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테이스팅

와인 가게에 진열되어있는 수많은 와인 중에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고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와인의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와인을 살 때마다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가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와인 쇼에서 메달을 획득한 와인을 볼 때가 있다.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와인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병에는 분명 메달을 표시하는 마크가 선명하게 붙어있다. 와인 쇼에서 메달을 획득했다는 의미는 출품된 여러 와인 중에서 품질이 우수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격이 다른 와인에 비하여 비싸야 하는데 왜 가격이 저렴할까? 그리고 그 와인은 정말로 품질이 우수하고 내 입맛에 맞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그런 와인을 사 왔던 적이 있다.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와인 중에도 입맛에 맞는 훌륭한 와인이 있었으므로 이 와인은 최소한 내가 마셔본 와인보다는 맛이 훨씬 좋을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너무나 내 입맛에 맞지 않았던 적이 있다. 떨떠름하고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쓴 와인이 어떻게 메달을 획득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Making sense of wine tasting’이란 책을 저술한 엘런 영 박사라는 분이 있다. 와인 테이스팅에 관해서 깜짝 놀랄 내용을 책에 담아낸 분이고 한국전 참전 용사이기도 하다. 부인이 미국인이라 많은 시간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분이 학교에 특강을 하러 왔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6.25 때 전투 했던 지명을 이야기해 주는데 모르는 지명이다. 북한의 어느 지명인 듯했다. 이분이 책에서 도발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와인 쇼에서 와인의 등급은 그 장소 그 시점에서 그 와인에 대하여 등급을 매긴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것이다. 어느 등급 판정이든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대부분의 와인 등급 판정이 그 와인에 대한 진실이 아니며 그것은 그 와인에 대한 우리의 통념일 뿐 부여된 등급에 어떤 가치도 없다. 어떤 케이스에선 이 와인 등급 판정이 사기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와인 업계에 들어온 지 30년이 지난 후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영 박사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의 마가렛 리버(Margaret River)에 있는 컬린스 와이너리(Cullen's winery)에서 주관하는 최고의 샤도네(Chardonnay) 품평회를 예를 든다. 이 품평회엔 전 세계의 유명한 샤도네 와인이 대거 출품되는데 이 품평회에서 호주 와인이 상위 입상을 휩쓸었다. 그 쇼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은 3, 7, 10, 14, 16 등을 하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고 영 박사는 말한다. 프랑스 샤블리에서 가장 최고급 와인이라는 샤블리 그랑 크뤼(Chablis Grand Cru) 와인이 19, 20, 21등을 하였으며 보통 부르고뉴의 고급 와인이라고 불리는 꼬뜨 도르(Cote d' Or) 와인은 15, 18, 22등을 차지하였다. 영 박사는 품평회 결과를 보며 과연 와인 등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자문하고 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하야트호텔 품평회를 영 박사는 또 예를 들고 있다. 오직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와인만 출품되는 이 품평회는 특이하게 소비자 그룹과 와인 전문가 그룹이 나뉘어 와인에 등급을 매긴다. 총 14개 카테고리의 와인에 등급을 매기는 이 품평회에서 소비자 그룹과 전문가 그룹의 의견 일치율이 단지 5%에 불과 하다고 한다. 즉 전문가 그룹과 소비자 그룹이 선정한 최고의 와인이 100개 중에 단지 다섯 개만이 일치했다는 뜻이다. 2002년 도에는 이 두 그룹이 100%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다른 의견이 나온 것은 전문가 그룹보다 소비자 그룹의 사람들의 실력이 없어서일까? 그러면 전문가 그룹이 선정한 최고의 와인과 소비자 그룹이 선정한 최고의 와인이 다르다면 진정 최고의 와인은 어느 것인가? 전문가 그룹이 선정한 와인이 최고의 와인이라고 양보를 한다 해도 그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전문가들이 선정한 와인이 과연 최고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와인 판정이 아무리 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특정 그룹에 의해서 선정된 최고의 와인이 다른 사람에게도 최고의 와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 박사는 우리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판정하는가?” 

서양 사람들 취향에 맞는 와인이라고 하여 동양 사람들 취향에 맞으란 법은 없다. 서양 사람들이 최고라고 선정한 와인이 동양 사람들에게도 최고의 와인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은 식생활, 문화, 취향도 다르기 때문에 와인 취향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영 박사는 와인의 가격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듯 우리에게 또 다른 예를 들고 있다. 2001년 샌 프란시스코 국제 와인 품평회(San Fransisco International Wine Competition)에는 전 세계의 16개국과 미국의 22개 주가 2,783가지의 와인을 출품했다. 그 대회에서 최우수 White wine은 100달러가 넘는 유명 와인을 제치고 단돈 미화 11달러에 팔리는 뉴질랜드 Giesen Estate 사의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선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8개의 포도 품종별 와인 경쟁에서 4개 부분에서 10달러 미만의 와인이 우승하였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인 와인은 5달러에 팔리는 Montepulciano d' Abruzzi 그리고 8달러에 팔리는 두 개의 호주 와인이었다. 

호주 TV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두 가지 와인을 놓고 어떤 것이 비싼 와인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는 것을 보았다. 두 와인 중에서 한 와인은 그 가격이 다른 와인의 두 배라는 설명과 함께 와인을 시음하게 하였는데 와인을 마셔본 사람은 가격이 싼 와인을 고급 와인이라고 뽑았다. 그러자 사회자가 두 배로 비싼 와인은 다른 와인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개인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며 훌륭하다고 칭찬을 한다. 와인을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며 마냥 쭈뼛쭈뼛할 필요가 없다. 간단하게 와인 하나를 선물하면서도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 추천을 의뢰하고 그 와인에 대한 평을 찾아보며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상대방이 Sweet 와인을 좋아하는지 Dry 와인을 좋아하는지만 파악하고 그중에서 소신껏 선택하면 될 것 같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싼 와인을 마시는데 그런 와인 마셔도 괜찮냐며 묻는 사람도 있다. 와인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가격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느냐며 묻는 사람도 있다. 가격이 비싸다고 반드시 품질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와인 가격도 중요하다. 특히 선물할 때는 가격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아는 분이 한국에 있는 직장 상사에게 호주에서 100달러가 넘는 좋은 와인을 선물했는데 코르크가 아니고 돌려 따는 병마개로 되어있는 싼 와인이라며 상대방이 시큰둥하다며 답답해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도 유럽은 코르크로 와인병을 봉합하는 와인 회사가 많지만 호주는 대부분 돌려 따는 병마개를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와인 평론가들의 점수에 매우 민감한 느낌이다. 엘런 영 박사의 의견에 따르면 그 점수는 그 사람이 그 시간에 특정 와인을 시음하고 스스로 매긴 점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점수에 목맬 필요는 없다. 와인을 알아간다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는 지혜를 기르는 일일 것이다. 너무 남을 의식하다 보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 위험이 있다. 단 한 번인 인생 그럴 필요가 있는가. 와인을 알아간다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찾는 행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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