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를 기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신년벽두에 인간을 서식지로 옮겨 타 전 세계로 전파됐다. 본디 동물을 숙주로 하는 미생물들은 함부로 인간에게 그들의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미생물과 식물에게 그들이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그런데 오직 인간이 그 서식지를 함부로 흔들어 대곤하였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등의 바이러스는 인간이 건들지 않으면 미생물들은 그들의 서식지에서 산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단순히 메르스나 사스 같은 단순 전염병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팬데믹 때문이다. 이 점에서 생태학자 및 면역학자들은 코로나-19는 생태위기의 한 양상이자 징조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인류역사 안에서 중세와 근현대의 분기점에 흑사병(1347-1351. 2천만명 사망)이 있었다. 페스트 흑사병은 인간이 신중심의 중세문명과의 절연을 과감히 선포하게 하고, 인간중심의 근대문명인 계몽주의 르네상스로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후 인간은 철학과 과학, 의학 그리고 기계기술과 핵무기까지 만들어내며 끝이 없는 인간만의 길을 향해 내달려왔다. 이러한 인간 중심문명의 길을 달려가는 데,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주요한 몫을 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없다. 
먼저 성경번역의 오류와 바르지 못한 해석이 인간중심문명을 부추기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1,28)에서 “다스려라”를 “모든 짐승을 부려라.(have dominion)” 혹은 “지배하여라.(subdue)” “제압하다.” “억제하다.”로 번역을 한 것이 오류다. 창세기1,26-27의 ‘다스리라’는 표현이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낳았다는 비판(Lynn White)과 달리 본래 성경의 바른 뜻은 인간이 하느님의 주권을 위임받은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지구인들은 신약의 예수께서 말씀하신 착한목자와 같이 이 땅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었다.

생태학자들은 2020년부터 향후 10년간을 지구생존을 위한 남은 시간이라고 경고했다. 산업 체제를 바꿔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급격하게 줄여야 미래가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얼마나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줄여야 할까? 최소한 40%정도 줄여야 미래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호주가 작년 9월부터 6개월간 가뭄과 화재로 심각한 생태위기를 겪어냈다. 그 후 설상가상으로 올해 2월부터 코로나-19로 모두가 움직일 수 없다. 바로 인간중심의 문명으로 지구가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자신을 공격하는 적을 발견해서 지금 지구의 적을 향해 재공격을 하고 있다. 지구의 적이 누구일까? 코로나-19?, 그 숙주인 박쥐? 맹수? 코끼리일까? 아니다. 지구의 적은 인간이다. 진작부터 지구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인간을 향해 공격을 하고 있는데, 이는 지구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미래세계는 인간중심문명과 절연을 과감히 선포하고 자연중심, 지구중심의 삶으로 가야한다. 그 첫 자리가 인간들끼리 경쟁과 집단적 욕구(Want)를 참으로 내려놓고, 지구와 함께 사는 ‘공존과 연대’를 사는 초대이다. 미래세계는 각자의 삶이 존중되고 지구와 개인의 기호(Like)를 존중하는 삶이어야 할 것이다. 물리적 모임(physical Gathering)은 축소되고 정서적이고 영적 모임(Spiritual Gathering)이 지금부터 미래세계에 발견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으로 사회가 되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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