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의 삶을 다시 기록할 수 없지만 다시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경험하는 ‘상처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에 의해 지금의 자신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상처와 불안은 꾸지람부터 폭력에 이르는 공격에서 비롯되고, 두려움은 사랑하는 누군가 혹은 애착하는 어떤 것의 상실에서 생겨납니다. 상처와 두려움은 불안과 죄의식으로 발전해, 나 자신을 온전히 발견하지 못하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들려오는 많은 소식이 ‘상처와 불안, 그리고 갈등’을 만드는 것들입니다. 치료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만나면, 상처와 불안 속에서 움츠리고 있는 자신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힘들어하는 자신을 상대방과 통하게 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게 이끌어줍니다. 대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려울 때 자기만의 내면의 동굴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따뜻한 위로가 자신과 이웃의 만남을 가능하게 돕습니다. 그렇습니다. 따뜻한 위로 한 마디가 나 자신을 만나게 합니다.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길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보세요. 

한편 우리에게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수하거나 잘못 했을 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타인에게서 그 부분을 반복해 듣는 것이지요. 실수에 대한 뉘우침은 결국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지적은 결코 사람을 변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책과 타인에 대한 저항만 생깁니다. 특히 매일 보며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끼리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수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타인의 지적을 미워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변화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답니다. 미움은 받더라도 죄의식은 갖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인정하는 내가 되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첫 일성(一聲), 회개는 죄 그리고 죄의식과 무관합니다. 죄의식을 갖지 않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지요. 

지금 나로 만족하지 않고 온전한 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죄책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죄책감을 느끼면 본래의 나와 간격이 멀어져, 모습과 생각, 마음이 다르게 움직이곤 합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 보세요. 나는 부족하고 불완전해도 사랑은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여라.”(마태4,17)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용기를 내라는 말씀입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온전한 내가 되는 것으로 충분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는 초대입니다. 

“새롭게 늘 변화하라! 처음처럼 회개하여라!(Metanoite)” 이는 변화하라는 압박이나 강요와 거리가 먼 선언입니다. 우리는 지나친 죄의식에서 벗어나 본래의 나로 충분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처럼 본디 모습으로 돌아오라는 초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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