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범죄 없었다’는 합리적 의문점 조사 실패” 
세계 이목 집중 재판.. 빅토리아 사법부 ‘오심’ 위상 추락

호주 가톨릭교회 최고 성직자였던 조지 펠 추기경(Cardinal George Pell, 78)이 마침내 호주 대법원에서 아동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4월 7일 석방됐다. 1, 2심의 유죄 판결이 상고심에서 극적으로 뒤집힌 것. 

수잔 키펠 대법원장(Chief Justice Susan Kiefel)을 비롯한 호주 대법관 7명의 만장일치 판결이었다. 키펠 대법원장은 7일 오전 10시 브리즈번의 대법원 등록국(High Court registry) 에서 판결문을 낭독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공간이 텅 빈 채 기자 3명만 참석이 허용됐다.  

펠 추기경은 지난 1996년 12월 15일 또는 22일 멜번 대주교 시절 세인트 패트릭성당(St Patrick's Cathedral)에서 주일 미사 후 소년 성가대원 2명(당시 13세)을 성폭행했고 1997년 2월 23일 2명 중 한 명을 성추행한 4건의 혐의로 2018년 기소됐다. 2018년 1심(빅토리아 지법)에서 두 번째 배심원단이 유죄를 평결해 6년형 판결을 받았다. 이어 항소심인 빅토리아고법(Victorian Court of Appeal)에서 3명의 재판관 중 2:1로 유죄 판결을 받아 항소가 기각됐다.

펠 추기경 변호인단은 “고법이 펠 추기경의 유죄 입증에  의구심을 갖게하는 증거들을 제대로 고려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4월 7일 만장일치로 무죄를 판결했다.

4월 7일 상고심에서 무죄 방면된 조지 펠 추기경

대법원 “원고 증언 외 확증 없는 무리한 기소” 
펠 추기경 “대법 판결로 심각한 부정의 시정”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1심 배심원단은 원고 증언 외 확증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증언의 사실성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빅토리아 고법도 펠 추기경의 범죄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합리적인 가능성(reasonable possibility that the offending had not taken place)에 대해서 조사하는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죄가 없는 사람이 기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기소가 바로잡혀야하는 ‘중대한 오심(massive miscarriage of justice)’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법원의 1, 2심 기각으로 기소 주체인 빅토리아경찰, 빅토리아 지법, 빅토리아상소법원은 법적 하자로 위상이 실추됐다. 항소심 3명의 재판관 중 소수 의견을 내면서 피고측의 항소 이유를 인정한(유죄를 인정하지 않은) 마크 웨인버그 판사(Justice Mark Weinberg)의 법리 해석이 대법원의 판결로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당시 고법원장인 앤 퍼거슨 판사(Chief Justice Anne Ferguson)와 항소심판장인 크리스 맥스웰 판사(Court of Appeal President Chris Maxwell)는 1심 판결을 지지하며 항소심을 기각했다. 

또 대법원은 원고의 주장과 다른 목격자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 점, 범행 당시 펠 멜번 대주교가 미사 후 10~15분 사이 범죄를 저지른 뒤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신자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는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형사 재판에서 3가지 기준(범죄가 정말 발생했는지, 범인이 누구인지를 아는지, 입증할 수 있는지)이 충족될 때 입증이 가능하다. 확증적 사실(보강 증거)의 부족(lack of corroboration), 범죄학적 증거, 기억의 정확성 등의 문제가 있으면 승소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가해자의 범행에 대해 여러 피해자들이 나온다면 ‘패턴 형성’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펠 추기경 재판에서 단지 1명의 원고 증언만 존재했다. 검찰은 성가대원 증언 외 결정적인 증거를 반드시 찾았어야 했다. 펠 추기경 기소 재판에서 ‘의심할 여지없는(beyond reasonable doubt)’ 증거는  없었다. 

7일 대법원 판결은 펠 추기경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거나 그를 고발한 원고(성가대원 출신 남성)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에대한 판단은 아니다. 증거로서 인정될 수 있는 증언(admissible evidence)이 당시 성당 안에서 벌어졌다고 고발한 범죄 행위를 입증할 수 있느냐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무죄 방면(acquittal)을 요구하기에 충분한 의문점(sufficient doubt)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로 상당수 국민들, 특히 가톨릭 사제들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확증적 사실’ 없이 과거의 성범죄를 기소하는 사례에 대해 대법원이 펠 추기경 상고심을 통해 분명한 답변을 내렸다. 

1-3심 재판에서 시종 일관 무죄(innocence)를 주장한 펠 추기경은 대법원 판결 후 발표한 성명에서 “상고심 판결로 심각한 부정의가 시정됐다(serious injustice has been remedied)나는 분명히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세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성원 등으로 나를 지지해준 시민들과 만들어진 암흑(manufactured obscurity)에 빛을 비추고 진실을 드러낸 변호인단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앤소니 피셔 시드니대주교, 피터 코멘솔리 멜번대주교, 존 하워드와 토니 애봇 전 총리 등 펠 추기경 지지자들은 무죄 판결을 환영했다. 반면, 2014년 사망한 소년 성가대원의 아버지는 샤인법무법인(Shine Lawyers)을 통해 “대법원 판결에 큰 충격을 받았고 실망했다. 더 이상 이 나라 범죄 사법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지 펠 추기경 상고심에서 1, 2심 유죄 판결을 뒤집은 호주 대법관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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