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에 뛰어든 (왼쪽부터)황교안·이낙연

주로 1970-80년대 미국의 연구와 실용 분야 모두에서 각광을 받던 언론 이론으로서 대중매체의 의제설정 기능(the agenda‐setting function of mass media)이라는 게 있다. 매체는 개인과 사회를 바꾸는 큰 힘(기능 또는 역할)을 갖는데 그 하나가 특정한 이슈를 골라  크게 또는 자주 보도해 나간다면   대중은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거나 긴급하다는 감각, 즉 “이것이 오늘 우리가 먼저 돌아봐야 할 사항”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는 가설이다.
 
언론이 국민들이 어디에 먼저 신경을 써야 할 것인가의 풍향계 노릇을 한다는 건 우리가 체감으로도  알게 되는 지식이기도 하다. 다만 그 관계를 좀더 과학적(또는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게 학문이다.
 
리서치 방법론은 이러하다. 작년 10월 1일부터 금년 2월 말까지 3개월 간을 기준으로 해보자.  먼저 그날부터 매주(또는 매월)  주요 매체가 보도한 이슈들을 코드화해서 적는다. 그 작업은  구체적일수록 좋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경제, 정치, 선거, 교육, 대북정책, 외교안보, 환경, 범죄 등으로 넓게 나눠 본다.,
 
 그와 함께 각 시점을 기준으로 국민들이 무엇을 중요한 현안 국가적 이슈로 머리 속에 적었는가를 같은 방법으로 조사한다. 양자 간, 즉 매체의 보도 패턴과 그 이슈에 대한 국민의 시각 추이 간에 상관관계(Correlationship)가 성립되었다면 이론은 실증된 것이다. 과거 모든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그러므로 가설은 아니다. 그간 연구방법론에  약간의 보충이 되었을뿐 이 이론은 지금도 그대로다.

빠른 고국의 텔레비전 화면
언론 이론 한 토막을 알리려는 게 아니다. 오는 4월  총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매체가 보도하는 내용을 생각 해보고, 그게 고국은 물론,  갈수록 그의 일부 또는 예속(?)이 되어 가는 해외 한인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단상(斷想)이다.  왜 예속인가는  다음 기회에 써보고자 하지만,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버튼 하나 누르면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 텔레비전 화면,  실제 거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해외 한인들을 보면 그렇다. 사람들의 대화거리(topics of conversation)가 대부분 언론 보도에서 나온다. 여기 1세대 한인들이 서로 대화하는 걸 보면 한국의 텔레비전을 보고 알게 된 사항들이다.
 
매체의 보도 내용을 체계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방법론이 내용분석(Content analysis)이다. 그 일은 여기서는 어림도 없고, 눈짐작으로 말해보자. 요즘 한국 매체의 시사 보도는  얼마 전까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갈에 따른 전쟁 공포,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압도적이다. 그게 돌발적이라고 한다면,  그 저변을 꾸준하게 흐르며 구성원의 관심을 끌고 가는 보도는 역시 총선거 관련이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더 그럴 것이다.
 
대선과 총선은 모두 중요한 국가적 행사다. 그 선거 보도에 매체가 지면과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면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의 고국과 해외 한인사회의 현실을 볼 때,   구태의연한 단순한 사실 보도를 넘어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길을 밝히는 총체적으로 분석.해설하는 교육적이며 심층적인 보도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게 문제다. 신문에 잘 쓴 칼럼들이 많지만 길이와  성격으로 봐 단발 용이 되고 만다.  특집이 있지만 그런 수준의 지면을 잘 못 본다.  하루 단위로 나오는 신문보다 리서치를 할 시간이 많은 월간지가 그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마찬가지다. 긴 글은  많지만 누가 이길 것인가를 점치는 판세 분석 말고는  독자의 취미를 좇는 내용이 주로다.    
 
아래 몇 가지 사례로  나눠 써 본다.
 
 (1)그간 선거 때마다 한국 언론은 유권자로 하여금 ‘눈을 부릅뜨고’ 투표장에 나가라고 경고 해왔다. 매우 상식적인 주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크게 부릅떠 봐도 선택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게 오늘의 대의민주주의 딜레마다. 오죽하면  영미사회에서도 “덜 나쁜 놈을 뽑는 게 선거다(The lesser of the two evils)”라는 말이 생겼을까마는  후보들의 상대에 대한 비방을 들어보면  모두  ‘나쁜 놈’이다.
 
 왜 참신하고 걸출한 정치인이 드물까? 한마디만 한다면 정치 입문부터가 문제다. . 권력자나 실세의 편의나 그들에 대한 충성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그 관문을 거치는 인물들은 거의가  같은  물속에 자란 같은 물고기라는 것이다.
 
 (2)정치인들의 행태와 그걸 보도하는 언론을 보면 선거가 만사인 것 같다.  매번  보도의 초점은  어느 쪽, 어느 집단이 집권할 것인가에 있고,  국민의 관심도 거기에 모아진다. 그러나 선거 후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과거 민생고를 챙기지 않고,  철통 같은 안보를 약속하지 않은 정권이 어디 있었나? 그간 한국이 크게 발전한 것은 부지런한 국민성과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유리했던  서방 국가의 넓은  시장 덕이었지  정권을 잘 뽑아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헌정사상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선거는  5.16군사 혁명 후 군정 연장이나 민정 복귀냐를 놓고 격돌한  1963년의 박정희와 윤보선 간의 대결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헌정을 파괴한 세력이 어떻게 선거에서 승리 할 수 있었을까?  선거라는 게 과연 믿을만한 정치 제도인가 묻게 된다.
 
먹자 골목의 식당인가 정당인가
 (3)선택 대상이 없기는 정당도  마찬가지다.  광복 후 무려 100개도 넘는   정당이 난립하는 혼란 속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나 자신도 먹자 골목의 식당처럼 너절한 그 이름들을  기억 못한다. 소속 정당의 전망이 안 좋거나 공천을 못 받으면 뛰쳐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든가, 아예  하나를 만들어버리는 철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 때문이다. 그러니 건전한 양당제도가 정착 될 수 없어 정국은 늘 불안하다. 그런데 이 게 잘한다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내보내는 보도는 이 망국병을 부추긴다.
 
(4)또 하나는 우리 언론의 장기인  흥미성 보도다. 한국의 정치 일번지인 종로구에 두 ‘정치 거목’이 대결 한다는  ‘종로대전(鍾路大戰)’이나 또 다른 거물들이 대결하는 어느 지역구의 ‘빅 맷치’가 초미의 관심사라는 뉴스가 그것이다. 두 헤비급 권투 선수가 링 위에서 대결하니 고대하라는 광고 같기도 하다. 선거 때마다 온 나라가 해운대 해수욕장처럼 들뜨는 이유다. 또 왜 이 사람들이 정치 거목인가? 정권의 편의에 따라 높은 자리를 지냈으면 거물이고 못했거나 안 한 사람은  조무래기인가? 용어 선택에도 조심해야겠다.
 
엄청난 국가 재원을 소모하는 선거가 그런 식이라면 선거 대신 제비 뽑기로 당선자를 정하자는 논객이 생길 만도 하다.  대학 3학년 때니 반세기가 훨씬 지났다. 선거제도론을 가르치던 교수가 강의 중 투표 기권도 적극적인 의사 표시라고 말해 온통 웃음 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높은 지지율을 빌미로 오만하게 구는 정권이나 정치인을 생각한다면 그것도 한 가지 대안이다.
 
 선거 무용론을 펴거나 투표장에 될수록 나가지 말자고 권하는 게 아니다. 선거에 대한 좀더 냉철한 이해와 몇 푼의 일당(그게 아직도 있다면)이나 그저 출세 길을 좇아 선거 캠프에 끼어들지 않는 양심을 바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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