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커튼이 천천히 닫힌다. 이어 검은 커튼이 좀 더 천천히 닫힌다. 검은 커튼이 지나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처음으로 한 장례 주례는 이렇게 끝났다.

장례 준비를 위해 상주 집에 왔다. 노부부만 살다가 할머니가 먼저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빈소가 차려진 아들 집에 막내딸과 함께 계시고 나를 만난 사람은 다른 두 딸과 아들이다. 아들은 한국말보다는 영어가 더 편한 것 같다. 집안에서는 낯익은 우리 부모님들의 삶의 흔적이 보인다.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 찍은 젊은 여인의 사진은 전형적인 우리 이민 1세대 어머니 모습이다.
벽에는 여러 장의 손자, 손녀들 사진과 상장이 붙어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장례절차를 종교의식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 많은 시간이 종교의식에 쓰이고 정작 가족들과의 작별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였다. 나는 몇 번 다녀본 호주인들의 장례예식 사례를 소개하며 유족들만의 장례예식 순서를 삼 남매와 함께 만들었다.

장례예식은 화장장으로 오전 10시부터 45분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9시 30분에 도착했다. 큰딸의 소개로 할아버지를 만났다. 왜소한 몸집인 팔십 후반의 할아버지 손을 잡는 순간, 45년간 살아오셨다는 이민의 삶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잘해 주세요.”라는 부탁의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 하마터면 놓칠뻔했다. 
장례예식 10분 전,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족들만 참여하는 Viewing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를 선두로 온 가족이 뒤를 따랐다. 자녀들과 손자들이 할머니의 얼굴에 손을 대고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소란스럽지 않았다.

10시 정각 장례예식은 시작되었다. 먼저 손자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할머니의 영상이 소개되었다. 빛바랜 할머니의 결혼식 사진을 시작으로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찍은 사진들, 그 자녀들의 결혼식 사진들과 손주들이 태어나면서 찍은 사진들, 그사이 사이에 할머니의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여러 곳의 여행 사진들이 올라왔다. 한 가족의 역사와 우리 호주 이민의 삶이 그대로 펼쳐졌다.
이어 할머니와 가장 가까웠다는 큰딸의 조사가 있고 난 뒤, 며느리가 부르는 조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손자들을 대표하여 큰 손녀가 조사를 낭독했다. 그리고 아들의 조가가 이어졌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어눌한 한국어로 부르는 어버이날 노래가 끝날 무렵 엄숙했던 장내가 울음바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아들은 큰절을 하며 통곡으로 어렵게 마무리했다. 다음으론 손주들의 손편지 낭독이었다. 9명의 손주들이 직접 쓴 <할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고 할머니의 관 앞에 드렸다. 손주들이 할머니께 드리는 꾸밈없이 맑은 편지로 분위기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한 손자는 지난 할머니 생일 파티 때에 절하면서 “할머니! 잘 먹고 잘살아!” 했더니 모두 웃었다는 사연을 편지로 전했다. 손주들의 릴레이 손편지가 끝나고 헌화의 순서가 되었다. 직계 가족에 이어 모든 조문객이 꽃을 관 앞에 놓으며 묵념하고는 옆에 서 있는 상주에게 묵례를 하였다. 이어 문상객들의 헌화 뒤에 나는 간단한 장례 마감 스피치를 했다. 그리고 흰 버튼과 검은 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커튼이 닫히면서 장례예식도 끝이 났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오니, 문상객들과 인사를 나누던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내 손을 잡은 할아버지의 하얀 손은 종잇장같이 가볍다. 문득, 나의 장례식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 검은 커튼이 닫히면 이쪽 세상과는 이별이지만 저쪽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되는 셈이다. 내가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이동하게 되면 오래전에 떠나신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며, 아버지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내 손을 꼭 잡으며 반길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죽음이 어둡거나 슬픈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즈음, 우리 집 앞마당엔 두 그루의 엄청나게 큰 '용설란'이 꽃을 피웠다. 높이가 3m나 된다. 서울의 형제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니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아주 귀한 꽃이라며 관련 기사를 보내왔다. 3m 높이를 정점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만발한 하얀 꽃이 장관이다. 큰 키를 자랑하며 만개한 흰 꽃에는 수많은 꿀벌이 몰려들고 있다. 그런데 위에선 꽃이 활짝 피어 풍성한데 아래 몸체의 커다란 잎은 바짝 말라 있다. 꼭 마른 장작처럼 딱딱하다. 꽃을 피우기 위해 몸에 있던 수분을 다 끌어올린 모양이다. 이제 3~4개월 후면 꽃이 진다고 한다. 모주가 있던 주변에는 벌써 어린 용설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 수명을 다한 어미 용설란은 자기가 자라난 땅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자녀들이 장성하여 자신들의 가족을 이루게 되면 그 부모는 이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삶의 이치를 용설란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하얀 종잇장처럼 가볍던 할아버지의 손이 용설란 잎 위에서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장석재 수필가
- 제14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필부문 대상수상
-수필집 '둥근달 속의 캥거루'
-그림책 '고목나무가 살아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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