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상작가 빈센트 나마치라의 ‘일침’ 
99년 아치볼드 역사 중 첫 원주민 작가 영예

올해 아치볼드 수상 작가는 빈센트 나마치라(Vincent Namatjira)였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그는 원주민 작가다. 작품의 주제 인물은 그 자신과 AFL(호주식풋볼리그) 스타 아담 구스(Adam Goodse)이다. 구스는 시드니 스완(Sydney Swan) 팀 소속으로 은퇴했는데 탁월한 기량과 스포츠맨십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원주민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면서 호주의 반인종차별 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그림(사진 1)을 보면 앞쪽에 구스(왼쪽)와 나마치라(오른쪽)가 손을 마주잡고 있으며  뒤에는 필드에 있는 구스와 원주민 깃발을 들고 있는 나마치라가 있다. 작품의 칼라는 피부색을 제외하고는 원주민 깃발의 3색인 노랑, 빨강 그리고 검정색이다. 

작품에 ‘당신이 누군지를 위해 굳건히 일어서라’(Stand strong for who you are)’는 타이틀이 붙었다. 이는 지난 세월 필드에서 반복적인 인종차별을 겪고도 굳건히 버티어낸 구스에 대한 오마주이며, 손을 마주잡음으로 그 행렬에 동참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마치 호주의 모든 원주민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선언문같이 느껴진다.  

아치볼드 수상작품

화제의 아치볼드 당선작

2020년은 오래도록 극히 보수적이고 백인 중심으로 운영되어온 아치볼드 수상 역사에서 획기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다. 아치볼드 역사 99년 만에 처음으로 원주민 작가가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으니.. 나마치라는 수상 소감에서 “겨우 9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It took only 99 years)”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이어, 첫번째 원주민 수상자가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지금까지 입선작에 오른 모든 원주민 작가와 모델들을 기억해야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의 수상이 다른 원주민 작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그는 오랜기간 TV를 통해 아담 구스의 게임을 보며 존경심을 키워오다 드디어 작품을 위해 실제로 만났다. 구스는 나마치라에게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와 선수로서 커리어를 쌓아온 스토리를 전했다. 역시 불행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화가로서의 경력을 만들어온 나마치라는 구스의 이야기에서 강한 감동을 느꼈다. 구스를 그리는 내내 자기 자신을 그리는듯한 동질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상작가 빈센트 나마치라

호주 최대의 미술 공모전 아치볼드상은 내년이면 100주년이 된다. 1921년 ‘더 불리틴’지의 아치볼드(J. F. Archibald) 편집장의 유산으로 발족한 초상화 공모전은 99년을  지나오면서 미술인들만의 행사가 아닌 모든 호주인들의 관심을 받는 연례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99년의 아치볼드 입선작들을 살펴보면 아치볼드가 미술이라는 매개를 통한 호주 사회의 반사경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초상화의 모델(인물)들의 직업이나 전문분야만 보더라도 초창기에는 주로 정치인이나 변호사, 학자, 건축가 등이 많았다. 이는 당시 그런 직업군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고 존경받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에는 주로 작가나 연예인, 운동선수 등이 많이 그려지고 있다. 대중매체의 발달과 함께 부상한 신흥 인기, 혹은 선망 직업군이 자연스레 표현된 것이다. 

아치볼드의 심사는 NSW주립미술관의 11명 이사들이 담당한다. 이사회의 회장은 유명 교육학자인 데이비드 곤스키 교수(David Gonsky)로 11년째 아치볼드의 공식 스폰서인 ANZ 은행 이사회 회장을 겸직 중이다. 그 외는 존 보케티(John Borghetti) 전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CEO,  브루스 다우톤(Bruce Dowton) 맥쿼리대 부총장, 호주 미술계의 거물인 벤 퀼티(Ben Quilty), 말콤 턴불 전 총리의 부인인 루시 턴불 광역시드니위원회(Greater Sydney Commission) 위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사진 11명 중 2명만이 전문 아티스트이고 나머지 9명은 주로 학계, 재계, 정치계, 문화계 인사들이다. 

올해 응모작은 총 1,068점이었고 그 중 55점이 최종 입선작(finalists)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로 나마치라의 당선작(부상 10만 달러)이 결정됐다. 

윈 프라이즈 당선작
설먼 프라이즈 당선작
패킹룸 프라이즈 당선작

아치볼드 작품 접수부서인 팩킹룸에서 선정하는 패킹룸상(Packing Room Prize)도 원주민 작가이자 TV 방송인 메인 와이어트(Meyne Wyatt)에게 돌아갔다. 

아치볼드와 동시에 치러지는 풍경화 공모전 윈상(Wynne Prize, 상금 5만 달러)의 당선 작가도 휴버트 파러룰차(Hubert Pareroultja)로 원주민 작가이다. 주제화 공모전인 설먼상(Sulman Prize, 상금 4만 달러)의 당선 작가는 마리킷 산티아고(Marikit Santiago)로서 필리핀계 작가다. 

올해 팩킹룸상과 세 공모전 모두 수상 작가에서 백인이 제외됐다. 문득 작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사건이 떠오른다. 아카데미 역시 90여년동안 백인 위주 영화제였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과 나마치라의 아치볼드 수상이 평행이론처럼 몇개월의 시차를 두고 일어났다.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두 상의 유리천장이 무너졌다. 내년 100주년 기념 Archie/Wynne/Sulman 프라이즈에 도전할 한인 미술인들에게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라고 외친다. 

▲ 아치볼드 전시기간 : 2020년 9월 26일 ~ 20201년 1월 10일 
▲티켓: 성인 $20
https://ticketing.artgallery.nsw.gov.au/event_dates/agnsw_archibald_oct_20.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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