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시작되고 머지 않아, 한인들이 많이 사는 이스트우드 지역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인들로부터 감염되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꺼려 하는 동네가 됐다. 식당에 눈에 띄게 손님이 없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늘 붐비던 야채 가게와 정육점, 카페, 한인식품점 등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 그저 몇몇 사람의 고객을 제외하곤 예전 같은 활기를 찾아 보기 어렵다. 

잘 가던 식당에 오랜 만에 들렸더니 주인은 10여년을 장사를 하면서 이렇게 어려운적이 없었는데 정말 큰 일이라고 한다. 영화관도 짐(Gym)이나 수영장도, 항공사와 여행사와 호텔도 어렵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한에 사는 중국인들이 박쥐나 쥐, 낙타 같은 야생 동물들을 먹는 것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고 보도가 있었다. 남의 나라, 다른 문화의 식성까지 다 들춰 참견할 순 없지만 참 별의 별 것을 다 잡아 먹는다는 온 세상의 핀잔을 피하긴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백인들이 모인 장소에 가면 괜히라도 중국 사람은 아닌 양 옷도 깨끗이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다녀야 오해를 받지 않는다고 귀띔을 한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간 동안 상황이 급변해서, 한국의 대구 지역에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전국의 방역체계를 뚫고 퍼지는 괴현상이 일어났다. 온 세상의 뉴스가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이미 한국인의 입국 심사를 격상하고, 이스라엘은 입국을 차단했을 뿐 아니라 현지에 있는 관광객들과 방문자를 자국 전세기에 태워 한국으로 돌려 보내는 일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진행했다. 

어제 한국의 확진자의 수가 1200명을 넘었고, 최대 1만 명의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는 미국 JP모건의 전망은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하게 한다. 지난 주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러스가 머잖아 종식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잘 관리되고 있고 심각한 병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던 것과는 판이한 현실이 된 것이다. 며칠 전 만해도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석권하면서 온 국민이 한국인인 자부심을 한껏 자랑스럽게 생각 했는데 며칠 새 온 세상에 대역 죄인같은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세에 ‘신의 재앙’이라고도 불렸던 페스트(흑사병)는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2400만명이나 죽게 한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지금은 중국인들이 병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그 시대엔 유대인들이 온통 누명을 쓰고 그들이 살던 게토에서 쫓겨나고 잡혀가고 화형에 처해지는 일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느라 매주 집안 청소를 거르지 않는 청결 생활을 유지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결함을 핑계 삼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당시의 우물을 사용할 때 쥐나 다른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뚜껑을 닫아 두어 페스트에 걸리지 않자 그들만 걸리지 않은 것이 바로 병을 일부러 일으킨 증거라는 누명을 씌웠다.  

누군가 정치적인 희생양을 삼아야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면할 수 있는 세대를 막론한 세상의 속성이 지속될 뿐이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아야 했던 힘없는 자의 설음이 그저 억울할 따름이다. 페스트처럼 치사율이 높았더라면 지금 이 시대에도, 유대인처럼 유럽에서 천덕 꾸러기 취급을 당했던 비극이 우리에게도 재현될 수 있다.  페스트는 그 시대의 봉건 영주들과 제도에 대한 심한 회의를 불러왔고 결국 봉건시대의 종식과 근대로 진입하는 변화를 맞이한 계기가 됐다. 우리는 이 신종 바이러스의 창궐 뒤에 어떤 역사적 결론이 내려질 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한국은 극장도 문을 닫고 시장도, 병원도 문을 닫고 있다. 교회도 성당도 설립이래 예배와  미사가 중단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젠 사람들과 악수를 해서도 안되고, 만나서도 안되고,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는 일도, 힘을 합해 함께 기도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떠들고, 온정으로 허깅을 해 주기 보다 내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상대가 혹시 보균자가 아닌지를 경계해야 하는 불신의 시대가 됐다. 

무심코 바라보는 TV에는 혼자 남아 생존해야 하는 마지막 시대를 비유한 암울한 영화의 장면들처럼 모두 마스크를 끼고 회의를 주재하는 생소한 정부 지도자들의 모습이 잡힌다.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채  생명을 살려 보려고, 현장에서 흰 방역복으로 머리에 헬멧을 쓰고 발끝까지 무장한 방역 스탭들과 마스크를 군대 차량으로 호송하기 위해 작업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곧 지구가 멸망하는 장면을 미리 보는 것 같은 우울함으로 내려 앉는다. 

육체도 그렇지만, 영혼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개발된 백신이 없다면 손써 볼 방법이 없다. 다행히 신은 우리에게 영혼이 치유될 수 있도록 백신을 일찌감치 마련해 주셨다.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가 마음에 수혈되면 오염된 영혼이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나도록  이미 이 천년 전에 ‘신의 한 수’를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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