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달 전 이 칼럼의 제목은 ‘기생충과 곰팡이’였다. 그때만 해도 전혀 몰랐다. 기생충을 밀어내고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삼켜버릴 줄은. 사태가 점점 심각해 지고 있다는 생각에, 그 상황을 눈과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다. 지난 3월 19일 목요일이었다. 시내로 나가 오페라하우스가 건너편에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보통 때와는 달리 세자리나 비어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호텔 로비 커피숍으로 들어가 롱블랙을 시켰다. 신문을 하나 집어 들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천정까지 닿아 있는 오른쪽 유리 벽으로 거대한 크루즈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뭘 기다리는지, 아니면 다 내렸는지 잘 몰랐다. 거의 두 시간을 채우고 나왔다. 이미 내 앞에 있었던 손님들은 다 나갔고 나 홀로였다. 나를 위해 4명의 종업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커피값으로 6불을 결제했다. 그 돈으로 난 이 특급호텔을 잠시 전세 낸 셈이다. 나오면서 호텔 내 식당을 보니 손님이 하나도 없다. 이미 1시가 넘어가는데 하나도 없다니! 비상사태가 맞기는 했다. 다시 널널한 길로 나가 차를 돌려 오페라하우스 반대편 쪽으로 갔다. 시드니의 온 항구가 다 보이는데, ‘맨리’쪽으로 거대한 크루즈 배 두 대가 더 대기하고 있었다. ‘바랑가루’쪽에서도 한 대가 정박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왔는데, 그렇다면 4대의 배가 입항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점점 이상해져 가는 시티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
다음 날 뉴스가 터졌다. 그 배들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렸고, 그중 코로나바이러스로 숨진 사람이 나왔고, 온 지역으로 흩어진 탑승객들이 코로나바이러스 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뉴스였다. 그러면서 드디어 교회 문도 닫아야 한다는 정부 조치가 발표되었다. 얼마 전에 500명 이상은 못 모인다고 했고, 바로 100명으로 떨어졌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금지명령이다. 
확산 변곡점에 와 있는 호주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국경을 걸어 잠갔다. 중국 우한에 이어, 이탈리아 그리고 미국이 감염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점령하는 것일까? 
이 시대의 문명은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일까?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제작한 드라마 ‘킹덤’의 넷플릭스 개봉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좀비들이 세상 권력을 거머쥐는 드라마, 이 드라마가 이 시대의 묵시록인가? 좀비처럼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또한 가해자다. 생각해보라. 백 년 전만 해도 우한 바이러스는 우한에서 끝나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생겼고, 하루면 못 가는 곳이 없다. 당신도 비행기를 한 번이라도 타보지 않았던가? 그때 ‘참 신기하다, 이 얼마나 좋은가?’ 하지 않았던가? 그런 빠른 장소이동과 활발한 경제/취미 활동을 통해 나 자신도 모르게 전염병을 옮기는 가해자가 된다. 
2017년 통계에 의하면 스트라스필드 지역의 식당을 비롯한 접객 업소의 종사자들의 숫자는 3,200이다. 본다이 지역보다 100명이 더 많다. 이분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며 악수를 거부하고 있다.  

3.
이런 상황을 통과하며 난 스스로에게 말한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야 해, 아직 종말이 아니야, 금방 끝나. 5개월 전에는 산불 때문에 그렇게 죽을 것 같았는데 다 끝났잖아. 이번에도 금방 끝나. 아직 종말은 아니야.” 
정말 그렇다. 지진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백두산 화산이 터진 것도 아니다. 전쟁도 아니고, 산불과 겹치지도 않았다. 전기는 여전히 잘 들어오고, 수돗물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다. 쓰레기 수거차는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오고, 인터넷도 잘 터지고, 더 빠른 NBN이 집 앞에까지 들어와 있다. 공기의 질은 더욱 좋아졌고, 하늘이 매우 푸르며, 정부에 돈이 있어서 실업자들과 사업체들을 적어도 1년은 도울 수 있다. 여느 나라와는 달리 민주국가의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테이크어웨이 커피와 피자를 사 먹을 수 있다. 호주의 농산물 생산량은 인구의 3배를 충분히 먹일 수 있고, 조금만 나가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운동할 수 있는 공원과 해변도 많다. 여전히 해가 뜨고 지며, 달도 뜨고 지고 있는데, 뭔 세상이 망해간다고 그 난리인가? 

4.
물론 그동안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한다. 적어도 2백만 명은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일부 사람은 죽는다. 매우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다 죽는다. 독감과 교통사고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죽고, 그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침대 위에서 죽는다. 전쟁이 터지고, 괴물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면 무려 2천만 명이 한 번에 죽기도 한다. 그게 인간의 운명이며,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마치 예방주사를 맞는 것과 같다. 6개월이면 끝날 것이고, 그 전에도 끝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배울 것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배우는 것이 없다면, 그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다. 내가 배우는 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현존이다. 당신은 어떤가? 뭘 배우려는가?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