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 제목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주미 대사를  지낸 조윤제씨가 낸 책(2015 발간) 이름과 같다. 신문에 썼던 글들을 모은 칼럼집으로서 그 명제에 초점을 맞춘 책은 아니다. 또 그 제목은 “제 자리를 지켜라”로 고쳐도 될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과 장래를 위해 의미 심장하다. 아래를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제 자리로 돌아 가라” 또는 “제 자리를 지켜라”는 여러 분야의 공인과 사안에게 넓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얼마 전 한국에서  빅 뉴스와 빅 이슈가 되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현재  국회의원으로 탈바꿈한  윤미향씨가  이끌었던 무슨 연대, 연합, 재단, 포럼 등 여러 이름의 무성한 한국의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의 맹점이라고 생각되는 한 가지를 지적해보고 싶어서다. 
 
결론부터 말해보면 시민운동으로 뜨는 인물들은 초심을 잃지 말고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애당초 정권이나 정부 고위직에 진입하기 위한 발판으로 그런 단체를 만든다면 말할 것 없고, 나중에 그렇게 변심한다면 말로가 좋지 않고 나라에 누를 끼치고 만다는 점이다. 
 
나는 근래에 현지보다 고국 관련 사회 비평을 더 많이 쓰고 있다. 무단히 그런 건 아니다. 해외 한인, 특히 서방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갈수록 고국 지향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고국에 도움이 되자면 그 사회와 지도자에 대한 이해와 시각이 올바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여담으로 오해받을 개인사를 조금 써보고자 한다. 이 글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12살까지 거기서 살다가 한국에 나온 후 1969년 처음 그 곳을 찾아가 볼 수 있었다. 우선 크게 바뀌지 않은 사실에 놀랐었다. 살던 집도 대문만 바뀌었지 과거 그대로였고, 근처 이발관(보통 일본 말로 도꼬야)을  찾아가니 옛날 주인은 아들과 함께 그 영업을 하고 있었고, 나를 알아보고는 “아, 네 누나를 잘 기억하지”하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몇 발짝 거리에 살면서 아버지 사업을 도왔던 일본인 나가쓰까씨를 찾아 가니 옛날 그 집에서 그대로 사는 거였다. ‘에너지 쇼크’ 2년 전인 그 해 일본 경제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되게 호황이며 앞서 있었던 시절이다. 
 
작년 9월에 거기를 다시 한번 가 봤었다. 반세기 만이다. 나가쓰까씨는 돌아가고, 그 아들 부부가 집을 수리 한 채 그대로 살고 있었다.   근처에 사는 한 일본인 노파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지역을 훤히 꿰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거기에서 살았던 게 분명하다. 그 이발소 자리에 세븐 일레븐이 문을 연 것은 불과 얼마 전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도시는 인구 40만의 한국의 진해(鎭海)격인 해군 기지 요코스카시(市)다. 거리도 크게 바뀌지 않아 길 잃을 걱정은 전혀 없었다. 더 크게 놀란 사실은 도쿄로 가는 요꼬스카역은 어떻게 보존을 한 건지 어려서 본 그대로였다. 바로 옆이 군항인데 울타리가 없어져 미 7함대의 웅장한 항공모함을 지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게 다를 뿐 역시 그대로였다.
 
요코스카와 도쿄 간의 거리는 전동차로 약 1시간, 그 중간에 과거 산업 중심지였던 요코하마가 있다. 전동차에서 바라보니 2차대전 때 융단 폭격을 맞은 이 도시의 주택들이 목조에서 2, 3층의 시멘트나 벽돌 건물로 바뀌고 멀리까지 뻗어 나간 낮은 공장 시설들이 보일뿐 한국에 흔한 15층, 20층 고층 아파트 대단지는 별로 없다.
 
자리에 없는 사장님들
 
한국은 다이나믹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역동성으로 이룩한 압축 고성장은 우리의 자랑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잃는 것, 희생한 가치는 없을까? 빨리 바뀌고 비약하는 과정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다. 줄 하나 잡으면 하루 아침에 장관, 대사, 총장, 위원장, 청와대 수석과 높은 자리를 할 수 있으니 가만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바보다. 잘 살게 되었다는 한국이 저렇게 시끄러운 이유다. 
 
70년대 한국을 떠나기 전 미국인들이 한국의 회사 사장님들을 ‘자리에 없는 사장’(Absentee presidents)이라고 불렀었다. 정치하러 다니느라 자리에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일부 나의 형제와 친척과 과거 직장 동료들이 한국에 아직도 살아 있다. 과거의 같은 동네와 집에서 거의 전부 3번, 4번 옮겼다. 그렇게 해서 재산을 크게 늘린 것이었다. 요즘 서울의 노른 자위라는 그린벨트 해제나 수도 이전 이야기로 사람들이 뒤숭숭한 것도 그래서다. 투기업자가 따로 없다. 모두 밥술이나 먹는 공인들이며 배운 사람들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많은 시민운동과 민간 단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그 체제가 건전한 다원화(pluralism)와 다양성(diversity)의 가치에 기대하기 때문이다. 모두 언론과 함께 권력을 감시하거나 권력이 못하는 일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런 숭고한 사명은 운동가와 단체장들이 권력에 쫓아 들어갈 때 증발하고 만다. 
 
박원순씨는 과거 여러 시민 단체의 활동으로 인기가 대단했었다. 더 욕심부리지 말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윤미향씨는 그간 오랜 세월을 바쳤다는 그 ‘위안부 정신’을 국회에 가서 어떻게 펴나갈 지  궁금하다. 과거 시민 운동을 거쳐 권력으로 진출한 다른 많은 인사들, 그리고 학자, 언론인, 법조인들이여! 제자리를 떠나 출세(?)를 했겠지만, 나라에 무슨 기여를 남겼는지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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