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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브릿지] 역병을 이겨낸 선조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26 14:06

매일 매일 쏟아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뉴스에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단순한 생활 리듬 속에서 혹시나 내일이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희망을 품어본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현재 이 역병의 소요가 어떻게 풀려 나갈지 걱정도 크지만 한편으론 이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 

대유행인 코로나바이러스(COVID-19)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1.5m)인 인간관계와 극단적인 개인주의 탐욕으로 사람들의 사회의식을 바꿔놓는 상황에 이르렀다. 언젠가 끝날 일이겠지만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흔들고 있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요즘 세상에서 하늘과 바다를 맘대로 넘나들며 사는 것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값진 경험도 얻게 되었다. 마음 졸이는 현 세태를 지켜보면서 의료제도나 의약품 그리고 의료시술이 열악했던 옛 시대의 선조들은 그 많은 역병들을 어떻게 이겨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광해군은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로 알려진 허준에게 일반 백성들이 전염병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예방할 수 있도록 책을 저술하게 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출판한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다. 허준은 전염병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연의 섭리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봄에 따스해야 하는데 춥거나, 여름에 더워야 하는데 서늘하거나, 가을에 서늘해야 하는데 덥거나, 겨울에 추워야 하는데 따스하다면 반드시 전염병이 생긴다고 했다. 사계절이 그 성질에 맞게 운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철학적인 이론같지만 이치에 들어맞는 말인 듯하다. 이번에 나타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자연을 함부로 취급했던 인간들에게 울리는 경종의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 후기에 유난히 각종 전염병이 많이 돌아서 인구의 5퍼센트가 줄어든 경우도 있었다. 1821(순조 21)년 8월13일, 평안감사가 왕에게 보고하기를 “백성들이 순식간에 죽어나가는데 치료할 방법과 약이 없고 인근마을에도 퍼져서 십일 만에 천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 괴질(전염병)을 호열자(콜레라)라고 부르는데 호랑이가 살을 찢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붙인 병명이었다. 19세기 초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와 있었던 에비슨(Oliver R. Avison)이 쓴 기록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대문에 고양이그림을 붙여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쥐 귀신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쥐 귀신이 역병을 몰고 왔다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인해서 고양이 그림을 부적처럼 대문에 붙이고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의료시설과 의약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대에 민간인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마음의 의지처가 아니었을까 싶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전염병이 서울 지역에 특히 심하게 번져나가니 왕이 예조에 명해서 역병 귀신이 물러나기를 빌며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라는 글이 기록되어있다. 또한 왕의 부덕함을 탓하며 조세를 감면하거나 죄수를 사면해서 하늘에 복을 빌기도 했다. 
이런 역병으로 인해서 생긴 우리 전통 중의 하나가 ‘동짓날 팥죽’을 끓여서 가족들이 나눠먹고, 대문입구에 붉은 팥죽을 뿌려서 귀신이 문지방을 넘지 못하게 하는 주술적인 민간 신앙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염병에 대한 주술적 접근과 의학적 접근이 공존하던 19세기 초에 처음으로 호열자라는 괴질이 전국을 휩쓸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그 후 부산, 원산, 인천에 검역소가 설치되었고 조선 최초의 항만검역이 실시됐다. 처음 콜레라가 발생 한 후 65년이 지나서야 육상검역과 소독 방역이 시작되었으며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설립됐다. 서양의사 에비슨을 방역책임자로 임명해서 민간인들에게 방역에 대한 ‘호열자병 예방주의서’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으니 이때부터 조선은 위생의료 체계의 근대화를 시작한 셈이다. 19세기 무렵 세 번에 걸친 호열자로 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도 의학의 발달로 인해서 점차 균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기도와 미신적인 주술의 힘으로 병을 이겨내려던 조선 백성들의 의식도 변하게 되었다. 마을마다 동네어귀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을 세워놓고,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를 올리던 일은 전설의 고향으로 남아있다. 

18세기 후반, 신비의 약초로 불렸던 남령초(담배)에 관한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1760년 이익의 ‘성호사설’에 이에 대한 사례가 소개됐다. 가래가 차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남령초를 피우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서 조선의 하늘이 하얀 연기로 뒤덮였다는 속설이 있었다. 담배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와 재난이 심각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던 백성들의 무지로 인해서 감내해야했던 고통이었다. 그런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삶을 버텨낸 선조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현대의학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는 희귀병들이 점차 늘어나는 이 현상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있다. 백신을 개발하는 의약연구소에는 대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을 살리는 보람된 일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상업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언제쯤 이 위기의 시간이 지나갈지 그저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신께 기도할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를 서로에게 나누는 마음이다.

황현숙 (객원 칼럼니스트)  teresacho737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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