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금요단상
[금요단상] ‘위기와 기회’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 승인 2020.09.24 16:20

1. 
위기는 항상 기회를 불러 온다. 위기의 끝판왕인 죽음도 그렇다. 죽어야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 때가 올 때까지는 이 세상의 위기를 논한다. 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다. 이 위기를 기회로 선용한 기업들은 엄청난 세불리기를 하고 있다. 위기의 때를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 무장해재를 당해 두 손 묶여 있는 상황이라 그들의 독주는 더욱 돋보인다. 넷플릭스, 애플, 테슬라, 애프터페이(Afterpay), 카카오 등이다. 지난 연말 대비 주식값이 두배 이상, 심하면 10배까지 올랐다. 이런 기업들의 특징은 비대면 위기 상황에 창조적으로 대처했다는데 있다. 한국의 BTS 경우,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아니었다면 ‘빌보드 핫100’에 2주 연속 1위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로 국내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오히려 ‘세계화의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2.
나는 그런 세계화 혁신의 최전선에 살고 있지 않다. 지난 20년 넘도록 세상의 변방으로 자처하는 호주 한 구석에 산다. 이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컬럼을 쓰고 있다. 마감 시간에 쫓기며 앉아 있는 나를 아내가 부른다. 호주 청정해역에서 자라난 홍합을 삶았으니 와서 먹으란다. 커다란 양푼에 가득 담겨있다. 바다 소금기가 풍만하게 배인 홍합 속살을 빠른 속도로 먹어 치웠다. 좀 더 다르게 먹어 보고 싶어서 그 위에 올리브유를 흠씬 뿌렸다. 하나씩 올리브오일로 코팅하여 집어 먹으며, 수퍼에서 파는 북유럽산 훈제 홍합이 생각났다. 맛은 그게 더 구수하지만 건강에는 이것이 더 좋다는 아내의 말에 수긍하며, 담백한 자연향을 입안 가득 담고 와서 다시 이 글을 쓴다. 아내는 아내대로 홍합을 건져낸 국물로 미역국을 끓인다. 그렇게 홍합은 한번 죽음으로 여러 사람을 살린다. 

어제는 할로겐 전구를 바꿨다. 지은 지 20년, 우리가 이사온지 13년 된 집이라 거실 천정에는 할로겐 전구가 달려있다. 하나에 50와트짜리다. 10개를 켜면 500와트, 그 엄청난 부담감에 특별한 때가 아니면 어둡게 살았다. 그런데 정부가 보조하여 단 $33만 내면 숫자에 상관없이 LED로 갈아 준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더니 바로 그 다음 날 전기 기술자를 보내 줬다. 사다리 두 개를 가지고 열심히 전구를 바꿔준다. 작업하는 이를 따라 다니며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한 두 마디 건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봇물처럼 자기 인생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이번 주 처음 나왔단다. 원래는 로보트 전문 기술자인데, 3개월전 일이 사라졌단다. 마지막 직장은 헌터밸리에 있는 석탄광산. 지하 100-200m를 내려가 자동기기를 다루던 젊은 가장이다. 3개월을 놀다가 이제는 일을 해야겠기에, ‘이런 일’이라도 하려고 나섰단다. 자신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벌지는 못하지만 현재의 경제 위기를 이겨나가는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김에 코로나로 인해 확찐 몸도 좀 줄여 보려 한단다. 사다리에 올라가 팔을 들고 전구를 갈 때 드러난 뱃살이 그 증거인양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의 직업을 물어보는 그에게 미니스터라고 했다. 잠시 그의 눈이 흔들리는 것 같아서, 다시 파스터라고 했다. 그 때야 얼굴이 펴지면서 말한다. ‘대화를 접어야 하나 잠시 걱정했다’고. 나를 장관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말해 줬다. 장관이나 목사나 다 섬기는 직업이라고. 서로에게 편안한 대화를 계속하다가 일은 끝났다. 그 동안 우리 집 건물의 위기를 해결코자 왔던 플러머나 전기공 등 중에서는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이런 일을 많이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았고, 인공지능이라는 동일한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되었다. 13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불을 다 켜 봤다. 이전의 차가운 빛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한 불빛이었다. 집이 달라 보였다. 코로나로 인해 얼어 붙은 경제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살아 있어 우리 집을 돌봐주고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성실한 기술자가 와서 잘 해 줬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현관 천정에 한 전구는 켜지지 않았다. 설치하면서 점검하지 않았던 불찰이다. 고민 좀 했다. 그냥 놔둘까? 그러다가 정중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집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전등 하나가 안켜지는군요. 이대로도 괜찮지만, 혹시 가능하시면 고쳐 주시면 좋겠는데…” 바로 답이 왔다. 시간 내서 가겠다고. 그렇게 어제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잘 지나갔다.

3.
세상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을 향해 때도 없이 위기가 들이닥친다. 그렇다고 항상 어렵지만은 않다. 야곱은 130년 험한 인생을 살았지만, 말년 17년을 아주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았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면 좋겠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으니까. 이쯤에서 인생을 보는 눈이 둘로 갈라진다. 죽음이 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을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제작된 기계로 본다. 그러나 아니다. 인생은 잠시요, 죽음 후에 영원한 삶이 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심하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막장 바이러스를 이미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변방인 호주 한 구석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나의 삶이 전혀 억울하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다. 세상을 보고 싶으면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된다.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를 보면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보다가 다시 부엌으로 내려간다. 홍합을 까먹고, 정원으로 나가 새와 꽃과 하늘과 바람 속에 들어간다. 그 정원의 청지기는 아내다. 많은 시간을 내어 야채를 심어 키우고, 꽃과 선인장을 돌본다. 그러면 그들은 정직하게 먹을 것을 내 놓는다. “날 잡아 잡수세요! 내 생존의 의무와 기쁨입니다.” 나는 거기서 나오는 무공해 신선한 야채들을 먹는다. 태국에서 건너온 안남미 쌀밥에, 한국에서 온 초고장을 비벼 먹는다. 그렇게 나는 이미 세계화의 한 가운데 있다.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맛보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인생 최대의 위기라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나의 창조주를 만날 것이다. 그 분은 나를 영접하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실 것이다. 나는 한갓 바다의 홍합이나 정원의 쑥갓과는 다르다. 우연히 생겨나 진화한 유전자의 기계는 더더욱 아니다. 난 ‘부자 아버지의 찬스’를 써서, 이 위기를 기회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김성주목사(새빛장로교회)  holypillar@gmail.com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Suite 2, L1, 570 Blaxland Rd. Eastwood NSW 2122 Australia  |  Tel : 02-8876-1870  |   Fax : 02-8876-1877
Copyright © 2020 HANHO KOREAN DAILY. All rights reserved. mailto : info@hanho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경환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