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동네 사람을 모델로 그렸다는 벽화가 이색적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극성이다. 사람을 만나도, 텔레비전을 보아도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시골 동네임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만남을 기피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잊을만하면 식사 함께하자고 연락하던 이웃도 요즈음은 소식이 뜸하다. 색소폰 들고 매주 참여하던 동네 밴드 그룹도 모이지 않는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동네에는 한국 사람이 살지 않는다. 따라서 온종일 한국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낼 때도 종종있다. 이웃과의 왕래도 줄어들면서 불교에서 한다는 ‘묵언 수행’을 강요당하는 날도 가끔 있다. 얼마 전 멀리 떠난 아내가 생각난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다른 삶이다.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한다.

어딘가로 잠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혼자 떠나는 여행에 익숙하지 않아 망설여진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콥스 하버(Coffs Harbour)에 사는 지인이 떠오른다. 연락해 본다. 자주 만나는 친숙한 사이는 아니다. 따라서 조심스럽게 내 계획을 전했다. 다행히 기꺼이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한다.

특별히 짐을 챙길 것도 없다. 콥스 하버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한다. 집에서부터 2시간 28분 걸린다는 숫자가 표시된다. 하루 지내고 오기에 적당한 거리다. 간단한 세면도구가 든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자동차 시동을 건다.

콥스 하버는 자주 들리는 동네다. 딸이 사는 골드 코스트(Gold Coast)에 가려면 지나쳐야 하는 큰 동네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기도 했다. 따라서 조금은 친숙한 동네다.

관광객을 유혹하는 동네에서 해양까지 뻗어있는 긴 산책로

오랜만의 외출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일까, 평소보다 고속도로가 한산하다. 낯익은 고속도로 주변이 정겹다. 맑은 물이 넘쳐나는 매닝강(Manning River)은 예전과 다름없이 유유히 흐른다. 볼 때마다 마음을 씻어주는 강이다. 초원에는 예전과 다름없이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볼 때마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풍경이다.

느즈막한 오후에 하루를 정리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근처 쏘우텔(Sawtell)이라는 동네로 향한다. 작은 언덕이 있는 경치 좋은 해변에 도착했다.   
겨울바람이 심하다. 거대한 파도가 바위에 몸을 던져 하얀 물거품을 하늘에 흩뿌리며 아스라진다. 전형적인 겨울 바다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심한 바람과 높은 파도가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년 한국에 갔을 때 목포 앞바다에서 보았던 시가 떠오른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고난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처음 읽은 이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시구다. 
다음날은 근처 관광지를 찾았다. 바닷가에 있는 우릉가(Urunga)라는 동네다. 인구 3,000명 정도 되는 작고 아담한 동네다. 우릉가는 ‘긴 백사장'이라는 뜻을 가진 원주민 말이라고 한다. 

동네에 들어서니 이름에 걸맞은 긴 백사장과 동해 바다가 펼쳐진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다. 많은 사람이 찾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주차장 근처 바닷가는 여행객이 지내는 캐러밴으로 빈자리가 없는 야영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동네를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나무판자로 만든 산책로(boardwalk)가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정도만 비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지 않은 산책로가 1km 가까이 대양까지 연결되어 있다. 산책로는 1988년에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복구와 연장을 몇 차례 거듭하면서 2010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산책로를 걷는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바닷물이 빠져나간 모래사장에 작은 게가 떼를 지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소라게(soldier crab)’이라는 이름을 가진 게다. 자세히 보니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 군대를 연상시킨다. 특이한 점은 게들이 옆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걷고 있다는 점이다. 게는 옆으로 걷는다고만 알고 있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작은 게가 물이 빠져나간 모래 사장에서 먹이를 구하고 있다.

조금 더 걸으니 난간 아래에 큼지막한 물고기들이 서서히 헤엄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도미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이곳이 도미 낚시로 유명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두어 마리 잡아 회를 뜨고, 매운탕도 끓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들판에 있는 가축을 보면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일까.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 나누는 우리에게 지나치던 중년 여인이 인사한다. 한국 사람이다. 호주 동해안을 혼자 여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햇볕에 그은 얼굴이 인상적이다. 왜 혼자서 여행할까. 누군가와 함께 다니는 것이 좋지 않을까. 혼자 여행한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뉴스를 보면 혼자 지내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다. 한국에 독신 가정 비율이 전통적인 가정보다 높다는 통계를 본 기억도 있다. 바야흐로 타인의 간섭없는 자신만의 삶을 선호하는 독신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전문 여행가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조언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있는 철학자 중에는 독신으로 지낸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도 인문학 강의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거리낌 없이 자신만의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삶을 바라본다. 지금부터의 삶은 혼자서 꾸려가야 한다. 앞으로 지낼 삶을 그려본다. 만족할만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삶은 무엇인가? 쓸데없는 질문이 떠오를 정도로 침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살아내야 한다. 
삶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다. 찾아오는 ‘오늘’을 나의 색으로 칠하다 보면 나만의 삶이 형성될 것이다. 나만의 색을 가진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도미가 많기로 소문난 바다에서 낚시에 여념이 없는 강태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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