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림나 포도밭에 있는 펜폴즈사 셀러도어

호주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이 있다. 바로 펜폴즈(Penfolds)사의 그랜지(Grange) 와인이다. 2018년 경매에서 1951년산 와인이 $78,000에 낙찰되었다. 2017년 최고 낙찰가인 $59,416보다 무려 $18,584 오른 금액이다. 2020년 현재 2015년산 그랜지 와인이 $900에 팔리고 있으며 205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며 그때까지 최고의 맛을 낸다. 그랜지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이 호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라즈(Shiraz)이다. 그랜지 와인을 만드는 펜폴즈사는 의사였던 크리스토퍼 펜폴드(Dr Christopher Penfold)와 그의 부인 매리 펜폴드(marry Penfold)가 애들레이드에 1844년 포도 농장을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의사들이 와인의 건강 효능 때문에 환자들에게 와인을 처방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의사들에 의해 세워진 와이너리가 많다. Lindemans, Hardys, Angoves, Houghtons, Minchinbury, Stanley, Kelly (Tintara wine) 등이 의사에 의해 세워진 와이너리다.

칼림나 셀러도어에 있는 슈버트 사진

와인 건강 효능을 전적으로 지지했던 크리스토퍼 펜폴드씨는 영국 석세스 출신이며 그의 나이 33세에 호주에 도착했다. 펜폴드씨는 그의 진료소에서 와인을 빈혈 치료에 사용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알코올 강화 와인인 셰리(Sherry)와 포트(Port) 와인을 만들었다. 그의 진료소가 발전하면서 와인 수요도 늘어났다. 늘어나는 와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펜폴드씨의 부인은 1844년 공식적으로 와이너리를 오픈하고 포도밭 관리와 와인 제조에 전념했다. 펜폴드씨의 부인 사후에도 펜폴드사는 자식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랜지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생산되는 곳이 바로사 벨리 누리웃파(Nuriootpa)에 있는 칼림나(Kalimna) 포도밭이다. 펜폴즈사의 와인 Bin 707, Bin 389, Bin 170, Bin 28, RWT, St Henri 등이 칼림나 포도밭에서 나는 포도로 만들어진다. 

칼림나 셀러도어 가림막 기둥에 있는 오래된 포도나무

그랜지 와인을 만든 사람이 맥스 슈버트(Max Schubert)이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바로사 벨리(Barossa Valley) 근처 독일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펜폴즈(Penfolds) 와이너리에 잔심부름꾼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농기계를 만드는 조그만 공장의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연스럽게 말 마차를 잘 다루게 되었고 펜폴즈(Penfolds) 와이너리에서 그가 맡은 업무도 말 마차로 오크통과 와인 통을 실험실에 나르는 일이었다. 열정적으로 일하던 그는 주인 눈에 띄어 실험실 보조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후에 슈버트(Schubert)는 애들레이드 근처에 있는 매질(Magill)이란 지역에 있는 원조 펜폴즈(Penfolds) 와이너리 실험실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 지적 호기심이 많았던 그를 눈여겨본 경영진에서 그를 기본적인 화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학교에 보낸다. 그곳에서 와인 품평회를 준비하는 와인메이커의 보조로 일하면서 블렌딩 기술을 마스터하게 되고 와인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게 된다. 후에 슈버트는 펜폴즈(Penfolds)사의 보조 와인메이커가 되고 그의 독특한 창의력을 바탕으로 많은 와인 주조 기술을 개선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호주는 알코올 강화 와인이 붐을 이루었고 펜폴즈(Penfolds) 와이너리의 주 수입원도 알코올 강화 와인이었다. 펜폴즈(Penfolds) 와이너리의 회장인 크리스토퍼 펜폴드가 타개하자 그의 부인이 그 직위를 이어받았다. 그녀는 슈버트가 만든 화이트 알코올 강화 와인인 셰리(Sherry)에 매력을 느껴 선진 기술을 배워 오라고 그를 스페인으로 보낸다. 스페인에서 돌아오는 길에 슈버트는 프랑스 보르도지방을 들르게 되었고 거기서 40~50년 된 보르도 레드 와인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오래된 와인의 향과 맛이 그대로 살아있음에 놀란다. 

호주로 돌아온 그는 최소한 20년 정도 보관이 가능한 와인을 만들기로 한다. 알코올 강화 와인이야 100년이 지나도 와인의 질이 변하지 않지만 일반 와인을 그렇게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그때 당시 호주의 기술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1951년부터 그는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의 와인은 1956년까지 이어졌다. 그는 와인이 5년 정도 지나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 맛이 나타나기 전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시드니 본사에서는 몇 년째 매질(Magill)에서 만들어진 와인이 팔리지 않고 재고가 쌓이는 것을 발견했다. 전반적인 조사를 위해서 51년부터 56년까지 만들어진 와인을 시드니로 보낸다. 시드니에서 와인 테이스팅이 이루어졌고 이의 결과는 재앙이었다. 시드니에서는 도저히 팔 수 없는 와인이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이 사실을 접한 애들레이드에서도 자체적으로 와인테이스팅을 했지만 시드니의 혹평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여전히 평은 좋지 못했다. 57년도 와인을 만들기 바로 직전 슈버트는 시드니 본부로부터 그 와인을 만들지 말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시드니 사람들의 결정이 틀렸음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열정은 꺾을 수 없었다. 모험심이 많았던 창업자의 사위인 재프리 펜폴드 하이랜드(Jeffrey Penfold Hyland) 부사장의 도움으로 그는 몰래 비공식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57~59년까지 몰래 만들어진 3년간의 와인을 숨겨진 그랜지(Secret Grange)라고 부른다. 

칼림나 셀러도어에 진열되어 있는 1977산 그랜지 와인 병

혹평을 쏟아냈던 시드니 이사들이 2차로 51~55년도에 만들어진 똑같은 와인을 시음했다. 그때는 이미 병 속에서 숙성이 되었기 때문에 맛이 좋아져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60년도부터 공식적으로 그랜지 와인이 다시 만들어지게 된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바뀌고 있지만 72년 전 슈버트가 가졌던 그랜지 철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돈 디터(Don Ditter), 존 듀발(John Duval)에 이은 네 번째 수석 와인메이커인 피터 개고(Peter Gago)씨가 그랜지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1951년 첫 번째 Grange는 150상자가 만들어졌으나 시중에 판매되지 않고 식품 회사나 소사이어티에 무료로 주어졌다. 그 와인이 앞에서도 언급한 2018년 경매에서 7만8천 달러에 팔린 와인이다. 해가 갈수록 와인 가격은 더 올라갈 것이다. 
수년 전 사우스 오스트랄리아 와이너리 투어를 했던 적이 있다. 바로사 벨리에서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 와이너리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갔던 곳이 칼림나 포도밭이 있는 셀러도어였다. 셀러도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다란 오크통 앞에 맥스 슈버트 사진이 있다. 

손을 턱에 괴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맥스 슈버트(Max Schubert)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 사진은 그가 처음 그랜지를 만들고 혹평을 받았을 때의 사진은 아닌 듯하다. 슈버트가 1951년 처음 그랜지를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 36세였다. 누구든 삶에서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슈버트 또한 와인메이커로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게다. 그의 철학이 들어간 와인이 만들어지지 않을 때의 고민, 더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열망, 그런 것이 좌절되었을 때의 심정. 건물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물 가림막이 있던 기둥에 기둥 굵기만 한 포도나무가 칭칭 감고 올라가 있다. 아마도 어린 슈버트도 이 포도나무를 보며 꿈을 키웠을 것 같다. 건물 뒤편에는 칼림나 포도밭이 이어져 있고 와인을 만드는 스테인리스 통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어린 슈버트가 말 마차에 오크통과 와인 통을 싣고 다녔을 포도밭 주위를 서성였다. 그의 꿈과 열정이 배어있는 마당에서 말없이 한참 동안 포도밭을 바라보았다.

칼림나 셀러도어에 진열되어 있는 RWT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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