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옥
단풍이 있었어
건망증이 베란다로 따라 나왔어
철컥 순간
한생각에 빠졌을 뿐
겨를도 없이 잠겨버린 손잡이
머리가 비어지는 동안
베고니아 꽃잎을 뜯어 먹었어
목이 말랐고 오줌이 마려웠어
부수거나 깨는 것을 궁리하는 대신
어정쩡하게 팬티를 내리는 일
바람이 있었어
건너편에서 창문 몇 개가 다가왔고
가을이 흘렀고 개미는 방향 없이 헤엄쳤고
화물열차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갔어
타일바닥이 온통 후끈해졌어
쭈그리고 앉아 내다보는
멀리 거실 유리창 가까이 거실 탁자 위
모발폰이 오늘 만날 고객들 꼭꼭 씹어 먹고 있었어
입술이 진동했어
내 밥줄 씹지마
전두엽이 꺼졌다 켜졌다
아니었어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화장실 물 새는 소리가
아니었어
이사 와서 제일 먼저 바꾼
잠금 장치 풀리는 소리가 멀어졌어
최대한 빨리 들어가기
그럼에도 갇힌 건
글쎄 아니었어
거실 유리문에 쏠린
내 자신이 표적일 뿐 기억은 번번이
밖으로
단풍이 바람을 삼키고 있었어
김인옥 시인
2017년 <문학나무> 신인상 등단
한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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