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사 입구 왼쪽 담장 곁엔 세그루의 감나무와 하나의 귤나무가 있다. 감나무는 감보다는 꽃을 바라 보면서 옛적 동심에 젖기 위함이었고 귤은 열매를 보고 심었다. 두 종류의 나무가 점점 크게 자라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조금 익기 시작하면 그 열매를 따 먹으려 모여드는 새들의 성화 때문에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쪼아 먹다가 떨어져 있는 그 열매를 차량이 오가게 되면 그것들이 시멘트 도로  바닥에 달라 붙어 버리면 쓸어 내기가 몹시 고약해진다. 생각 끝에 긴 가지들을 잘라서 키를 많이 낮춰서 열매에게 손이 닿을 정도로 조절해 두었다. 그후 감꽃 수는 좀 줄어도 감으로 인한 불편은 거의 없어졌고 귤도 좀 더 큰 모습으로 달리었다. 

엊그제 그 곁에 가 보았더니 상당히 많은 숫자의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두어 개를 따서 먹어 보았더니 맛이 아주 좋고 향내도 진했다. 반면에 씨앗이 매우 많았다. 탱자 만한 작은 열매에 정확하게 20 개의 씨가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뱉어 내면서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났다. ‘ 이들은 왜 이처럼 많은 씨앗을 품고 있을까? ‘ 자기 종족의 무성한 번식을 희구하는 그 염원이 그 속에 담겨져 있지 않을까?’ 그 무슨 식물이건 토종이나 잡초일수록 그에 따른 씨앗이 많다. 감나무의 접 붙임인 고염도 그렇고 풀섶 어디에서도 꽃 피우는 민들레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민들레나 할미꽃 등은 솜털같은 날개를 만들어 풍선을 띄우듯이 자신의 종자를 멀리 멀리 실어 나른다. 반면에 자연 종자에게 변형을 일으켜 유전자 조작을 한 새로운 과일 등은 그 종자의 숫자가 매우 적다. 인위적으로  종자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어떠한가? 한국 통계청이 2020년 2월 7일 발표한 전년도 출산율 발표에 따르면 합계 출산율은 0.92 명을 기록했다. 1970년 조사 이후 50년만의 최저치의 기록이라고 하며 세계에서 꼴찌의 출산율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장차 국가의 존립 문제와도 직결되는 중대한 현상인데도 목전의 이해타산에만 몰두하고 있는 근시안적 태도에 적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176 조원이나 투자해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배려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접근을 못하고 그저 자리 다툼이나 이념 투쟁에 골몰하며 시시비비만 일삼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기만 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간세계는 힘이 지배하는 무리들이 사는 곳이다. 거기엔 경제력이 앞서고 그것을 받쳐주는 위해  인구가 많아야 된다. 그런 여러가지 기초적인 조건이 하나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곳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내년부터는 자연인구가 감소되는 상황이라고 하니 큰 걱정이 앞선다. 어릴 때에 잔디를 뽑아서 눈물 싸움을 해 본적이 있다. 씨가 맺힌 줄기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서는 눈물을 만든 다음 누가 이기느냐는 내기다. 그러면 작은 것은 큰 것에 흡수되기 마련이다. 

출산율이 점점 감소되는 근원적 원인은 우리의 의식속엔 국가는 없고 개인만 있으며 내일 보다는 오늘만 생각하는 좁은 틀 속의 굳어진 생각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위정자들이 앞장서서 정책을 계발하고 그것을 교육에 반영시키면서 국민을 계도해 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통계의 수치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의 문제는 국민들의 지나친 배금주의와 출세지향주의적 굳어진 삶의 태도이다. 이 둘의 문제는 피차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육아와 교육의 뒷받침이 있어야 그 꿈을 이룰 수가 있다. 게다가 내 집에 대한 애착은 아마 세계 1등이지 싶다. 내집 마련을 위해서 출산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이를 잘 반증해 주고 있질 않는가? 모든 생명은 자기종족이 더 번성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다. 길가에 밟혀 가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잡초들을 뽑아 보면 그 뿌리의 숫자가 많으며 가늘고 길게 뻗어져 있다. 
우리 한국인은 우리 한국인의 정체성의 뿌리를 어느 것에 두고 있는가? 단군인가? 세종대왕인가? 이순신인가? 기독교인가? 불교인가? 유교인가? 반공인가? 친공인가? 해방 후 75년이 다 된 지금에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현실이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은 꽃과 열매를 보기 위함이며 그것을 위해서 정성껏 가꾼다. 그 열매 속엔 수십배의 씨앗을 담아서 자기 종족이 더 많이 퍼지길 희망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종족 보존의 일차적 수단이다. 그러한 자연의 법칙과 생명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 한국인의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메마른 삶의 삐뚤어진 정서, 돈과 좋은 직장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단세포적 사고에 깊은 걱정이 앞선다. 자신이 씨 뿌려 푸릇 푸릇 자라나는 생명체를 바라 보면서 느끼는 그 풋풋한 마음이 그 어찌 한 채의 집이나 좋은 직장에 비견될 수 있겠는가? 작은 돌 감귤을 먹다가 씨앗이 너무 많아 뱉으면서 생각난 한 조각을 단상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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