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어떤 게 제일 많이 생각나세요? 먹을 거도 좋고, 장소도 좋으니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H : 따끈한 생강차나 유자차가 생각나죠. 저는 매년 생강차랑 레몬차를 직접 담아요. 추운 겨울밤에 꿀을 듬뿍 넣어서 마시면 좋죠.
L : 뜨끈한 구들장에 누워서 몸을 지지면서 자고 싶죠. 호주에서는 온수매트 깔고 지내고 있지만, 우리 어렸을 때에는 방바닥에 앉아 있는 게 제일 따듯하고 좋았어요. 겨울에 불 때면 아랫목만 까맣게 될 정도로 뜨끈뜨끈했어요. 아버지 돌아오시기 전에 어머니가 늘 이불을 아랫목에 깔고, 그 속에 공기밥을 넣어 놓으셨어요. 
A : 저는 사우나에 가고 싶어요. 뜨거운 물속에서 몸을 담그면 피로가 확 풀리잖아요.
P : 겨울엔 군고구마하고 호떡 먹는 재미도 있었던 거 같아요. 집에 들어갈 때 한 봉지씩 사가지고 가서 먹었던 기억이 나요. 겨울밤이면 “찹쌀떡~메밀묵~”이런 소리도 많이 들렸어요.
T : 말씀을 듣다보니, 정말 눈이 펑펑 오는 한국 겨울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오늘은 겨울에 떠오르는 수많은 소재 속에서 ‘사우나’이야기를 한 번 역사 속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L : 사우나에도 역사가 있나요? 저는 그냥 대중목욕탕이 찜질방이 된 줄 알았어요.
P : 그러게요. 한국에 있을 때, 애들 데리고 가서 때를 박박 밀고 왔던 기억이 나는데, 그 속에서 역사적 내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T : 네. 많이들 대중목욕탕이 1970년대 즈음 생겨나서 2000년이 넘을 즈음 찜질방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우리나라에 대중목욕탕이 처음 생긴 건 언제일까요? 
A : 조선시대 아닐까요? 지금까지 배운 역사는 조선시대부터 확인할 수 있는 게 많았잖아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요.  
T : 사실, 대중목욕탕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H : 그렇게 오래전에요? 아! 그럼 혹시 불교랑 상관이 있나요? 불교 신자들은 절에 불공드리러 가기 전에 목욕재계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잖아요.
T : 네. 아주 정확하게 맞추셨습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공식 종교는 불교였습니다. 그래서 사찰 앞에 대중목욕탕이 이미 설치되어 있었어요. 불공을 드리러 올라가기 전에 먼저 몸을 닦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대중목욕탕이 ‘불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이용되었을까요?
L : 찜질방이 도입되면서부터 아닐까요? 우리 경험상으로 보면, 대중목욕탕은 그야말로 몸을 깨끗하게 씻으러 가는 곳으로 생각이 되요. 그런데 찜질방 문화가 생기면서 가족들이 목욕만 하는 게 아니라, 땀도 빼고 음식도 먹는 문화공간으로 바뀐 거 같아요.
T : 사실 대중목욕탕이 ‘건강’을 위해 세워진 건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부터입니다. 
P : 와! 그렇게 오래된 거예요?
H : 수업을 듣다보니까, 좋은 거 신기한 거는 전부 세종대왕 때 시작된 게 많은 거 같아요. 앞으로 잘 모르겠다 싶으면 무조건 세종대왕이라고 대답해야겠어요.
모두들 : 하하하  
T : 괜히 ‘대왕’이라는 칭호가 붙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먼저 사진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A : 어머나! 외관은 그냥 돌무덤 같이 생겼어요. 지금 우리나라 찜질방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네요.
P : 오른쪽에 아궁이가 있어서 장작불을 땠었나 봐요. 그 열기로 실내를 덥히고 땀을 뺏던 것 같아요.
T : 이 동그란 조선시대의 사우나를 ‘한증소(汗蒸所)’라고 합니다. 불을 때서 뜨겁게 달군 한증막에 들어 앉아 땀을 뺀다는 뜻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한증소를 이용할 수 있었을까요?
L : 당연히 양반들이겠죠. 조선시대는 신분제도가 있으니까 천한 신분의 사람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것 같아요.
T : 처음엔 양반들이나 부자들이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가난한 백성들도 아무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백성의 ‘한증소’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아파도 약 한재 지어먹을 돈이 없었던 백성들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그러나 백성들이 한증소를 이용하기 전에 먼저 의원에게 무료로 예진을 받아야 했습니다. <세종실록 4년>의 기록에 따르면 “환자가 한증소에 오면 그의 증세를 진단하여 땀낼 병이면 땀을 내게 하고, 병이 심하고 기운이 약한 자는 그만두게 하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한증소는 신경통과 풍증에 좋은 소나무를 때서 내부를 데우게 했고, 솔잎을 깔고 그 위에 누워 땀을 내도록 했습니다. 이런 방법은 오한이나 미열, 중풍이 있는 환자에게 좋은 치료였습니다. 한증소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던 조선의 공공의료시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세종대왕은 아픈 병자들에게 햇곡식을 주어 몸을 보양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나라가 백성의 건강을 책임지기 시작한 게 바로 조선시대부터였습니다. 
A : 지금도 의료제도는 한국이 세계 최고잖아요. 우리 주변 지인들도 거의 한국 방문할 때 건강검진에, 여러 가지 검사들을 다 받고 오거든요.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 같아요.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나라가 백성의 건강을 지켜낸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 닿는 거 같아요.  
P : 특히 '한증소'가 국가가 운영했던 공공의료시설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대중목욕탕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네요.
T : 오늘 배우신 내용은 여러 지인분들과 재미나게 나누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엔 더 재미난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천영미
고교 및 대학 강사(한국) 
전 한국연구재단 소속 개인연구원
현 시드니 시니어 한인 대상 역사/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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