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정신』 돈오 김 특집호(1992. 12)

호주 동포 영문소설가 
돈오 김의 등장과 활약 

돈오 김(Don‘o Kim) 7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는 2013년 5월 23일, 암으로 타계하였다. 저작권 때문인지 작고 얼마 전에 혼인신고를 했는데 파밀라 여사도 몇 해 전에 세상을 떴다. 돈오 김은 김수경ㆍ이문재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학은 일종의 종교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문학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글은 안 쓰고도 얼마든지 밥을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 문학 말고는 어디 정성을 들일 데가 없습니다.”

2017년 2월 16일이었다, 호주에 간 김에 돈오 김의 파통가(Patonga, 시드니에서 차로 약 1시간반 위치) 자택을 방문하였다. 시골 마을의 작은 집은 문이 잠겨 있었다. 오랫동안 동거하다가 돈오 김이 작고하기 몇 주에야 혼인신고를 한 호주인 파밀라 여사가 그 시점에는 시드니 시내에 나가 살고 있었고, 돈오 김의 작업실이자 오랜 거주지인 그곳은 빈집인 채로 방치되고 있었다. 미리 연락을 하고 갔더라면 파밀라 여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을까, 후회가 되었다. 작업실 실내도 보지 못했다. 이제 여사도 떠났으니, 그의 유품이나 원고가 어디에 어떻게 소장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호주 교민문학의 대표주자는 단연 돈오 김(Don’o Kim, 한국명 김동호, 金東豪)이다. 1936년(호주에서는 1938년생으로 기록) 평양에서 태어난 김동호는 1948년에 서울로 와서 배재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왔다. 1992년 12월호 『문학정신』을 보면 시인 이문재와 소설가 김수경과 인터뷰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아버지가 해방기 북한의 최대 기업인 평양고무공장의 사장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신과 누이동생을 남으로 내려 보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문에 이산가족이 되었던 형을 휴전 후 길거리에서 극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돈오 김의 대표작 2권

‘내 이름은 티안’(1969), ‘암호’(1975)
‘차이나 맨’(1981), ‘태극’(Grand Circle, 2010) 등 출간

고교교사와 KBS 방송작가 생활을 잠시 하다가 호주 정부의 콜롬보플랜 장학생(Colombo Plan Scholarships)으로 선발되어 시드니대학과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대학에서 영문학과 비교언어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시골에서 고교 교사를 2년 하다가 그만두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중국 한자의 역사를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로 찍었다. 호주 교육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이 다 짜여 있어 틈이 없다, 현실성이 없다, 흥미가 없다고 거절하자 홧김에 소설가로 전향하게 된다. 그 당시 그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뉴사우스웨일즈 주립도서관)였다. 석 달 동안 휴가를 받아 두문불출하고 목숨 걸고 쓴 소설이 󰡔내 이름은 티안; My Name is Tian󰡕이었다. 이 작품이 출간된 것은 서구사회에서 반전운동이 절정에 다다른 1969년이었다. 베트남 시골 소년의 눈으로 전쟁을 그린 이 소설로 호주연방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호주정부로부터 1974년, 82년, 90년에 창작지원금을, 영연방으로부터 1971년, 73년에 창작지원금을 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에서 창작에 매진할 수 있었다. 

돈오 김

중앙아시아의 가상국가 타타리아를 배경으로 국제정치의 음모와 각축을 다룬 두 번째 장편소설 󰡔암호 Password: A Political Intrigued󰡕(1975)를 출간했다. 추리소설 기법을 가미한 이 작품은 상당히 난해하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희곡을 썼다. 「아밀라 부인의 애정구조」(1976),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암호」(1981) 같은 희곡을 썼지만 이 또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회심의 역작은 세 번째 장편소설 '차이나맨 The Chinaman'(1984)이다. 퀸즐랜드주의 대보초 해안(Great Barrier Reef)을 배경으로 청정사회 호주의 미래를 생태학적 화두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이 시드니대학의 문학 교재로 채택된 이유는 호주의 백인들이 아시아인들을 바라보는 인종차별주의 시각을 고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인류의 공생’과 ‘신의 참 의지’를 보여주는 고도의 영상소설이라고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는 시드니 근교에 있는 고스포드의 아름다운 포구 파통가에 은거하며 보트를 마련해 간혹 낚시를 즐기기도 했는데, 마을사람들은 그가 소설가인지도 잘 몰랐다. 간혹 그 집에 호주의 여인이 장을 보아 드나들기도 했으니 불가사의한 두 사람이었다. 여인은 동료 사서인 파밀라였고, 두 사람은 동거를 하기도 했었지만 오랫동안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사람의 손길이 끊긴 파통가의 자택

그 뒤에도 단편소설 「소년과 벙어리」, 「옥스포드 가」 등과 희곡 「한국의 종」 등을 발표했다. 시조의 운율을 가미한 시극 「사랑의 회전」과 방송대본 「쿡 선장의 죽음」 「콜 강」 등을 통해 장르를 넓히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호주문학의 코스모폴리틱한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여 영미 문단에도 알려졌다. 그는 모든 작품을 영어로 발표하였기에 그의 작품들은 영문학사에서 영연방문학(Commonwealth Literature)의 일종으로 언급되고 있다.
장편소설 ‘아리랑 크라이시스 Arirang Crisis’와 ‘더 그랜드 서클 The Grand Circle’(태극)을 탈고한 뒤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고국을 찾기도 했다. 출생지가 평양인 돈오 김에게는 서울도 시드니도 유학을 간 곳이었다. ‘아리랑 크라이시스’는 북한의 생화학자가 주인공이고 ‘더 그랜드 서클’은 남한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주인공이다. 두 작품은 분단된 한반도 상황을 다룬 것인데 전작들에 담긴 독특한 정치사적 사유에 더해, 작가 개인의 고단한 이력이 녹아들어 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고 다시 호주로 유학을 갔다 정착한 이민 1세대(1961년)로서 자신의 뿌리 찾기가 곧 소설 쓰기였다. 

시드니대 마이클 와일딩 교수 
“차이나 맨, 경이로운 호주문학작품” 호평
‘이방인 정체성 찾기’ 주제 몰두

해외문학 심포지엄에서 시드니대학 영문학과의 마이클 와일딩 교수는 주제 발표를 통해 “돈오 김의 󰡔차이나 맨󰡕은 한마디로 경이로운 호주문학작품”이라고 평했고 1988년 런던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는 “󰡔차이나 맨󰡕은 호주문학이 이루어낸 쾌거로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아시아 출신 작가로서는 그는 보기 드물게 호주문학사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호주의 문단에 이처럼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원어민을 능가하는 출중한 영작 실력이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이방인의 자기정체성 찾기가 작품의 주제였기 때문이다. 오랜 산고 끝에 2007년에 출간한 󰡔더 그랜드 서클󰡕은 아시아를 주제로 한 김동호 문학의 완결편이라는 점, 또한 그 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 찾기, 즉 한국 분단의 근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 성찰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국의 열음사에서는 이 소설의 한글판과 영어판을 함께 출간하였다. 

돈오 김의 마지막 작품인 태극

이 소설은 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고(Ko)’와 오래 전 헤어진 그의 부인 ‘마담 차(Madam Cha)’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휴전선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은 1953년 이래 남과 북 사이의 어떠한 접촉도 거부해 오면서 거의 반세기가 넘도록 어떠한 변화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비참한 생활을 해온 북한의 주민들은 점점 반항적이 되어가며 심지어 자포자기식의 성향마저 보이기 시작한다. 반면 인접국 중국은 국제적으로 정치력을 넓혀가면서 한반도 내의 분단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고’가 만든 통일 프로그램 ‘마지막 혁명’은 한국의 정치가들을 분발시킨다. 다시 말해 이 프로그램은 한반도의 분단을 해결하는 데 있어 정치가들의 내분, 정략적인 결정, 내치와 외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한국 정치가들을 분발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이미 분단은 자국민보다는 주변 강국의 이익에 기여하고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고’와 헤어진 후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아온 ‘마담 차’는 우여곡절 끝에 ‘작은 청와대(Little Blue House)’의 대표를 맡아 운영한다. 외국인 VIP들을 상대로 한국의 전통 예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회원제 고급 클럽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특권을 활용하여 그녀는 전국 실향민 연합을 계획하는 일단의 지하 활동을 비밀리에 후원한다. 

분단의 아픔이 낳은 실향민들은 거의 전 생애를 북에 두고 온 사랑하는 이들과의 접촉을 위해, 혹은 생사 확인을 위해 헛되이 시간을 다 보내버린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염원은 특히 남한 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지역감정과는 동떨어진 것이기에 이제는 거의 동정을 받기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들은 여생의 모험이 될, 최후의 대담한 행동을 준비하면서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그의 희곡 「한국의 종 The Bell of Korea」은 10여 년 전부터 국내 연출가들이 눈독을 들여오다가 2007년 ‘에밀레 에밀레’라는 제목으로 박일규가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이 작품은 노래와 춤, 사이버 영상을 결합한 댄스뮤지컬로 새롭게 각색됐으며 이영란 씨가 에밀레 역을, 신광철 씨가 사미승 역을 맡아 열연하였다.

(돈오 김의 생애와 문학세계는 한호일보 고직순 편집인이 쓴 기사들, 1999년 10월 4일 발행 ‘시사저널’에 실린 박철의 취재기사와 이문재의 작품세계 소개, 1992년 12월호 ‘문학정신’에서 김수경ㆍ이문재와 대담한 것을 참고함. 필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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