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  정부 지침에 따라 준비도 없이 원격 수업으로 바꿔야 했다. 익숙한 교실 강의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어설프고  낯선 경험이었다. 토론중심의 강의를 중요시하는 내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가끔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해질 때는 학생들의 말을 놓치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수선한 때에 모두에게 더 안전하고, 학교를 오가는 번거로움이 없는 것은 좋았다.  

아내 친구분의 딸과 사위, 어린 손녀가 미국에서 시드니를 방문했다.  호주의 코로나 대책에 따라 2주간의 격리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후 부모님을 방문했지만 마당에서 얼굴만 보고 잠시 얘기하다 돌아 갔다고 했다. 모처럼 멀리서 온 손녀를 한번 안아 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후에 한 스냅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부모는 마스크를 쓰고 현관 문 앞에 서 있고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쓴 딸이 손녀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가족 사진을 보며 웃을 수도 없는 씁쓰레함을 느꼈다.  그런 경우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좋아하는 한 친구가 갑자기 암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외출도 제한하는 때, 병원에 가서  6시간정도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 친구의 심경을 헤아리며 마음이 무겁다. 그를 찾아가 손이라도 잡아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 첫 치료 후 일주일 뒤에 혈액검사 등의 검진을 받았는데 모두 좋다고 했다.  온전히 주님께 맡기며 평안, 기쁨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때로는 인간의 상식과 환경을 초월한 그런 평안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비밀이다. 그러한 기쁨이 투병 중인 친구에게 강력한 치료의 능력이 되기를 기도한다.

나 자신도 언제든 비슷한 형편에 처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전부터 왼쪽  눈 속에 이물질이 덮혀 불편하다. 가까운 날에 안과 전문의를 만날 계획이다. 아내는 요즈음 내가 소리를 잘 못 듣는다며 더 나빠지기 전에 보청기를 알아 보자고 한다.  감기 예방주사를 맞으려고 의사를 만난 기회에 이를 문의해 보았더니 아직은  괜찮은 청력이라고 했다. 그 말에 위로삼아 보청기는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내게 다른 질병이 없지만,  몸의 여러 기능이나 세포가 조금씩 약해지며 죽어가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잊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난한 마음이 된다. 조금은 쓸쓸하다. 이젠 ‘마음의 눈과 귀’를 더 의존해야 될 나이가 된 것 같다.

삶의 위기는 두렵고 위험한 것이다. 동시에 또 다른 기회가 된 구체적인 사례들도 많다. 영어로 슬림 찬스(slim chance)는 가능성이 적다 혹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팻 찬스(fat chance)는 그 반대의 의미로 추측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어떤 이들은 중환자실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사업체를 닫거나  일을 못해서 경제적 위협을 받고 있다. 사람은 음식 만이 아니라 화장지와 손소독제와 마스크가 있어야 산다는 말도 유머 이상의 공감되는 현실이 됐다. 추한 인종차별의 사례도 보도된다. 유투브나 온라인을 통한 예배, 홈 라이브 컨서트나 관중없는 스포츠 경기 등 낯선 것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그런 낯선 것들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더 크다.  견고한 사회질서나  국가체계들도 미세한 바이러스에 힘없이 무너지고 혼란에 빠져 있음을 본다. 그것도 매우 짧은 기간에 말이다. 

이같은 위기 상황이 동시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는가? 어떤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가령 친구들과의 만남이며, 손자 손녀들을 안고 포옹하는 것,  일터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등의 평범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배우고 있지 않는가!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영국의 총리든 이름없는 노숙자든  차별없이 감염시킨다.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전혀 차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 원래 모든 인간은 그렇게 평등하며 꼭같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준다. 

딸은 요즘 남편과 자녀들까지 종일 집안에 있게 되니 식사 준비 등으로  몸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한 홍콩계 친구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 등이 너무 힘들어 생뚝맞게  이혼을 생각했노라고 말해서 함께 웃었다고 들었다. 가정 주부들도 심리적으로 민감하고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터에 나가지 못하는 남편, 학교에 가지 못하는 자녀들에게도 다른 아픔과 갑갑함이 크지 않겠는가! 

역설적으로 이런  원치 않은 기간이 가정,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그리고 함께 먹는 집 밥의 소중함 등을  나누고 경험하는 유익한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삶의 여정에는 작은 언덕이나 큰 산이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 사태와 이로 인한 문제들은 지구촌의 개인이나 가족, 사회와 국가들이 함께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안전한 치료백신이 나오기까지 상당기간 더 주의하며 기다려야 될 줄 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과거로 기억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바라며, 느긋하게 인내하면서 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직 자연만이  홀로 초연한 듯 싶다. 그래서 나는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 그 자연을 벗하며 걷기를 좋아한다. 더 맑아진 하늘,  빛나는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싸 준다. 동네길의 평범한 꽃들과 싱그러운 바람이 나를 환영하며 반긴다. 생명은 아름답다고 속삭인다. 무엇보다  작은 언덕을 큰 산으로 착각하지 않는 분별력을 배우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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