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의 세균 공포탄(?)이 중국을 시발지로 한국, 일본을 거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호주 등 전 세계로 퍼지며 지구촌에 두려움과 공포의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동안 추이를 지켜보며 은인자중하던 세계보건기구(WHO)가 마침내 전염병 최고 경보 단계인 ‘팬데믹(pandemic: 대유행 )'을 공식 선언했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달라 그 크기가 박테리아의 100분의 1이며 다른 유기체의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만 생물활동을 하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형태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대체로 겨울철을 맞은 북반구 나라 중심으로 감염이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열대 지방이나 여름철인 남반구 국가들은 청정 지역이었다.
그런데 가을에 접어들자 호주에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긴장감이 더해 가고 있어 더욱 경계심이 요망된다. 일부에서는 사재기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이 전염병은 독감의 일종으로 겨울에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어 남반구 국가들도 위험군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 사례 중 한국에서는 신천지교회 사태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등록 교인 20여만명이라는 많은 숫자도 놀랍지만 신도들 중 청년층의 비율이 70%를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나 또 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지성과 이성을 갖춘 청년들이 기독교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교회에 열광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청년 실업과 꿈의 상실로 인해 많은 청년들이 절망 속에서 두렵고 불안한 미래에 고립감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곳을 찾아 헤맨 결과가 아닐까? 또한 ‘내세 구원론’을 소리 높이 외치며 축제를 열고 예수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있는 서울의 일부 대형 교회들의 일탈에 절망한 점도 한 몫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신천지 탈퇴자들은 “신천지교회는 내세 구원론 보다 현세 구원론으로 기성 교단의 틈새를 파고들어 영성을 자극하여 신도들을 조직적으로 포섭한다”고 증언했다. 북한의 카드섹션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수료식이 유튜브 등에 떠돌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지만 종교의 본질을 변질시키며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상식 이하의 행동과 자기 교리에 굴복시키는 교회는 사이비 이단으로 평가 된다.

한국 이단 교회들의 역사를 보면 ‘자칭 교주’가 사망하면 그 교회도 사멸되는 결과를 보여 준다.

코로나 사태에서 우려 되는 점은 전염병 자체보다 감염병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이다.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견인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공포 그 자체”라고 갈파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 교육, 경제, 무역, 금융, 관광, 올림픽을 비롯한 체육계 등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사회 활동을 통한 개방적 사고와 합리적 협동 정신의 함양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희망을 찾아야 한다. 공포는 언제나 실제보다 무서운 것이다.
또한 공포는 위험보다 크다(Fear is often greater than the danger)고 서양에서도 전해진다.

그러나 공포가 있는 곳에 희망도 있다. 15세기 포르투갈 항해사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당시 인도와 극동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전력투구한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디아스는 아프리카 대륙에 땅 끝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장장 1만km에 달하는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높은 파도와 태풍으로 인한 공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탐험한 끝에 마침내 아프리카 대륙이 끝나고 처음으로 동쪽으로 도는 지점에 있는 희망봉(Cope of Good Hope)을 발견해 국제 무역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지겹고 긴 항해 중에도 희망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철리를 증명해 주었다.

세계의 IT 업계의 선구자인 빌 게이츠도 예언했듯이 앞으로 인류의 더욱 큰 적은 핵무기보다 바이러스 균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어쩌면 바이러스 균이 인류의 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겠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천적이 없는 동물은 시간이 갈수록 허약해지고 천적이 있는 동물은 점점 강해지고 웬만한 공격은 스스로 이겨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받은 고통과 두려움은 인류에게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겸손을 가르치려는 시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시드니-인천을 운항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상당 기간 결항됐고 많은 세계 항공사들이 국제선을 감축했다. 콴타스는 국제선의 90%를 줄였다. 
그런데 태양을 중심으로 우주 공간을 비행하고 있는 지구 행성을 타고 있는 70억명의 승객은 마음대로 운항을 줄일 수도 타고 내릴 수도 없다. 한마디로 ‘공동 운명체’이다.

동승하고 있는 지구 승객끼리 고립과 단절보다는 협조와 봉사를, 불화와 분쟁보다는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게 된다면 천적(?)으로 등장한 바이러스도 인류의 면역력과 백신으로 소멸 되리라 확신한다.

모든 나라는, 모든 인종은 서로 이어져 있다. 바다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섬도 뿌리는 대지에 이어져 있지 않는가?

자, 이제 <씻기>와 <걷기>를 생활화하자. 손, 얼굴, 몸 씻기를 철저히 실천하면서 바이러스가 비누를 만나면 자살한다고 하니 비누를 애용하자.
<걷기>는 하루 세끼 밥 먹듯이 습관화한다. 노인이나 직장인은 제자리 걸음도 추천한다. 걷기야 말로 최고의 양생술(養生術)이다. 양생이란 기(氣)∙정(精)∙신(神)을 잘 순환시켜 생명력을 보전하는 도가의 의학적 비전이다.
걷기는 거의 모든 병의 치유법에 속한다. 손자병법에 ‘삼십 육계 줄행랑’을 표현하는 말인 ‘걸음아 날 살려라’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상한 일 이지만 남을 또 다른 나 자신으로, 생명의 한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로 해석하자. 사람의 이성과 지성으로도 해석이 어렵다면  기도가 우리를 도와 줄 것이다.

전설적인 지혜와 슬기의 왕 솔로몬이 왕자 시절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명언이 우리를 일깨우게 한다.

“지금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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