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또 신호를 보낸다. ‘지지직 — 쓰 --- ’ 이건 분명 나를 향해 주파수 맞추는 소리다. 이번엔 어떤 교신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겁이 덜컥 난다. 이제 곧 롤러코스터를 타듯 어지러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몸이 땅속으로 푹 꺼진다 싶더니 바로 벽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천장이 마구 빙빙 돈다. 휘둘리지 않으려고 이를 꽉 물고 버텨보지만 모든 것이 곤두박질친다. 눈을 감으면 눈 속이 어지럽고, 눈을 뜨면 천장의 무늬가 어지럽다. 이마에 식은땀이 나며 이내 멀미가 난다. 
‘제발 나를 좀 놓아줘!’
엉금엉금 기어서 일어나 창문을 연다. 우선 찬바람 한껏 들이마시고 심호흡을 한다. 간신히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하고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른다. 도대체 얼마를 견뎌야 이 지긋지긋한 교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삼십여 년 전 어느 날 나는 남편과 심하게 다투었다. 평소에는 다투더라도 금방 넘어가곤 했는데, 그때는 사안이 다른 때하고는 달랐다. 화를 품고 기 싸움이라도 하듯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더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입맛마저 잃은 나는 곡기를 끊으며 극단으로 갔다. 하지만 남편의 세 끼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 주었다. 전쟁같은 상황이었지만 그걸로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독이 오를대로 오른 나는 밥 한술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고 버티는 것이 복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미련한 행동이었지만 그땐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었다. 
처음엔 내게 뭘 그렇게 화를 내냐며 밥 굶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모른 척하던 남편은 일주일이 넘어서자 백기를 들었다. 
‘그만하자! 그만해! 내가 이제 안 그러고 잘할게!’  

전쟁은 끝났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탈진이 되어 드러누웠다. 심한 고열을 동반한 감기가 찾아왔다. 일주일 단식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걸로 끝난게 아니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한쪽 귀가 멍해지더니 입구가 닫힌 듯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윙--- ' 하는 소리가 빈 곳에 메아리처럼 울리더니 ‘맴----’ 하는 소리가 귓속에서 났다. 처음엔 약하게 시작되다 점점 강도가 심해졌다. 
어느 때는 여름날 울창한 숲속의 매미처럼 목청을 돋우며 울어댔다. 눈동자의 초점도 맞춰지지 않았다. 어질어질하고 좌우 균형도 잡히지 않아 똑바로 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고통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상이 뒤죽박죽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남편은 나를 데리고 병원이며 한의원으로 찾아다녔다.
병원에서 나온 병명은 <돌발성 난청>이었다. 한의원에서는 몸을 보호하는 약을 먹고, 몸과 마음을 편히 하라는 처방 뿐이었다. 한쪽 귀 청력의 70%가 손실되었다고 했지만, 의사는 이 병으로 죽지는 않는다며 빙글빙글 웃으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 말끔하게 나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매미는 몸이 지친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본색을 드러냈다. 갱년기를 넘어서자 더 괴로운 <편두통>이란 녀석도 데리고 왔다. 
오늘 다시 시작된 매미 소리를 감지하면서 오랜 세월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는 이 소리의 정체가 매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쑥해 본다. 나는 어쩌면 어느 외계의 행성에서 온 우주인이 아닐까. 그들이 내게 교신을 하려고 저토록 오랫동안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교신해 오는 종목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깨와 등에 잔뜩 짐을 실은 듯 누르기도 하고, 무릎으로 와서 욱신대며 화끈거리기도 한다. 아마도 순차적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알려 주려는 것만 같다. 매미 소리가 시작되면 내 몸 어디가 또 나빠지려나 싶어 더럭 겁부터 난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마음마저 농락당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겪는 고통만큼 세상사 누구든 그만큼의 아픔은 있을 것이다. 
매미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 이제 그만 쉬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아픔도 오래되니 굳은살처럼 여겨진다. 한껏 날을 세우던 고집도 무디어졌다. 그때 그토록 마음을 다치게 하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도 희미하다.  
 
매미는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거친다. 캄캄한 땅속에서 여러 차례 허물을 벗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비로소 어른이 되어 날개를 펴고 울지만 짧은 삶을 살다 간다. 매미가 울 때는 짝을 찾기 위해서 울기도 하지만 위험에 처했을 때도 운다고 한다. 그렇다! 매미가 내 귓속에서 이렇게 긴 세월을 울고 있는 것은 고통을 주려 함이 아니라 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경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의 견딤이 필요하다는 신호인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자. 여태도 잘 버텼는데 뭐 어떠랴. 다시 또 어질어질해오면 무서워서 못 타보던 롤러코스터를 이렇게 경험하는구나 생각하면 되지 뭐.

김 미경 수필가
수필집 [배틀한 맛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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