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카이엔. 슈퍼카 브랜드들이 SUV 산업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사진=포르쉐 AG)

바야흐로 SUV 시대입니다. 넓은 실내와 적재공간, 탁 트인 시야 등 세단에서 누릴 수 없는 많은 장점 덕입니다. 소비자가 열광하니 브랜드들도 SUV 개발에 열심입니다. 소형부터 대형까지 다양한 SUV 라인업을 만들고, 도심에서 타기 좋은 CUV, 쿠페형 루프라인을 가진 SAC 등 여러 변종도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국제 에너지 기구(IEA)의 세계 에너지 투자 보고서(World Energy Investment, 2020)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차 중 SUV가 40%를 넘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짐차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죠. 현재 양산차 브랜드 중 SUV를 만들지 않는 업체는 극히 드뭅니다. 세단용 플랫폼으로 SUV까지 설계하는 브랜드도 많아졌습니다.

슈퍼카 브랜드들도 라인업에 SUV를 넣은 지 오래입니다. 2002년 데뷔한 포르쉐 '카이엔(Cayenne)'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골수팬들은 카이엔을 진정한 포르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카이엔의 주행 감각은 여전히 포르쉐다웠고, 이차가 벌어오는 많은 돈은 재정난에 빠진 포르쉐를 구했습니다. 포르쉐는 지난해 총 28만여 대를 팔았는데, 그중 카이엔이 약 9만 대를 차지했습니다. 카이엔의 동생 격 SUV인 ‘마칸(Macan)’도 10만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롤스로이스 컬리넌. 세계 최고의 럭셔리 SUV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사진=롤스로이스)

카이엔의 인기를 실감한 경쟁사들도 SUV 개발에 도전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1986년 SUV 모델 'LM002'를 만든 경험으로 2017년 '우루스(Urus)'를 출시했습니다. 현재 람보르기니 전체 판매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성공 궤도에 충분히 오른 셈입니다. 그 외에도 007의 본드카 애스턴마틴은 'DBX'를, 재규어는 ‘F-Pace’를, 마세라티는 ‘르반떼(Levante)’를 선보였습니다. 그러자 영원히 콧대를 꺾지 않을 것 같던 페라리도 최근 SUV 출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들도 유행에 편승했습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GLS 600’, 벤틀리의 ‘벤테이가(Bentayga)’, 롤스로이스의 ‘컬리넌(Cullinan)’ 모두 세계적인 럭셔리 SUV들입니다. 슈퍼카나 럭셔리 세단을 만들 땐 소수만 찾았으나, SUV는 다수에게 사랑받아 각 회사의 매출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차체가 큰 SUV들은 환경에 취약해서입니다. 2021년부터 EU는 자동차 회사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95g/km 이상일 때 벌금을 부과합니다. 판매된 차량 대수만큼 1g당 95유로(약 157 호주 달러)의 벌금이 매겨집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요즘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개발을 일삼는 것도 바로 이 평균값을 낮추기 위함입니다. 결국 SUV를 팔기 위해 친환경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갈수록 높아지는 SUV의 인기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100년 넘는 자동차 역사에서 시대별로 사랑받는 차들은 매번 달라져 왔습니다. 2차대전 이후엔 대형차 붐이 일었습니다. 전쟁 후 도로가 확장되고 경제가 회복됐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석유파동을 겪던 7~80년대엔 소형차가 거리를 덮었습니다. 유가가 높아지니 경제적인 차들이 잘 팔렸죠. 21세기 SUV 시대를 살고 계신 여러분, 다음 차는 SUV 어떠신가요?

BMW X6M. SUV답지 않은 루프라인이 인상적이다.(사진=BMW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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