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잘 알려진 대로 한자와 유교 문화권이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읽고 배워온 고전 문헌을 보면 안다. 한자와 도의와 윤리가 핵심이다. 
 
일제 시절 교육 받은 1세대 한국인들은 초등학교 때 필수과목인 수신(修身)을 배웠다. 그 이름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한 논어의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내용이 모두 도의와 윤리다. 일본 또한 한자와 유교 문화권 아닌가. 
 
해방 후 우리는 초중고교 수준에서  처음 공민부터 시작, 도덕과 윤리와  같은 과목을 배워왔다.  수신의  연장선이어서 내용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도의와 윤리에 대한 교육과 감화에  관한 한, 한국은 더 있다.  불교 말고도 해방 후 미국 선교사들의 덕택으로 기독교 국가가 된 사실이다. 이 두 종교는 영혼에 대한 준비와 함께  현실 사회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행하라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인은 도덕과 윤리 면에서 다른 나라 민족보다 앞서있거나 아니면 그 점을 더 뼈 아프게 생각하는 민족일까? 아니다. 신문 칼럼,  TV 시사토론, 유튜브에 나오는 각계 지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경제, 남북관계, 과학기술, 군사력, 우주 철학, 인공 지능과 같은 거대담론이 거의 전부다. 
 
 국민의 높은 도의와 윤리 수준은 당연하다고 여겨 그러는걸까. 그런 토픽을 꺼내는 사람은 그것 밖에 모르거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사는 낡은 세대로 치부되고 마는 것 같다.
 
사분오열된 사회
 
나는 원래 머리 좋은 수재가 아니나,  공부를 좋아해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학교를 다니느라 귀한 세월을 보내고 젊어서는 부모님을 너무 고생시켜드렸다. 또  여러  학문 분야를 들어가 보았다. 역마살이 끼었다고나 할까. 보통 사람보다 많은 직장을 가봤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으뜸으로 여겨야 할 가치는  역시  도의와 윤리라는 시국관 또는 사회관을 갖게 되었다. 우리 민족이 앞으로 가장 잘 살게 되는 길은 거기에 있다는 말과 같다. 경제, 경제하지만,  경제를 지금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 이미 이룩한 물질과 기회를 더 균등하게 나눠 갖는 일이 더 중요한데 그것은 도의와 윤리의 문제다. 
 
경제가 아무리 잘 되어도 좀 잘난 사람은 모두 분수에 넘는 자리를 탐내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겠다고 동분서주한다면 어떻게될까? 잘 살게 되었다지만 나라가 사분오열되어 저렇게 시끄러운게 그것이다.  누가 아직도 과도기라고 감히 말할 것인가. 
  
고국에서 매 정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쓰는 말이 개혁이다. 개혁의 대상은 물론 법과 제도와 정책이다. 그런데 그 흔한  개혁은 약발이 먹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법과 제도와 정책은 구성원들에게 잘 살기 위한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바르게 행하도록 만들려는 장치다. 그러나 그 장치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실천으로 옮긴다. 사람이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면 사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역시 도의와 윤리로 귀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우선이라고 했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건  아닌 것 같다. 
 
올바르게 사세요
 
도의와 윤리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나만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여 올바르게 행동하는 일이다. 한참 전에 호주에서는 “Do the Right Things(올바르게 사세요)”라는 제목의 노래로 된 공익 텔레비전 광고가 한동안 방영되었었다.  
 
올바른 삶을  굳이 설명하겠다면 준법정신,  질서의식,  정의감, 양심,  정직, 겸양, 인권, 공평성, 평화와 같은 개념과 말들을 동원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지금 일부 국민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부르짖고,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부동산 대란, 비리와 고소 고발 사건으로  사회가 뒤끓고 있는데 사람들이 양심이 있고, 정직하고, 정의로워 진정 남과 더불어 살 생각이 있다면 그런 논쟁 없이도 잘 될 수  있을 것이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북통일 문제도 그렇다. 길게 보면 통일은 한 쪽이 절대적  체제우위에 놓이게 될 때 이뤄질 것이다. 경제와 군사력은 분명 체제우위의 한 큰 요건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의 아래 자율적인 국민통합 없이 경제와 군사력이 무슨 힘을 쓰겠는가? 국민통합은 구성원들이 도의와 윤리로 뭉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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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민의 도의와  윤리 수준을 높일 방법이 관건이다. 도의와 윤리 교사와 인문학 대중강의를 늘리면 될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역시 사람들은 무엇이 도의와 윤리인지 몰라 그러는 게 아니므로다.
 
사람은 사회가 가르친다.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유대인 어머니(Jewish Mother)’를 언급하는 글을 자주 읽게 된다. 하지만 가정은 자녀들의 행태를 결정하는 많은 변수 가운데 하나다. 친구, 직장, 단체, 권력, 돈 등  그밖에 많다. 가장  중요한 건 100년도 더 된 이반 파블로프의 ‘개의 실험’ 이후 교육의 대원칙이 된 상벌(賞罰, Reward and punishment)이론이다.
 
보상이 없는 도의와 윤리의 실천을 누가 하겠나. 인간은 합리적이다. 실천하는 사람을 대접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했다지만 한국은 대체적으로 올바르게 살면 손해보는 사회가 되었다.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런 풍토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역설해도 먹히지 않는다. 그에 필적하는 다른 심리적 및 정신적 보상, 달리 말하면 사회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누가 어떻게? ‘위로부터’를 의미하는 톱다운(Top Down)방식으로는 안 된다. 그건 이미 해보지 않았는가. 풀뿌리와 민심 차원의  21세기형 새로운 도덕재무장(MR, Moral Rearmament Movement) 운동을 벌여야 하다. 이웃, 교회, 그 외 단체 등 일상의 작은  모임과 개인 간 교류에서 1차 관심과 대화거리가 되어야 한다. 전염병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기듯  올바른 행동도 전파된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말이다. 고국을 잊을 수  없는 여기 한인들의 대화거리는 무엇인가?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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