin)의 주민들은 137년의 역사가 있는 학교를 포함, 순식간에 삶의 터를 잃어버렸다. 그 후  지금까지 그들은 임시 거처나 카라반 혹은 텐트 등에 살고 있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마실 물과, 불탄 잔해 등 쓰레기 처리와 자녀들의 학교 등을 얘기했다. 그러나  직접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펴주는 낯선 이웃들 때문에  힘과 용기,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시드니에서 온 한 부인은 직접 생필품 등을 차에 싣고 와서 주고 갔다고 했다. 어떤 부부는 자신의 카라반을 빌려주어 지금 거기서  살고 있는 주민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냥 그들 곁에 와서 함께 있어주며 임시거처나 텐트 치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외지인들의 배려와 나눔이었다. 그런 따뜻한 이웃들과 또한 서로 위로하며 함께 견딜 수 있는 주민들이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정상적인 상태로 복구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는가 하는 물음에 주민들은 최소 2-6년을 예상했다. 모두 옛 집터에 새로 집을 짖기 원하지만, 보험을 들지 않았거나 여유 돈이 없는 주민들도 많아 예측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부득히 떠날 수 밖에 없는 주민들도 있어 피해 전의 타운으로 회복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재를 당했던 그 다음 주일후부터,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복구하기 시작하여  82일만인 지난 주부터 수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비록 15명의 학생들을 위해, 우선 필요한 교실들과 화장실등 기본적인 것들을 위한 작업이었지만  피해 주민들에 의한 성취라는 점에서 감동을 준다. 내 마음까지 흐믓하게 해준다. 

구정이고 호주의 날 연휴라며 엔터런스(The Entrance)의 한 친구집에서 초대를 했다.  고마웠다.  저녁 식사후 해변 광장에 나가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바람이 서늘했고, 가까이서 즐기는 불꽃놀이도 인상적이었다.  폭죽이 높히 올라가 터질 때마다 화려한 색깔과 다양한 형상의 불꽃으로 밤하늘을 장식한다. 그러나 다음 폭죽이 올라가는 짧은 순간에 그 화려한 형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불꽃의 실체는 폭죽이 파열되고 가루로 부서져가는 아픈 과정의 빛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것을 보지 못한다.  새로 드러나는 불꽃만을 주시하며 환호한다.  계속 스러져가는 형상들도 관심이 없다. 곧 잊어 버린다. 불꽃만이 아니다. 산불이며 가뭄, 어떤 자랑이나 아픔, 건강이나 질병 또한 살다 보면 모두 지나간 것으로 잊어 버리지 않는가! 그런 스치는 생각이 어떤 치유와 소망의 빛을 주었다. 친구의 배려와  그 불꽃 쇼가 내게는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감기 몸살로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고, 감정의 찌거기들이 부서지고 사그러지는 경험이었다. 

볼 수 있는 어떤 이유와 조건으로 말미암은 위로와 기쁨은 인간적인 상정이다. 산불로 인한 피해든 사업이나  건강 혹은 가족문제로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그리고 저들을 위해 크고 작은 나눔과 도움의 손길들을 베푼 모두에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기쁨이 공유되기 바란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런 이유와 근거없이 주어지는 위로와 기쁨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 모두에게 더 필요한 경험이다. 오늘도 감당키 힘든 짐들과  문제 가운데 있는 모든 이웃들에게, 주님께서 그런 조건 없는 위로와 기쁨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2월 첫 주간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전염성이 강하고 3백명 이상이 숨졌는데 아직 그 실체도 밝히지 못하고  국제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이 질병의 위협이 반중 감정으로 또한 반아시아 차별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산불비상에 들어갔던 켄베라지역이 이번 주초의 강풍으로 더 많은 집들이 불탔다고 한다. 난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 있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속히 생활의 리듬을 되찾아야 함을 느낀다. 감사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매일의 삶에 충실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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