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 안녕하세요? 요즘은 어딜 가나 길 가에 예쁜 가을의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낙엽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오늘은 어르신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녀오신 여행지 중에 가장 마음에 선명하게 남는 곳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겠어요?
L : 호주는 어디를 가도 참 멋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나는 몇 년 전에 울루루에 가보고 깜짝 놀랐어요. 암석 사막이 펼쳐진 곳이 너무너무 장엄하고 멋져서 한참을 넋을 잃고 쳐다봤던 거 같아요. 
H : 가을이 되면 예쁜 낙엽을 볼 수 있는 곳이 블루마운틴이라 저는 거기를 계절마다 자주 가는 편이에요. 여름에는 여름의 맛이 있고, 가을에는 가을의 맛이 있더라고요. 워낙 산에 다니는 걸 좋아해서, 다녀오면 마음이 참 상쾌해요.
P : 그리스하고 터키 쪽을 가봤는데, 옛날 유적지들이 많아서 참 볼만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여행은 젊을 때 해야지, 많이 걸어 다니는 코스라서 늘 다리 통증이 있었어요. 
T : 여행하시면서 어떤 점이 제일 힘드셨어요?
P : 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니까 그게 힘들더라고요. 왜 사람들이 고추장이랑 김을 싸가지고 다니는 지 알 것 같아요. 음식들이 너무 달고 짜고 그래서 속이 많이 더부룩했어요.
A : 어딜 가나 제일 불편한 건 잠자리이죠. 편한 집 놔두고 이거 뭐하는 짓인가 가끔 생각이 들기도 해요. 
L : 우리 나이가 되면 사실 약 봉지가 옷가방만큼 많아요. 이것저것 챙기고 다니는 게 가끔은 너무 불편하고 귀찮아요. 귀찮은 거 생각하면 집에 콕 붙어 있어야 되는데, 그러자니 또 너무 심심하고.
모두들 : 하하하
T :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니, 추억할 만한 멋진 곳들을 많이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오늘 저는 아주 재미난 여행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연암 박지원이라고 들어보셨어요?     
L : 조선시대 글을 잘 썼던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T : 네, 맞습니다. 조선시대 후기 정조라는 임금이 다스릴 때, 굉장히 유명한 문장가였습니다. 조선시대 후기는 중국의 이름이 청나라였어요. 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은 청나라가 오랑캐가 세운 나라라고 멸시했거든요. 그런데 정조 임금은 젊은 인재들을 청나라에 보내서 새로운 문물들을 배워오도록 했어요. 그런데 청나라를 다녀온 많은 선비들은 문물을 배우는 것 보다 ‘관광’하는데 더 흠뻑 빠져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가장 멋있었던 장소를 줄줄 읊어대며 자랑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자금성이 제일 멋있더라, 산해관이 장관이더라, 만리장성이나 유리창이 최고더라...

왼쪽부터 자금성, 산해관, 유리창

A : 아무래도 조선이라는 좁은 땅에 있다가 처음 해외여행을 한 거니까, 다들 새로운 걸 구경하느라 흠뻑 빠져있었을 거 같아요. 그 당시에 중국여행을 했다는 건 괴장한 특권일 거 같아요.
H : 중국은 워낙 규모가 커서 다들 입이 떡 벌어졌을 거 같아요. 사진에 보이는 자금성도 경복궁보다 훨씬 크잖아요.
T : 맞습니다.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자금성, 산해관, 유리창이 정말 멋지기는 하지만 청나라에서 가장 눈여겨 볼 만 한 것은 바로 ‘똥’이다.”라고 했어요.
P : 똥이요? 아니 볼 것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 똥이었을까요?
T : 당시 조선에는 길 가에 인분이나 더러운 오물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길을 지나다니며 코를 움켜쥐었다는 기록도 보이고, 인분을 쌓아둔 창고에 비가 새서 오물이 넘쳤다는 이야기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청나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오히려 오랑캐의 나라이니 더 미개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박지원이 청나라 시골 마을을 아무리 돌아 다녀 봐도, 길 가에 더러운 오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청나라 사람들은 거름으로 쓰이는 똥을 금덩어리라도 되는 양 아까워하면서 한 덩어리도 길바닥에 흘리지 않고 모았습니다. 심지어는 말똥을 모으기 위해 삼태기를 받쳐 들고 말 엉덩이를 따라 다니기도 했어요. 박지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성실하게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내는 청나라 사람들의 알뜰한 생활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명분’과 ‘체면’만 앞세웠던 조선 양반들의 태도와는 상반되는 것이었습니다.     
L : 정말 그러네요. 원래 한 나라를 속속들이 알고 싶으면,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전통시장 같은 곳을 돌아봐야 한다잖아요. 
A : 요즘은 여행 책자들이 워낙 잘 나와 있어서, 여행 가기 전에 유명한 곳들 먼저 찾아보게 되는데, 박지원처럼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T : 오늘은 재미난 여행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특히 중국 여행에서 ‘똥’에 감동했던 유별난 괴짜 박지원을 기억해주세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천영미
고교 및 대학 강사(한국) 
전 한국연구재단 소속 개인연구원
현 시드니 시니어 한인 대상 역사/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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