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인 중국특파원 2명 ‘사실상 강제 추방’ 당해  
ASIO의 중국인 기자 4명 조사, 학자 2명 비자취소 보복인 듯
73년 이후 첫 주중 호주 특파원 없는 상태  

ABC 방송의 빌 버틀스(Bill Birtles) 중국특파원과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  AFR(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리뷰)지 중국특파원이 지난 7일(월) 샹하이에서 도망치듯 호주로 출국해 8일 오전 시드니에 도착했다. 중국 경찰과 공안 당국 관계자들이 3일 늦은 밤 두 기자들의 베이징 자택(아파트)을 방문해 “국가안보 관련 사안에 개입돼 출국이 금지됐다”고 통보했다. 두 기자들은 호주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고 대사관의 개입으로 호텔에서 공안 당국의 심문을 받은 다음날 황급히 중국을 벗어나야 했다. 이들은 대사관에서 5일 동안 신변을 보호받은 뒤 일종의 도피성 출국을 했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사실상 강제 추방을 당한 셈이다. 이로써 호주 언론계는 1973년 이후 처음으로 주중 특파원이 없는 상태가 됐다.   

중국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빌 버틀스 ABC 중국특파원


 
ABC 방송은 8일 주호주 중국 대사관에 호주 저널리스트 2명에 대한 중국 당국의 심문에 대해 질문했다. 중국 대사관은 답변이 없었고 대신 여러 중국 관영 매체들이 8일 밤 “호주에 체류하던 중국인 기자 4명이 호주 정부의 공격 목포가 됐고 중국인 학자 2명은 전례없는 해외 정보 수사와 관련해 비자가 취소됐다. 호주 정부는 이른바 ‘표현의 자유(freedom of the press)’를 지지한다면서 한편으로 중국인 기자들의 합법적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해 ‘위선(hypocrisy)’을 드러냈다”고 보도하며 호주 정부를 성토했다.

이번 주 이같은 보도가 나온 배경을 감안하면 중국 기자와 학자들에 대한 ASIO(호주안보정보국)의 수사와 비자 취소가 주중 호주특파원 2명의 출국과 연관된 ‘일종의 보복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부터 억류돼 조사를 받고 있는 중국 출생 호주 시민권자인 쳉레이(Cheng Lei) 방송인도 이 보복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주 쳉레이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호주에 있는 중국인 학자 2명과 저널리스트 2명은 비밀리에 가택 수색을 당했다. ABC 방송은 9일 AFP(호주연방경찰)와 ASIO의 조사를 받는 중국인 4명의 신상을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 중국신문사(China News Service) 호주 지국장 타오 쉐란(Tao Shelan). 중국신문사는 신화통신(Xinhua News Agency)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국영 뉴스 대행사다.
* 중국국제방송(China Radio International) 시드니 지국장 리 다용(Li Dayong). 중국국제방송은 중국의 유일한 국영대외방송이다.
* 유명 중국인 학자 겸 미디어 해설가인 첸 홍 교수(Professor Chen Hong)
* 호주학 학자인 리 지안준(Li Jianjun) 

ASIO의 조사를 받는 중국인 학자들과 기자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리 지안준, 첸 홍 교수, 타오 쉐란, 이 다용

AFP-ASIO의 해외간섭 대응팀(Foreign Interference Task Force)은 샤케 모슬만(Shaoquett Moselmane) NSW 상원의원(노동당)의 존 장(John Zhang) 전 보좌관이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위챗(WeChat)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모슬만 의원에게 중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6월 26일 모슬만 의원과 존 장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을 하면서 이 수사가 언론에 알려졌다.   

6월 26일 샤케 모슬만 NSW 상원의원의 집과 사무실이 압수 수색을 받았다

대화방 멤버인 첸 교수와 리 지안준은 최근 호주 비자가 취소됐다는 호주 내무부의 편지를 받았다. 비자 취소 이유는 국가안보 위험 혐의(alleged risks to national security)에 대한 ASIO의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4일 ASIO는 당신이 ASIO법(Australian Security Intelligence Organisations Act) 1979의 4항 범위 안에서 안보에 직간접 위험이 됐다는 평가를 했다"는 내용이 내무부 편지에 적시됐다.

첸 교수는 호주-중국 관계의 논평가로서 호주 미디어도 종종 등장했고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 타임즈(the Global Times)에도 기고를 했다. ABC의 인터뷰 요청을 사양한 그는 “국가 안보를 근거로 비자 취소 통보 이메일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런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FD(Fair Dinkum) 그룹‘으로 불린 이 대화방은 신문 기사, 개인 사진, 낚시, 여행, 농담 등을 공유한 것으로 아무런 해가 없다(innocuous)며 정치적 영향력의 목적을 가졌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preposterous). 모슬만 의원과 존 장과의 관계도 완전 공명정대(entirely aboveboard)하다. 모든 대화가 공개 됐고 의심스러운 점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첸 교수는 1994년 봅 호크 총리의 중국 방문 당시 통역을 했고 봅 카 전 호주 외교장관과 지인 관계이다. 첸 교수와 리 지안준은 중국내 호주학 소프트파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호주 외교통상부(DFAT)와 민간 기업들의 지원을 받으며 중국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두 사람은 샹하이의 동중국 보통대학(East China Normal University)과 베이징외국어대학(Beijing Foreign Studies University)에서 호주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웨스턴 시드니대에서 박사학위를 한 리는 자원그룹 BHP 빌리턴의 호주중국장학금(Australia China Scholarship) 6만 달러를 지원 받았다. 그의 학생비자는 최근 취소됐다.  

변호사인 모슬만 의원은 지난달 ABC 방송의 세븐서티(7.30)와  대담에서 그가 중국 공산당이 배후에 있는 해외영향력 공작의 타겟이 됐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위챗 대화방을 통해 내가 코멘트나 의회 업무와 관련해 멤버들과 논의를 하고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대화방을 통해 때때로 신문 기사, 코멘트를 공유했고 농담도 전하는 등 사람들이 보통 하는 일(This is a common human thing)”이라고 반박했다.  

존 장 전 보좌관도 AFP의 혐의를 강력 부인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가 제출한 상고 서류에 따르면 AFP는 장과 다른 중국인들이 중국 공산당의 협조를 받으며 또는 대리한다는 것을 모슬만 의원에게 숨겼거나 공개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포함했다. 8월 대법원 상고 이유서에서 그는 “호주의 새로운 해외간섭법은 정치적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unconstitutional)이라고 주장했다.  

샤케 모슬만 NSW 상원의원(왼쪽)과 전 보좌관 존 장

호주 정부가 중국과 커넥션을 의심받는 NSW 정치인과 그의 전 보좌관(존 장), 중국인 기자와 학자들 4명에 대한 조사를 하자 중국은 호주인 특파원 2명을 자진 출국 형태로 추방했다. 
8일 마리스 페인 외교장관은 연말까지 코로나 팬데믹으로 호주인들의 해외 출국이 전면 금지된 상태임에도 호주인들에게 “중국을 방문하지 말라. 중국의 국가보안법으로 외국인들이 임의 억류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 발언 직후 중국 관영 매체들은 “호주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서  중국인 기자들과 학자들을 부당하게 조사하는 등 위선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악화일로의 호주-중국 관계는 중국의 계속된 무역 보복에 이어  호주인 저널리스트 추방으로 언론계로도 확대됐다. 이제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인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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