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이민을 와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조용하고 안락한 라이프 스타일’일 것이다. 법질서를 지키는 시민의식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관습이 이런 선진 라이프 스타일을 뒷받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아파트 공화국에 익숙한 한인들에게 호주의 자연 환경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과거 깨끗한 공기가 많이 거론됐지만 2019-20년 여름 산불로 호주 대도시가 화염 연기와 재로 뒤덮인 모습이 전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산불 재난은 기후변화와 환경 관리에서 호주가 가야할 길이 멀었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시켰다.  

호주는 장기 가뭄 후 산불, 홍수에 이어 ‘미증유’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겪고 있다. 그동안 호주는 비교적 확진자가 많지 않았지만 이번 주 대폭 증가했다. NSW는 3월 4일 현재 확진자가 22명이고 전국적으로는 52명으로 늘었다. 이 중에는 한국을 다녀 온 60대 여성도 포함됐다. 중국(우한)에 이어 이란 방문자들의 감염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병원 의사와 양로원 직원이 대인 접촉으로 감염돼 지역사회에서 빠르게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
이런 와중에 안타깝게도 5일 호주 정부가 호주인의 한국 여행 금지와 한국인 호주 입국 금지(제한)를 결정했다. 중국, 이란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 금지국이 됐다.  
 
이번 주 슈퍼마켓에서 화장지 등 생필품 사재기(hoarding)가 요즘 주요 뉴스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 식품점 등에서도 비정상적인 쌀, 라면 등 충격 구매(panic buying)가 벌어졌다. 슈퍼 마켓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니 “늦은 밤 시간대에 여러 명의 아시안들이 나타나 싹쓸이를 해갔다”는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독감처럼 대유행이 될 경우에도 화장지나 쌀은 거래 수단(화폐)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불안 심리가 ‘도미노 효과’를 주면서 이런 사회적 부작용을 부채질한다.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소비자들이 ‘패닉 버튼’을 자꾸 세게 누를 경우, 사재기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profiteering) 부류가 생길 수 있다. 

호주에서도 가끔 성탄절 연말연시나 부활절 연휴 기간 전에 작은 수준의 음식 사재기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번 만큼 정도가 심한 사재기 현상은 아마도 근래 40-50년 사이에 처음일 것이다.

오늘자 금요단상에서 곽승룡 신부는 “손 세정, 자가 격리, 공포심 내려놓음을 통해..” 아주 명쾌하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호주 소비자들도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더불어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와 더불어 ‘어글리 아시안’이란 욕설이 보편화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 우리 차세대가 설 자리를 부모세대가 좁히지 말아야 할 것이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쾌적한 도시환경에서 서두르지 않고 절서를 지키며, 상식선에서 예측 가능한 호주 사회의 장점이 흔들리는 것은 곤란하다. 바이러스 차단 이상으로 우리가 더 지켜야할 것이 바로 이런 호주의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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