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미국과 많은 다른 나라들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정치적, 민족적, 경제적, 생태적 갈등들로 인해 혼란스럽다. 주어지고 있는 이러한 상황들 안에서, 그들은 내가 왜 성경이 말하는 위대한 두 가지 계명들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에 관해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은 아마 지금 지구의 많은 나라가 코비드-19라는 불덩이로 여전히 전소되고 있는 동안 내가 한가하게 네로 황제처럼 수금이나 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도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하느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위험한 이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하는 것 가운데 코비드-19 퇴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설명을 하자면, 그 과정을 통해 볼 때,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런 상황에 접어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안내할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죽었을 때 어떻게 천국을 갈 수 있는 지에 대한 정보서적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신 하느님의 꿈에 대한 것이다. 하느님께선 이 세상을 목적과 그리고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형상으로 존재하도록 창조하셨다. 곧 이렇게 당신의 목적과 꿈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인간이 협조하도록 창조하셨다. 성경시대의 많은 유대인들과 예수님 스스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위대한 두 계명과 함께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요지를 설명하였다. 성경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하느님의 부르심 받은 구원의 이야기며, 그것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인간이 회복하는 은총의 서적이다. 이 글은 하느님의 꿈을 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한 부분이라기 보다는 우리 세상의 해결책이 없어 보일 것 같은 어려움에 대한 대안의 몫이 된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곳에는 굶주림도 범죄도 어떤 두려움도 없지 않을 것 같지 않겠는가? 성경은 우리를 사람답게 즉 하느님의 형상처럼 살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 세상에선 모든 사람들이 돌봄을 받을 것이고 그래서 아무도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 불안이나 과도한 힘을 쓰는 것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꿈이고, 그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각 개인들과 우리를  통해, 모든 공동체가 효과적인 방법으로 서로를 진실로 사랑할 때에만 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 열정이 이런 글을 쓰도록 안내한다. 
그리스도인은 진실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하느님과 함께 협력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왕국의 도래를 돕는데 하느님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우리 모두는 자주 두 계명을 들어왔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하느님의 계명들의 요구대로 살아가는데 문제와 어려움도 동반할 것이다. 여러 해를 걸쳐, 나는 나 자신을 돕고 다른 이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다가갈 수 있는 다른 여러 길을 찾아 왔다. 나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그들의 사랑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방법들을 제안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이 사랑의 두 가지 계명에 관해 이론적인 공부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더구나 그 계명들의 장점을 설득시키기 위함이 안 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서 이 글을 대하는 여러분이 그 계명들을 알고 있으나 그것들을 수행하기에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어떤 경우엔 불가능하리라 여긴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느님과 이웃을 좀 더 낫게 사랑하기를 원하면, 그때 그러한 사랑들이 성장하는 방법들을 시도하려는 것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 순간 이런 시도들은 이 세상의 어려움을 해결하시려는 하느님의 역할을 하는 나의 작은 한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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