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딜 가나 많은 꽃들과 마주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지만 꽃과 만나면 미소가 번진다. 색상이 곱고 각각의 독특한 향기가 있기에 그렇다. 며칠 전 두 지인들과 함께 꽃 마중을 나갔다. 늦은 감은 있었으나 워낙 유명한 곳이라 하니 따라 나섰다. 그곳은 블랙히스에 있는 로도덴드론 가든이었다. 1960년 그 지역에 살았던 소렌슨이라는 꽃을 좋아하던 사람이 18.5 헥타르를 다듬어 꽃나무를 심고 길을 내어 가든을 만들면서 점점 더 유명해지게 되었단다. 

기차역에서 1 Km 쯤 떨어진 그곳은 지난해에 50주년 기념 꽃 잔치를 성대하게 한 이후 한층 더 명성을 더했다. 특히 크고 붉어 눈을 부시게 하는 2000 여 그후의 로도덴드론과 아잘리아, 카멜리아, 매이플스 등등의 다양한 색상의 화사한 꽃들은 관람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역시 좌우로 고개를 돌리면서 꽃 모습에 취해 내려가다가 작은 연못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엔 생각지도 않았던 올챙이들이 새까맣게 떠다니며 헤엄치고 있었다. 이곳에 온 지 내년이면 30 년이 되지만 올챙이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가서 자세히 바라 보았다. 까맣고 긴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헤엄치는 모습들이 너무나 정겹게 느껴졌다. 게다가 잠자리까지 연못 위를 날아 다니고 있었다. 잠자리도 시드니 근교에서 한두 번 본 적이 있지만 자주 볼 수는 없었다. 그곳에선 상당히 많은 잠자리들이 올챙이와 함께 놀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그것 보다는 작고 날씬했지만 어릴 적에 보아왔던 그들과 함께 만났으니 마치 고향의 연못가에 앉아 있는 듯한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그들이 노는 모습을 여러 각도로 영상에 담았다. 그럴 즈음 높은 나무 위에선 매미들의 노래 소리가 꽃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미소 짓는 사람들의 즐겨하는 소리와 함께 하여 그 연못에 내려 앉고 있었다. 몇 포기의 수련 아래에서 새까맣게 떼지어 노는 올챙이들과 그 위를 날아 다니며 숨바꼭질을 하듯 비행을 하고 있는 날씬한 잠자리들, 그리고 매미들의 합창이 함께 어우러진 그 꽃동산 속에서 난 문득 고향과 동심의 세계로 회귀하고 있었다. 

불경 말씀에 “과거는 지나간 것이니 회상하지 말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마음에 두지 말고 오직 지금 이 자리에만 전념하라” 고 일렀으나 나는 때때로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 이것도 적은 문제가 아니다. 특히 여름에도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곳이라 여러 해 전에 경남 남지에 사는 젊은 불자에게 개구리 소리를 녹음해서 MP3로 보내 달라고 부탁해서 저녁에 불을 꺼두고 그 소리를 가끔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연못 늪 속에선 그런 개구리 소리도 은근하게 들려 왔고 장차 그런 노래를 부르게 될 올챙이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저들이 머지 않아 없던 다리가 생기고 있는 꼬리는 없어져서 팔짝팔짝 뛰기도 하는 개구리가 된다하니 변화하는 생명체의 신비로움은 참으로 부사의(不思議)한 것이다. 

잠자리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보기엔 멋스럽게 날아 다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작업 중이다. 날파리나 깔따구 등을 잡아 먹으려고 부지런히 날개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원해 보이는 나무 숲속에서 온 종일 큰 소리로 울어대는 매미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최소 5 년 정도 땅 속에서 굼벵이로 지내다가 날개 달린 매미로 변신해서 저렇게 목 놓아 소리내어 자기 짝을 찾은 후 일주일쯤 뒤엔 사라진다고 한다. 내가 사는 우드포드 마당 앞 검츄리 밑둥엔 정확하게 22개의 매미 허물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그들은 주로 이른 새벽이나 밤중에 땅속에서 올라 와서 나무 줄기에 매달려서 어깨 부위가 갈라지면서 매미가 되어 살금살금 나온다. 처음 나올 땐 날개와 몸 전체가 푸르스름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검은 색으로 변한다. 올챙이와 굼벵이도 그렇게 변하는데 나는 툭하면 어릴 적 고향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꼴통중에 상  꼴통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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