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인치의 대형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테슬라 모델S.

과거 부의 상징이었던 자동차는 이제 창밖만 내다봐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흔해졌다. 하지만 대당 개발 비용만 수억 달러에 달하고 공학, 미학, 경영학 등 각 분야가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야 할 만큼 복잡하기도 하다. 그래서 자동차를 알면 산업이 보이고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개인 블로그를 통해 자동차를 연구 중이며, 한국에서 도로교통사고감정사, 도로교통안전관리자, 자동차진단평가사 등 자격을 갖고 있는 김진호 자동차 칼럼니스트의 글을 매달 한차례씩 게재한다(편집자주) .

작년 말 호주 NSW주는 세계 최초로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적발 카메라’를 도입했다. 2월까지는 유예기간이었으나 3월부터는 적발될 경우 $344의 벌금과 벌점 5점, 스쿨존에선 $457의 벌금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단속은 신호 대기나 교통 정체 상황에서도 적용되며, 고정형이 아닌 이동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은 현재 호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불법이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시선이 전방에서 벗어나고, 시선 이동은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출시되는 차들의 디스플레이는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예 커다란 화면이 없으면 신차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업계에선 2022년경 자동차의 70%가 8인치 이상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차량용 디스플레이가 커진 건 내비게이션의 보급과 맥을 같이한다. 앞 유리에 따로 장착되던 내비게이션이 옵션으로 탑재되면서 커다란 화면이 필요해졌고, 목적지를 입력하기 위해 터치 기능이 덧입혀졌다. 출력 기능만 있던 디스플레이에 입력 기능이 추가된 것도 이때부터다. 화면이 커지자 모두가 환호했다. 소비자들은 화면이 작은 차보다 큰 차를 선호했고, 제조사는 원가를 줄일 수 있었다. 물리 버튼이 줄어들수록 부품 사출 공정이 적어지고 그 자리에 모니터만 놓으면 차가 완성됐다.

음량 조절, 전화 수신 등 다양한 조작을 손짓만으로 수행하는 BMW의 제스처 컨트롤.

문제는 화면 크기 증가는 안전 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기존 물리 버튼은 촉각만을 이용해 센터페시아(center fascia)를 조작할 수 있었다. 운전하면서 굳이 시선을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반면 터치스크린은 센터페시아를 조작하려고 한 번, 그리고 옳게 조작했는지 확인하려고 또 한 번 시선을 돌려야 한다. 버튼 간 경계선이 없고 이를 촉각만으로 구분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컴퓨터 타이핑은 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조작하기 어려운 걸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참고로 센터페시아는 대시보드 중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패널로 흔히 자동차 내부를 봤을 때 다양한 버튼이 모여있는 곳을 떠올리면 된다. 이곳에는 오디오, 에어컨, 히터 컨트롤러, 내비게이션, 송풍구, 시가잭, 재떨이, 컵홀더 등이 있다.

자동차 회사들도 시선 이동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차들은 정지 상태에서만 영상이 재생되거나, 메시지를 화면에 띄우지 않고 음성으로 읽어주는 등 ‘주행 규제’라는 테두리 안에서 설계된다. 스티어링 휠에 각종 조작 버튼이 붙어 있는 것은 운전자가 다른 곳으로 손을 뻗지 않도록 함이며, 전자식 계기판이나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운전자의 전방 주시를 돕기 위한 대표적인 장비다. 최근엔 기술이 발달해 음성인식이나 손짓과 제스처만으로 조작이 가능해지고 있다. 운전하면서 전방을 주시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디스플레이의 크기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정보와 기능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실내 온도나 바람 세기를 조절하는 간단한 기능마저도 화면 안에 내장시키는 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린 시선 이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에어컨 온도를 낮추려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야할지도 모른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이 위험하다면 화면 조작도 충분히 위험하다. 

특히나 자동차는 잠깐의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도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운전은 매우 중요하다. 

커다란 모니터 앞에서 앞으로의 규제는 어떻게 될까? 향후 자동차 산업계와 입법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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