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의 리어 윙, 공기가 날개를 타고 흘러 접지력을 높인다.(사진=람보르기니)

어릴 적 장난감 자동차를 자주 가지고 놀았다. 그 차 뒤엔 항상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 위에서 자동차는 온 하늘을 쏘다녔다. 당시만 해도 날개 달린 차가 하늘을 나는 건 당연한 일이라 믿었다. 만화영화 속에선 분명 그랬으니까. 어른이 되면 날아다니는 차를 꼭 탈 거라고 다짐했다. 설레는 상상과 함께 잠이 들곤 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다. 차는 아직도 날 수 없었다. 기술은 되는데 사는 사람이 없다나. 법규와 규정이 미흡하다나. 어른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래도 차에 달린 날개는 여전했다. 경주용 레이스카부터 굉음을 내는 슈퍼카, 간혹 승용차에도 작은 날개들이 보인다. 날지도 못할 거면서 왜 날개를 달아놓은 것일까? 괜히 무거워지고 가격만 비싸지는 건 아닐까?

자동차의 날개는 크게 ‘리어 윙(rear wing)’과 ‘리어 스포일러(rear spoiler)’, 두 종류로 나뉜다. 먼저 리어 윙은 자동차가 ‘날지 못하게 해주는 날개’다. 나는 걸 막는 날개라니 어감이 이상하지만 자동차는 원래 날아가면 안 되는 탈것이다. 자동차는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와 지면이 조금씩 떨어진다. 유선형으로 생긴 데다가, 차 아래로도 공기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차체가 땅과 멀어질수록 타이어의 접지력은 떨어지고 무게 중심은 높아진다. 주행은 당연히 불안정해진다. 이때 리어 윙이 다운포스(down force)를 발생시켜 차량을 지그시 눌러준다. 리어 윙은 비행기 날개를 거꾸로 얹어놓은 구조다. 비행기의 날개는 양력을 발생시켜 동체를 위로 띄운다. 그러니 이를 역이용하면 차체는 바닥에 붙게 된다. 고속 주행에도 도로에 바짝 붙어 안정적인 주행을 돕는다.

포르쉐 파나메라의 리어 스포일러, 필요할 때 자동으로 날개가 펴진다.(사진=포르쉐 AG)

다음은 리어 스포일러다. ‘망쳐버린다’는 뜻으로 유명한 스포일러(spoiler) 역시 항공 기술에서 가져왔다. 비행기를 타봤다면 착륙할 때 날개 모양이 달라지는 걸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날개 위에 꼿꼿이 세워지는 판들을 ‘스포일러’라고 한다. 비행기의 스포일러는 공기 흐름을 망쳐 기체가 뜨는 걸 방지하고 속도를 줄인다. 마찬가지로 자동차에서도 스포일러로 공기 흐름을 제어한다. 차량 후면이 수직으로 떨어지게 되면 와류로 인해 공기 저항이 생겨 자칫 후면이 흔들릴 수 있다. 이때 스포일러를 세우면 공기가 차 뒤로 멀리 보내진다. 공기 흐름을 변화시켜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엔 자동차가 전자화되면서 날개를 자동으로 접고 펴는 차들도 생겼다. 날개를 낮게 들면 스포일러, 높이 들면 윙, 아예 수직으로 세워 브레이크 역할도 한다. 상황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니 뚜렷한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고속 주행일수록 날개의 효과는 크다. 규정 속도 이하에선 효과가 미미하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날개 달린 차들이 계속 출시되고 있는 건 왜일까. 가끔은 날아갈 듯이 빨리 달리고픈 아직 철없는 우리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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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머신인 레드불 RB16. 레이싱카는 앞뒤로 날개가 있다.(사진=레드불 Gm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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