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르신들께서 어떤 머리 스타일을 좋아하시는지 먼저 말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P : 뭐 특별한 건 없어요. 그냥 우리는 파마머리가 편해요. 뻗치지도 않고, 관리하기도 편해요.
H : 저는 머리 스타일보다는 오히려 염색이 더 신경 쓰여요. 3주마다 혼자 염색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에요. 너무 까만색도 촌스럽고, 밝은 색으로 하고 싶은데 또 너무 튀는 것 같아서 신경 쓰이고 그래요.
A : 저는 평생 짧은 커트 머리였어요. 애들 키우면서 제일 편하더라고요. 
L : 맞아요. 긴 머리도 젊을 때가 이쁘죠. 그런데 오늘 공부할 주제가 머리랑 상관이 있나요?
T : 네, 맞습니다. 오늘은 왜 옛날에는 나라마다 조금씩 머리 스타일이 달랐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혹시 북극지방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이 어떤 머리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생각해 보셨어요?
P : 에스키모들은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아무래도 긴 머리를 선호할 것 같아요. 짧은 머리는 너무 춥잖아요.
L : 그런데 추운 지역에서 머리를 감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 짧은 머리를 선호할 것 같은데요.
T : 사실 에스키모인들은 아주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는데요, 그 점퍼에는 털이 있는 모자가 달려 있습니다. 사진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A : 와! 생각보다 옷이 아주 두껍네요. 모자도 크고 털이 많아요.
T : 네, 추운 날씨에 모자를 푹 덮어 써야 하기 때문에 에스키모인들은 아주 짧은 머리를 선호합니다. 거의 남자분들처럼 짧은 머리예요.
L : 그렇겠네요. 아무리 머리를 예쁘게 꾸며도, 저런 모자를 하루 종일 쓰면 머리모양이 눌리겠어요.
T : 이처럼 에스키모인들의 머리는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 조선시대 사람들은 머리 스타일이 어땠을까요?
P : 머리를 길었죠. 남자들도 긴 머리를 밑으로 땋고 다니거나, 상투를 틀어서 갓을 썼잖아요.
T : 그럼 왜 조선시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긴 머리를 했던 걸까요?
A : 아! 혹시 신체발부 수지부모...뭐 그런 한자가 있지 않나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니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거죠.
T : 네, 아주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선시대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효(孝) 사상이 아주 철저했던 시대입니다. 부모님께서 낳아주신 몸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효의 으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머리를 길렀던 것이죠. 그리고 여인들은 쪽진 머리 위로 도톰하게 올린 머리를 미의 기준으로 여겼습니다. 즉, 올린 머리의 숱이 많을수록 탐스럽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림을 보겠습니다. 

H : 예쁜 것도 좋은데, 아이고...너무 무거울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저 머리를 하고 있으면 목 디스크가 올 것 같아요. 
모두들 : 하하하
L : 평생 머리를 기르면, 저 정도로 올린 머리를 할 수 있겠네요.
T : 사실, 이 올린 머리가 풍성할수록 아름답다는 생각이 만연하자, 여인들은 너도나도 가체를 쓰기 시작했어요. 가체는 가짜 머리, 즉 일종의 가발이에요. 
P : 어머나! 조선시대에도 가발이 있었어요?
T : 네, 가체(假髢)의 한자는 가짜 머리터럭이라는 뜻입니다. 가난한 여인들은 머리를 잘라서 팔면, 하루 먹을 곡식을 구할 수 있었고, 양반가 여인들은 그 머리를 사서 가체를 만들어 쓰곤 했습니다. 또한 숱이 풍성한 가체는 양반들 가문의 재력을 과시하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A : 인모(人毛)로 만든 가발이니, 가격도 만만치 않았겠어요.
T : 풍성한 가체 위에 아름다운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조선시대 후기에는 가체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첫째, 가체와 머리장식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지면서 사치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둘째, 너무 무거운 가체 때문에 목뼈가 부러지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집가는 새 색시가 풍성한 가체를 예물로 준비하지 못하면 소박을 맞는 일이 발생했어요. 이 때문에 영조라는 임금은 가체 사용을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A : 결혼 예물로 문제가 생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네요. 
P : 세상에...목뼈가 부러질 정도로 그 무거운 걸 머리에 이고 살았다는 거네요.
L : 뭐든지 지나치면 꼭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H : 이전에 선생님이 강의하실 때, 영조 임금이 굉장히 검소했다고 하셨던 거 같아요. 생모가 천한 신분의 무수리였던 그 임금이 영조 맞죠?
T : 네, 맞습니다. 영조는 검소함을 몸소 실천했던 왕으로 유명합니다. 영조 이후에 조선시대 여인들의 가체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쪽진 머리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어르신들과 조선시대 여인들의 머리 스타일과 가체 사용, 그리고 그 폐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더 흥미로운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천영미
고교 및 대학 강사(한국) 
전 한국연구재단 소속 개인연구원
현 시드니 시니어 한인 대상 역사/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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