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H] 한국문화원 ‘구본창 백자 사진전’ 특별 소개
존 맥도널드 예술평론가 극찬

주시드니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re Australia: KCCA, 원장 박소정)이 개최 중인 ‘작가 구본창 백자 사진전(Light Shadow: Koo Bohnchang)’과 관련, 시드니모닝헤럴드지의 존 맥도널드(John McDonald) 예술평론가가 조선 백자와 사진전을 소개하는 칼럼(More to Korean ceramics than merely chasing shadows)을 기고했다. 한호일보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커져가는 달 항아리에 대한 관심을 소개하기 위해 기고문을 번역했다. - 편집자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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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mh.com.au/culture/art-and-design/more-to-korean-ceramics-than-merely-chasing-shadows-20200907-p55t3i.html

예술을 감상하는데 있어 전문 지식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자기 전문가가 위대한 도자기 작품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들은 이 작품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따져 볼 것이고 다른 도자기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분석하려 할 것이다. 반면에 아마추어 애호가는 단순히 “와!”하고 탄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왕조(1392~1910)의 달 항아리를 처음 접했을 때 그와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 단순한 백자가 전달하는 강력한 인상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달 항아리(moon jars)는 흠이 없는 예술 작품이 아니다. 이들은 허름하며 많은 결함과 마모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를 통해 특별한 순수함이 전달된다. 달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동양 미학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 즉 공허함이 곧 충만함(that emptiness that is also a fullness)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진작가 구본창(1953~)도 다른 상황 속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일본 잡지를 보던 중 한 사진 속 방 안에 달 항아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작품 활동을 한 도자기 작가 루이스 리(Lucie Rie)의 사진 속에서도 달 항아리를 발견하였다.

구본창은 해외에서 조선 백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에 고무되면서도 이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이후 구본창은 각국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거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달 항아리를 찾아다니며 이들을 사진 속에 담게 된다. 

시드니의 호주한국문화원(KCCA)은 구본창 작가가 그동안 찍어 놓은 달 항아리 작품을 ‘빛 그림자: 구본창(Light Shadow: Koo Bonchang)’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하고 있다.

이번 사진전은 한국문화원이 처음으로 개최하는 단독 사진전이며 시각 예술감독 박세영(Saeyoung Park)이 전시 공간을 완전히 재단장한 후 최초로 열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조선 백자는 구본창 작가가 다루고 있는 많은 주제 중 한 가지일 뿐이지만 그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두 가지 요소, 즉 시간과 빛(time and light)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예리하게 의식하게 하고 빛과 그림자의 작용에 의해 대상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구본창은 작품 속 대상들을 어떤 신비한 비밀이나 퍼즐을 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게 과장이라 생각되면 빛 그림자 사진전을 가 보길 권한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책 속에서 효과적으로 샘플링될 수 있지만 달 항아리 사진들은 벽에 걸려 있는 상태로 감상해야 한다. 구본창의 사진들은 그림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대상의 높낮이와 상세도를 변화시키면서 발생되는 효과이다. 사진 속 대상의 외곽선은 어떤 경우 매우 날카롭고 어떤 경우는 마치 붓으로 그린 것처럼 흐릿하다. 달 항아리가 바닥과 닿는 부분은 너무나 가벼워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달 항아리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흰색이 조선 시대에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유용할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에서 그들이 옹호하던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흰 색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 창백한 빛깔의 도자기가 어떻게 우리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러한 신비는 이번 사진전의 제목에서도 암시되고 있다. ‘빛 그림자’라는 문구는 어떤 뜻일까? 빛에 그림자가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림자가 가벼울 수도 무거울 수도 있다는 뜻일까? 

이런 모든 분석들을 적절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직접 보아야 한다. 구본창의 달 항아리 사진들을 분석하려고 하면 할수록 작품의 본질인 순수한 시각성의 영역에서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전은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는 것을 보여준다. 점토가 지니고 있는 구체성(earthiness)은 영원한 상태가 되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뒤섞인다. 구본창은 구체적인 것과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the concrete and the ineffable) - 대상과 그것의 아우라(the object and its aura) - 을 함께 사진 속에 담는 불가능한 작업을 수행했다. 거의 두렵기까지 한 것은 그가 이 일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 구본창 사진전: 빛 그림자 (8월 28일-11월 13일), 
주시드니한국문화원 (KCCA), 255 Elizabeth Street, Sy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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