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안작 데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군악대를 선두로 시작되는 시가행진이 취소되고 퇴역 군인들이 중심되어 자신의 집 앞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다. 

평소 휴일처럼 아내와 함께 아침을 해결하려고 맥도날드에 왔다. 모든 의자가 탁자 위에 올라가 있고 매장은 휑하다. 테이크어웨이는 가능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레이즌 토스트, 소시지 에그 머핀 그리고 커피 두 잔을 주문한다. 이곳에도 경찰이 있다. 그들은 맥도날드 매장 밖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우리는 차로 들어가 앞 좌석에 앉아 각자의 무릎 위에 봉투를 펼쳐 놓는다. 한입 베어 무는데 순간 처량한 생각이 든다. 내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비행기 안에서의 기내식이라 여기자고 아내가 말한다. 그리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긴 한다.
 
아침을 해결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옆집 부부가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굿모닝! 인사를 하자 묻지도 않았는데 별장에 가서 주말을 보내려고 한다며 톱을 비롯한 연장 등을 챙긴다. 시드니를 벗어나는 곳마다 경찰들의 검문이 있다고 한다. 움직이는 이유가 필요해서 무너진 담장을 고치러 간다고 할 것이라며 설명을 곁들인다.
며칠 전에는 주 정부 문화부 장관(Art minister)이 사회적 격리 중에 집을 떠나 별장에서 주말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벌금을 물고 결국 사퇴하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강하게 시드니 외곽 여행을 자제시키는 이유가 바이러스로부터의 보호 차원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직전에 중국 정부가 우한지역을 전면 봉쇄하여 수백만 명의 우한 탈출로 큰 혼란이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며 세상의 변화에 어리둥절했었다. 그렇게 우한처럼 갑자기 시드니를 봉쇄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 등골이 오싹해진다.
 
정부 발표가 있고 난 뒤 내가 다니는 일터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약 90여 명의 직원 가운데 내가 속한 기계 제작팀은 25명인데 오전반, 오후반 두 팀으로 나누더니 오전반은 새벽 5시부터 오후 1시 반까지, 오후반은 오후 2시 반부터 밤 11시까지로 근무 시간이 조정되었다. 그리고 2주마다 교대로 출근한다. 휴식과 식사 시간도 둘로 나누어 서로 가까이 앉지 못하게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팀은 6명이 퇴직을 당했다.
 
주로 오후 일을 하게 된 내게도 퇴근 시간에 변화가 왔다. 시드니 외곽 지역에 자리 잡은 공장은 집에서 50분 정도 소요된다. 출근할 때는 대낮이기에 괜찮으나, 밤 11시의 퇴근은 낯설기만 하다. 퇴근하여 나오면 바로 가로등도 없는 리치몬드 로드를 타게 된다. 깜깜한 2차선 도로가 15분 정도 이어지는데, 이 15분 동안의 운전이 내게 있어서는 여간 두려운 게 아니다. 
구간이 시작되면 캥거루 출몰 지역이라는 커다란 싸인 판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조금 더 달리면 나무로 만들어진 약 1m 높이의 십자가가 보인다. 최근에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었다는 표지이다. 십자가엔 붉은 꽃과 하얀 꽃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대낮의 출근길엔 잘 보이지 않더니 캄캄한 퇴근길에 오히려 선명하다.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뒤에서 대형 트럭이 바짝 달라붙는다. 비켜주고 싶은데 비켜줄 공간이 없다. 자칫 충돌이라도 하면 세상 누구도 모르게 내 존재가 사라질 것만 같다. 이럴 때면 나의 입에선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큰소리의 찬송이 터져 나온다. 지극히 간사한 초보 신앙의 발로이지만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가사가 입에서 자동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마의 15분이 지나 4차선 도로가 나오면 안심이 된다. 어느새 가로등도 보인다. 바짝 따라오던 대형 트럭도 나를 추월하여 빠져나간다. 집 도착 시간은 밤 11시 45분, 동네에 불이 켜져있는 집은 거의 없다. 조심스레 시동을 끄고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색 고양이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그놈을 처음 만났던 날, 정면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을 반사하며 날카롭게 빛나던 두 눈과 마주쳤을 때 까무러치듯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가 잘 아는 사이가  된 듯 반갑기까지 하다. 내가 몰고 온 차의 뜨거운 엔진을 기다리는 검은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은, 내가 싸늘한 초겨울 한밤중에 따뜻함을 베풀 수 있다는 의미이니 고마운 일이다. 
 
아직 가족 방문도 성인 기준 2명 미만이라 우리 가족도 모두  모일 수 없어 점심엔 딸네가 오고, 저녁엔 아들네가 온다고 한다. 한 번에 모두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손주들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쯤 끝날 것인가? 당초 발표대로 6개월 예상이라면 아직 4개월 이 더 남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달라진 나의 일상이다.


장석재 수필가
제14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부문 대상수상
수필집 '둥근달 속의 캥거루'
그림책 '고목나무가 살아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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