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경
 
엄마가 맨 다리로 서 있을 때
마당 등나무꽃 날리는 바람에
다리 두 개 더 보였지
치마 속에 손을 넣어보고 싶었던
눈이 시린 엄마의 다리들 
 

양판을 올려놓고 여섯 박자 지루박을
혼자 돌며 돌며 추던 매끈한 다리너머
두근두근 심장은 뛰는지
새벽안개를 보면 코끝이 찡한지
비가 오면 손바닥에 비를 모아보는지
그런 게 궁금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리 지를 때는
전축 기둥 옆에 쪼그리고 앉아
죄어들어오는 벽에다
손 구멍을 내고 싶었던
차라리 못이 되어 벽을 뚫고 싶었던 분절의 기억

 
작년겨울 서울은 난공불락
다 큰 아이 뒷바라지로
여러 달 전철역 근처 원룸에서 지냈다
시드니로 돌아오니 뒤따라온 두툼한 이불과 프라이팬
허술한 나의 실물이 도착하고서야 그게 낯익은 벽이었음을
엄마에게도 다리는 두 개 뿐이었음을
 

보잘 것 없는 내가 두개의 다리를 더 붙여
얼마나 화가 난 짐승으로 살려고 버텄는지
먼 험지를 다녀온 후에야
눈시울 자주 붉히던 엄마와의 불통이
그 잃어버린 기억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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