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툭하다. 
남편과 함께 손자의 돌 사진을 보는데 가족사진 속에 뭉툭한 내 손이 눈에 띈다. 무심코 늘어뜨린 손은 흡사 연장을 들고 있는 모양새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늘 큰 손을 어떻게 두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주먹을 쥐면 더 커 보여 뒤로 감추곤 하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다. 손만 가까이 놓고 보면 크기도 하거니와 마디도 굵고 영락없는 남자 손이다. 무슨 특별히 손으로 하는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막노동을 한 손처럼 보인다. 게다가 엄지손가락은 어떠한가. 우리 가족 중 아무도 그렇지 않은데 나만 혼자 돌연변이처럼 짧고 납작하다. 삼신할머니가 세상 밖으로 내보내며 눈도장을 찍듯 나무망치로 한 대 꾹 눌렀던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 어떤 이가 나를 보면 아가씨가 손이 그렇게 커서 시집가려면 큰일 났다고 놀렸다. 내게 관심을 보이던 직장 동료였던 그는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을 가졌다. 나는 그런 걱정하지 말라며 남자가 기생오라비 같은 손을 가져서 참 좋기도 하겠다며 응수했다. 그저 놀리는 말이었지만 내게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추운 겨울에 장갑을 낄 때 손가락장갑보다는 벙어리장갑을 끼곤 했는데 그렇게라도 나의 큰 손을 감추고 싶었다. 남편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나보다는 좀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손부터 바라보았다. 남편의 손은 제법 크고 기다란 손이었다. 
내 신체 중에 하나 바꿔보고 싶은 게 있다면 눈 쌍꺼풀도 아니고 코 높임도 아니다. ‘섬섬옥수’라고 불리는 하얗고 긴 손가락을 가져보고 싶다. 그러나 ‘섬섬옥수’는 내게는 아주 꿈같은 단어이다. 아무리 성형 수술이 유능한 의사라고 해도 나같이 뭉툭한 손을 그렇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뭉툭하고 투박한 손으로 아이 둘을 낳아 길렀고 장사를 하는 남편의 일을 같이 돕고 살았다. 이민 와서는 여러 가지 일을 거치며 힘겨웠던 시간도 거뜬히 지나왔다. 호주에 와서 보니 가게에 오는 손님 중 간혹 나와 같이 못생긴 엄지를 가진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반가워 내 엄지를 내밀며 함께 웃는다. 다시 생각해 보면 투박한 이 손 때문에 못 한 일은 없다. 큰 손 덕분에 거침없이 일을 잘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실제와는 달리 바지런한 손 같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나이를 먹으며 손도 빨리 늙어갔다. 설거지할 때 고무장갑을 끼는 것이 갑갑해서 맨손으로만 하다 보니 더욱더 거칠어지고 쭈글쭈글해졌다. 뭉툭하고 못생긴 손이지만 내 손은 따뜻하다. 추운 날 내 손을 잡으면 차가운 마음도 녹을 듯 온기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얼마 전 남편은 사고로 엄지손가락을 다쳤다. 그의 기다란 엄지손가락이 한 마디 짧아졌다. 짧아진 엄지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고가 난 후에야 알았다. 엄지는 물건을 집을 때 쥐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고 지탱하는 지렛대 역할도 한다. 제일 잘한다고 할 때 엄지 척! 하는 것 또한 거기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가. 
당장 서류에 서명해야 할 때, 밥을 먹으려고 젓가락질을 할 때, 옷을 입으려 단추를 채울 때 등등 온갖 일들이 모두 불편해졌다. 그는 수술을 마치고 한참 지난 후에도 자신의 다친 엄지를 바로 보지 못했다. 끔찍한 상황을 인정할 수도 없고, 흉측해졌을까 봐 보기를 두려워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피부 이식한 살이 잘 안착하여 갈 무렵에야 손가락에 눈 맞춤을 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아직 재활 치료는 더 오래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한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나무 조각을 집어 구멍에 넣거나, 집게를 잡고 물건을 집어 올리고, 고무찰흙으로 밀가루 반죽하듯 손에 쥐고 주무르며 손힘을 키운다.
예전처럼 원상 복귀는 안 되겠지만 열심히 재활 치료를 하면 빨리 회복될 거라는  믿음으로 운동을 한다. 남들의 시선도 꺼려서 밖에 나갈 때는 붕대를 감는다.
아직도 선뜻 다친 손가락을 내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내가 밥 먹고 체했을 때 혼자서 바늘로 손가락을 따서 피를 내는 걸 볼 때면 머리를 절레절레하며 기겁하고 도망가던 사람이다. 평소 겁이 많아서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 사고를 당했으니 오죽하랴.

남편의 손을 끌어당긴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한 손이다. 따뜻한 내 손의 온기가 그에게 전해지도록 오래도록 마주 잡는다. 짧고 납작한 내 손보다는 여전히 긴 걸 뭐, 아주 괜찮아.

김미경 수필가
수필집 <배틀한 맛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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